우리 집 앞마당과 뒷마당에는 3층 건물 높이의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 뒤에 어느 정도 가려진 집이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숨을 수 있어 보인다. 부엌 싱크대 앞에 난 창 너머 뒷마당의 소나무를 바라보면 우리가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고. 하늘을 가려가며 2층 안방 창 밖을 가득 채운 소나무 가지들은 아침마다 우리가 밤새 숲 속에서 잠들어 있다 깨어난 건 아닌가 싶게 한다. 집 밖을 나섰다 돌아와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느닷없이 달려드는 그 안도감과 고립감의 정체는 어쩌면 송진, 솔방울, 솔향과 소나무 그림자의 존재감.
소나무 두 그루와 죽은 소나무 한 그루를 밑동까지 몽땅 자르고 다른 세 그루의 소나무는 가지치기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두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날짜를 정하고, 사람들이 집으로 와 벌목 비용 견적을 내줬다. 처음 연락한 회사에서 먼저 받은 견적을 기준으로 우리는 두 번째 회사와 비용을 조정해 계약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일에 맨 처음 입을 뗀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선택받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난 첫마디 말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이게 단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우리 집 나무를 자를 아저씨 옆에 서서, 그의 계획을 들으며, 겨드랑이가 다 찢어진 그의 반팔 티셔츠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7시, 파란색 안전모를 쓴 다섯 명의 남자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나무 분쇄기와 트럭, 사람이 들어가 키 큰 나무를 자를 수 있는 버켓 트럭, 토막 내지 않은 나무를 통째로 실어갈 크레인 트럭, 나무 밑동 분쇄기까지 그들과 함께 도착했다. 반나절이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무를 잘라 줄 수 있다는 아저씨의 말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집 앞 풍경을 보고 나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트럭이 들어갈 수 없는 뒷마당의 나무를 어떻게 자를 건지에 대해서는 아저씨의 설명을 다시 들었지만 그것도 일단 한 번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다.
버켓 트럭을 타고 높이 올라간 아저씨가 전기톱을 들고 나무 가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나무 밑에서 그걸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남자들이 땅에 떨어진 나무 가지를 재빠르게 치웠다. 몸통만 남은 나무에 밧줄을 묶고 버켓 트럭 위의 아저씨가 밑으로 내려왔다. 우리 집에서 길 쪽 대각선으로 남자 넷이 줄을 붙잡고 땅과 나무와 밧줄이 직삼각형을 이루었다. 트럭 버켓 안에서 나온 아저씨가 나무 밑동을 수박 4분의 1쪽 모양으로 잘라냈고 네 남자가 줄다리기를 하듯 줄을 잡아당겨 나무를 땅으로 쓰러뜨렸다. 내가 서 있던 창가로 우지끈, 퍽, 소리가 울리고 찰나의 진동이 느껴졌다. 기계와 사람과 나무가 제 각기 다른 소리와 움직임으로 위험하고 폭력적이면서 조화롭고 전문적이기도 한 장면이었다.
아저씨가 뒷마당에 있는 소나무 위로 밧줄을 거는 건 놓치고 보지 못했다. 사냥꾼처럼 밧줄을 공중으로 높이 던지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남자 넷이 또다시 땅과 나무와 밧줄로 직삼각형을 이루고 나무 밑동이 전자 톱 모터 돌아가는 소리 속에 피자 조각 모양으로 잘려나갔다. 아이의 흔들리는 이가 뽑히듯 순식간에 나무는 바닥에 쓰러지고 이 나무는 땅에 누운 채로 사정없이 가지치기를 당했다.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아저씨 말대로 해가 지기 전에 빈 땅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겨우 사람 몸통 굵기의 소나무가 뿌리내린 땅을 빼앗으려고 이런 결정을 한 건 아니다. 하늘을 향한 우리의 눈길을 가로막는 소나무를 몇 그루나마 흔적 없이 지우고 싶어서 이렇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벌이고 감당한 것이다. 송진이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리지 않는 하늘, 솔잎이 지붕 배수로를 실밥처럼 채우지 않는 하늘도 되찾고 말이다.
불편, 무방비, 생명, 돈, 제거, 문제, 해결책, 우월, 잔인. 이런 단어들 사이를 떠돌며 내 몸과 마음이 닿는 어디까지나 다 나의 소유가 아닌 거라고, 아닌가? 하고 늦은 밤까지 깨어있는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