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리더십 아카데미 20기
진성리더십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하고 존중한다는 것으로 누군가의 역량을 높일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조직에서는 이상적으로 들릴 때가 많다. 조직, 혹은 공동체는 인간이 사회를 이뤄가면서 무조건 만나게 되는 디딤돌이자 걸림돌이다. 언어가 생겨난 것조차 인간에게는 소위 통약불가능하게 된다. 소통은 가능하나 완벽할 수 없다.
어떠한 계기, 각성사건으로 진성리더가 기존의 나를 얽매던 정신모형에서 벗어나 미래의 사명에 맞고 사회적으로 동의가 되는 정신모형으로 이행한다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조직에서 사명을 모두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조직 내에서 어떠한 각성과 변화를 일으켜서 뚜벅뚜벅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과연 현실은 가능한가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첫 번째 인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만 계속적인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는 과거이자 미래인 '자본'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자본은 상당히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먹고사는데 중요하면서도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이다. 조직 생존 앞에 인간을 존중할 수 있는가는 어렵다.
두 번째, 모두가 다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생각해봐야 했던 맹자의 말처럼, 모두가 다 진성리더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약육강식의 세계,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자기 파이를 지키는 사람, 더 나아가 공감보다 동정을 통해 '나만 아니면 돼'를 체화한 수많은 사람과 조직이 있다. 이들을 과연 어떻게까지 존중해야 하는가에 봉착한다. 신은 없으며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나는 한 사람에 불과한데 어떻게 큰 조직에서, 변하지 않은 곳에서 진성리더로 생존할 수 있을까? 수많은 행동 경제학적 결과물에서도 소위 Taker, 빼앗는 사람들도 Giver, 기여하고 주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어있긴 하다. 그렇지만 Taker 끼리는 서로 경쟁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면서도 Giver가 갑작스럽게 다른 방식의 행동을 하면 어이없어한다. [기버]의 연구결과에 따라서 그렇듯, 최고 경영자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둘 수는 있으나, 통상적으로 Giver 들은 조직 내에서 평가나 성취가 Taker보다 평균적으로 좋지 않다.
이러한 생존 목표의 한계, 개인의 한계, 권력의 한계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한국 사회처럼 대기업, 거대관료 조직이 우선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에서 기업의 수장이나 정치적 리더의 변화 없이는 진성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버틸 수 있을까?
결국 자원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진성리더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시도가 필요하다. 진성리더가 아닌 유사리더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지만, 진성리더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진지를 구축해야 할 수도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통해서 사람들이 권력이나 나를 억누르는 가치판단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체화하고 맹종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전면적인 혁명이 어렵다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사람들과 자원이 있어야 한다. 사명의 진북을 지탱하기 위한 든든한 긍휼의 진남이다.
그리고 유사리더보다 성과측면에서도 뛰어나면서도 조직의 사명으로 접근하려면 어떤 면에서 가면을 활용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대표적인 조직에서는 나왔지만 수많은 조직 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기에서 욕하고 거기서는 밝게 웃어라'라고 하며, 고충은 나에게 털어놓고 그곳에 가서는 아닌 척하라고 한다. 생존보다 발전, 나를 넘어선 조직을 생각하는 이들이 생존과 나만 생각하는 이들과 경쟁에서 쓰러지는 것은 안타깝다. 그래서 면밀히 전략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사명의 진북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진성리더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목적과 사명에 대한 갈구는 드러낼 수 있으나 끌고 갈 수는 없다고 본다. 인간 그 자체는 존중받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적절한 삶' 역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조직에서는 그들에 대한 기능적 직무기술서와 직무배분도 필요하다. 사명을 옳게게 실행하는 방식의 첫걸음에는 모든 걸음을 존중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명 때문에 타인의 결핍을 드러내는 일은 그만큼 소중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