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또 의령에 놀러올게요.
어젯밤 술을 꽤 많이 마신 탓에
해장을 하러 나온 길이다.
의령 읍에서 칠곡면으로 들어갈 때
지나치며 본 가게, ‘국시한그릇’.
이름은 국시지만, 칼국수가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칼국수를 주문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속은 뒤집어지고,
정오가 훌쩍 지난 시각인데도 머리는 여전히 몽롱하다.
어렸을 땐 지금보다 훨씬 오래,
훨씬 많이 마시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주량은 줄고 피로는 더 쉽게 쌓이는 모양이다.
손님이 많아 ‘역시 맛집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내 입맛에 더 잘 맞았다.
꾸덕한 국물에 고명,
그리고 이븐하게 익은 칼국수 면발까지.
한 그릇을 전부 비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양이 꽤 넉넉해서 결국 다 먹지는 못했다.
반찬은 김치와 무채 두 가지.
그중에서도 무채가 새콤짭짤해서
김치보다 훨씬 입맛을 돋운다.
가게를 방문한다면 꼭 무채와 함께
곁들여 먹기를 추천한다.
사각사각 하우스는 15시에 퇴실해야 했다.
나를 제외한 썸머와 또치는 하루 더 머물기로 해서,
점심을 먹고 돌아온 나만 부랴부랴 짐을 싸기 시작했다.
14시까지 모이기로 했지만
퇴실 시간까지 짐을 다 싸지 못해 허겁지겁 움직였다.
퇴실 전에 사각사각 하우스 사용 후기를 남겨야 해서
온라인 청년센터 게시판에 후기를 급히 올렸다.
상주 캠프, 합천 해인사, 치앙마이, 순천 한 달살이,
그리고 의령 한 달살이까지.
브런치에 수많은 글을 올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은 늘 아쉽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동안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더 잘할 수는 없었는지,
그게 정말 최선이었는지 묻게 된다.
하지만 또 안다.
나는 언제나, 매번,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지내왔다는 걸.
의령 한 달살기에는 꼭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의령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 27,000원(한 끼 9,000원)까지 식대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지원을 받으려면 3일에 1건씩 SNS에 후기 글을 올려야 한다.
나는 평소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지만
주 2회 공개라 업로드 주기가 맞지 않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도 추가로 후기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식대 지원을 받으려면
영수증을 철해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18시까지 홍의별곡 사무실에 모여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처럼 급히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했다.
동생들이 데리러 와서 집으로 향하는 길.
불이 꺼진 청춘만개 건물을 마지막으로 눈과 마음에 새기고 차를 돌렸다.
4년 동안 마케터로 일하면서
가장 자주 떠올랐던 감정은,
“왜 나는 남들처럼 열심히 하지 못할까?”
“왜 열심히 하는 게 이렇게 버거울까?”
하는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에너지를 쓰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성과를 내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일은 결국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하지만 축제 기획자로 의령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에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이 즐겁고, 하루하루가 기대되기만 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진심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과나 평가보다,
‘재미있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움직였던 시간.
그게 내가 일에서 느껴본 새로운 감각이었다.
한 달 동안 함께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크다.
매번 픽업해주신 망고님,
다정하게 챙겨주신 만듀님,
늘 웃는 얼굴로 현장을 이끌어주신 대표님까지.
모두 덕분에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세계를 넓혀준
썸머와 또치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각자 다른 곳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또 좋은 얼굴로 만나
수다 떨며 웃을 수 있기를.
그때도 오늘처럼, 마음이 즐겁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