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를 줄이려고 마음을 먹고 노트를 가져와서 큰 제목 여러 개와 세부항목들을 적었다. 지금 중학생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였고 내가 의욕적으로 짠순이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목표를 설정하면 쉬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성격이다. 미니멀 라이프와 맞지 않는 성격일 수도 있다. 어떤 부분이든지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 기준으로 완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힘들었다. 이런 나의 성격은 미니멀 라이프를 삶에 적용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성격으로 변화되었다. 나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마음도 변화시킨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힘차게 나아가려고 했던 그때 나의 절약 생활은 내가 노트에 기록한 대로 완성되어야만 했었다. 인터넷 카페 중에 절약에 관한 카페가 있는데 그곳은 한 달 식비를 10만 원으로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또 물가가 인상되어서 그렇게 살기 힘들다고 누군가가 글을 올리면 반드시 한 달에 10만 원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냉파 하고 되도록이면 소비하지 않으면서 버티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주었다.
나는 그 카페에서 글을 올리면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글과 댓글을 읽고 조용히 실천하는 유령회원이었다. 절약 생활이 절실했던 나는 나처럼 절약을 절실하게 하는 사람이 많은 그곳에서 외롭지 않고 왠지 친구들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절약하는 방법을 나는 하나씩 따라 해 보고 괜찮은 것들을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나와 신랑의 급여에서 최대한 저축을 하고 최소한의 금액으로 한 달을 살아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내가 적금 납입할 것을 욕심껏 크게 설정해 놓으니 한 달 생활이 매우 궁핍해졌다.
내가 맞벌이를 하던 시기였고 살림에 서툴렀기에 반찬가게를 이용하고 배달이나 외식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절약을 해서 돈을 모아야 했기에 외식과 배달식을 줄이고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서 오더라도 집밥을 만들어서 먹었다. 잘하지 못하는 솜씨로 반찬도 만들어 가면서 일주일 동안 생활비를 2만 원으로도 버텨 보았다.
냉난방은 방 한 곳만 하고 다른 곳은 냉난방을 하지 않았다. 마치 원룸에 사는 사람처럼 그렇게 방 하나만 사용하면서 관리비도 줄여보았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여서 방에서 회사일을 하다가 잠시 거실에 나오면 여름에는 숨이 막이게 더웠고 겨울에는 발이 시려서 거실을 잘 걸어 다닐 수도 없었다. 총생활비는 많이 줄여지고 돈이 모여졌지만 마음은 행복한 것 같지 않았다.
절약 생활을 할 때는 가족의 협조가 정말 중요하다. 가족 구성원의 협조가 있어야 절약 생활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기였기에 아이는 주말에 장을 보러 가면 장난감을 사달라고 많이 졸랐다. 그리고 지금보다 젊은 시절인 신랑은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시기였다. 가족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갔고 나의 절약 생활은 방해를 받았다.
내가 가계부를 보여주면서 목표한 금액을 모아서 아파트 분양받을 때 받은 대출금을 빨리 줄여야 한다고 설명을 했지만 당장의 행복을 원하는 신랑과 아이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누군가와 경쟁을 하듯이 속도감 있게 돈을 모아서 대출금을 갚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가족이 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나에게 협조하기를 원했었던 것 같다.
나는 고민 끝에 신랑이 골프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한 대학에서 주말에 스포츠 강의를 하는 것을 알아보고 골프 수업을 등록해 주었다. 신랑은 그곳에서 2년 동안 스포츠학과 교수님에게 골프를 배웠다. 그리고 신랑에게 필요하고 가지고 싶어 하는 골프 관련 물품을 적극 지원해 주었다. 신랑의 삶의 만족도는 올라갔다.
내가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도 늘렸다. 내가 맞벌이를 해서 몸이 지치니까 아이에게 장난감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은 인정했다. 그것은 요리였다. 나는 당당하게 반찬가게 단골손님이 되었다. 반찬을 사 와서 밥만 해서 집에서 먹어도 외식이나 배달식보다는 훨씬 절약이 되었다. 내가 새로운 반찬을 만들려고 도전하는 그 시간을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도 더 많이 읽어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만큼 요리에 재능이 없는지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릴 때 그곳에 모인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장난 삼아서 갑자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질문은 "각자의 엄마가 어떤 요리를 제일 잘하는지"였다.
아이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질문을 했고 아이의 대답을 들었다.
"수진아, 너의 엄마는 어떤 요리를 제일 잘하니?"
"잡채요! 잡채가 제일 맛있어요!"
아이들마다 한 명씩 대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대답의 순서가 내 아이가 되었을 때
"00야,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 어떤 것이 제일 맛있어?"라는 질문을 들은 내 아이는 당당하게 큰 목소리로
내 아이와 신랑을 위한 만족감이 채워졌으니 나를 위해 한 달에 16만 원을 내 문화비로 사용하는 것을 책정했다.
재택근무를 해서 특별하게 나를 위한 용돈을 따로 두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생활비에서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책 한 권을 사는 것도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용돈을 문화비로 책정한 것이다.그 문화비로 책도 사고 나만의 시간을 위해 가끔 카페에 가거나 친구들 만나서 지출하는 비용도 쓴다. 한 달 동안 문화비 안에서 지출하고 남으면 별도로 저금도 한다. 왠지 비상금 느낌이 들어서 든든하다.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에 긁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자주 갈 수는 없지만 한 번씩 카페에 가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면 더없이 행복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것은 여전하지만 정말 소장하고 싶거나 공부에 필요한 책은 구입을 한다.
나는 문화비로 나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웠다. 그 만족감은 아끼면서 생활하는 것을 즐겁게 만들었다.
이렇게 가족 개개인의 마음이 만족감으로 채워지니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생겼다.
그 행복한 마음은 절약 생활을 지속하는데 힘이 되어 주었다.
돈을 무조건 많이 아끼고 절약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되므로 절약 생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가족은 각자가 원하는 "만족감"이 달랐다. 그 가족 구성원이 원하는 만족감을 채워준 후에는 내가 정한 목표가 가족의 공동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의 마음을 얻어서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