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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Aug 23. 2022

한 달 후, 일 년 후

<남편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남편이 고향 친구 상갓집에서 첫사랑을 만났다고 했다. 30년이나 지났는데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아보겠더라고 말을 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헤어졌으므로 오해 말라는 말을 먼저 던진다.  신혼 초 흘리듯 한 말 중에 자신의 생애 중 가장 가슴 아픈 사랑이 첫사랑이었다고 했었다. 그래서일까 첫사랑을 만났다고 하니 희한하게도 그 말이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나의 방학 동안 남편은 출장을 갔다. 아이들도 모두 컸으니 방학 시작과 동시에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늦은 장맛비가 계속 오는 통에 집에서 독서하기 좋았다.

무엇을 읽을까 하다가 남편이 출퇴근길에 오가며 읽었다고 자랑한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정신세계를 이해 못 하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며 책을 집어 들었다.   

   

 [한 달 후, 일 년 후]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들의  상황과 감정들을 매우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런데 주요 인물들의 공통점은 공식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원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도 사랑도 참 다양하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사랑이 엇갈린 화살표를 향할 때 쓸쓸하고 허무하다.     


 소설 속 사랑은 서로 얽혀 있다. 니콜의 남편인 베르나르는 조제를 사랑하고, 조제는 자크와 함께 동거하지만 베르나르와 사랑을 나누고, 알랭은 파니의 남편이지만 무명 배우 베아트리스를 사랑하고, 베아트리스에게  알랭의 조카 에두와르는 열렬히 사랑 고백을 하고, 베아트리스는 자신을 맘에 들어하는 연출가 졸리오를 이용하려고 하고...     


교양 모임에 참여하는 9명의 인물들 모두 서로 관계의 거미줄로 엮어져 있어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난감했다. 

니콜과 파니는 유부녀. 니콜은 아이를 통해서라도 남편 베르나르를 곁에 두려 하고, 파니는 알랭과의 뜨거웠던 젊은 시절을 추억으로 함께 살고 있다.      

사실 불륜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감하고 상식파괴의 스토리가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감정에 매우 충실하다. 조제가 니콜을 위해  베르나르를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한 진심과, 낯선 곳에서 베르나르가 자신을 보며 흠뻑 사랑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보며 동참하고 싶은 감정. 이 감정의  부조리함을 느끼지만 그녀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한다.      


이 소설은 '~해야 한다'와 같은 의무와 역할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부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니콜과 파니를 안타깝게 묘사하고 있다. 아이를 통해서 베르나르를 옆에 두고 싶어 하는 니콜을 보며 조제는 '성서에나 나오는 여자라고, ' '남자를 무시무시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여자'라고 표현한 점만 봐도 그렇다. 

     

이 소설에서는 자기가 마주한 순간에서 자기의  감정을 알고, 그 상황에서 뭘 하고 싶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후에 발생하는 도덕적인 비난과 문제에 대해서는 피하지 않고 감수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들에 대한 장면들이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다. 

     

 베르나르는 조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연하의 자크와 동거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이 그녀를 사랑할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표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니콜을 거부하지 않는다. 니콜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도 꼭 니콜을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조제가 베르나르에 그런 것처럼. 그래서 베르나르는 조제와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또한 연적에 대해서도 별로 질투하지 않는다. 현재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할 뿐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란 말은 이 소설에서 통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사랑했으므로 나의 방식으로 너를 사랑할게. 네가 나를 사랑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아. 이건 내 마음이니까. 다만 싫지 않다면 받아줘. 떠나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매우 충실하고, 구속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한 편으로는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사랑을 허용하기가 쉽지 않다.      

소설을 보며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현실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사랑은 한 달 후, 일 년 후를 내다보며 하는 것이 아니리라.      

현재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에 서로에게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면 '사랑'이 된다. 그것이 후에 동정이든, 연민이든, 충동이든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사랑'인 것이다.  그것은 순간 강렬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매우 연약하고 덧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나저나 남편은 왜 이 책을 읽은 걸까? 설마....?

머릿속에 아침 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지고 있다. 참 몹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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