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케시에서 만난 요가 언니
산에서 들려오는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창문 틈새로 비치는 햇살은 따사롭고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싱그럽다. 일어나자마자 주인아저씨 댁으로 가서 일주일 더 머무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유명한 곳들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여행과 한 곳에 머무르며 그곳을 온전히 느끼는 여행. 예전에는 전자에 가까운 여행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며 그곳을 느끼고 그곳의 일부가 되는 것도 좋다.
현지의 가정집처럼 조용하고 조그마한 게스트 하우스. 어젯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해준 유카를 만났다.
"나 방금 일주일 더 머문다고 주인아저씨께 말했어. 덕분에 좋은 쉼터를 찾았어. 정말 고마워 유카:)"
"우와. 정말 잘됐다. 그럼 이제 뭐할 거야?"
"음... 마을도 구경하고 싶고. 요가도 하고 싶고... 혹시 시간 되면 같이 돌아다닐래?"
"그래."
흔쾌히 승낙해주는 그녀.
"아 맞다. 괜찮으면 조금 있다가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소개해줄게. 한국인도 한 분 계실 거야. 요가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 마침 너도 요가하고 싶다고 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좋겠다."
그렇게 오후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 찾은 카페에서 만난 유카의 친구들. 모두 아쉬람에서 몇 주동안 요가와 명상을 하고 이제 곧 맥그로드 간즈로 떠난다고 했다. 유카와 친구들은 일본어로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나는 한국인이라고 소개받은 언니와 한국어로 첫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라고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요가 선생님인 언니는 요가와 명상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체험하기 위해 인도까지 오게 되었단다. 그런데 언니가 이야기한다.
"저는 조선 사람이에요. 재일교포지만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북한에서 일본으로 가게 되셨거든요. 부모님은 북한에서 태어나셔서 지금은 남북한이라고 구분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조선, 하나였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모두 하나예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남북한 친구들도 모두 있고:)"
해외에 나가면 한국 사람이 꼭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나라였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
그럼 다시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었으니
"남한? 북한?"
이 사람들은 왜 당연히 남한일 거라는 생각을 못하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재일교포임에도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북한, 조선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조선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이성계가 건국한 드라마 소재, 역사 속 나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남북한이 나눠지기 이전에 하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일 수도 있구나. 대화의 시작부터 이 언니라는 사람의 서사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오신 거예요? 요가 때문에??"
언니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퍼졌다.
"응. 요가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기도 하고 사실은 인도인 남자 친구와 약혼했거든."
"네???!!"
북한 사람이라 소개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인도 사람과 약혼을??!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얕게 알고, 봐왔던 북한과 인도를 섞어보니 각자가 무척이나 독특하기에 그 신기한 조합에 또 한 번 질문이 터졌다.
"실례가 안된다면, 부모님이, 양쪽 부모님이 허락을 하신 거예요? 인도 쪽 부모님이랑 언니 부모님이 괜찮다고 하셨어요?"
언니가 웃는다.
"남자 친구 쪽은 좋아하신대. 문제는 우리 부모님. 사실 나도 계속 진지하게 고민 중이긴 하지만 행복해:)"
"정말 대단해요 언니."
남아공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결국엔 모두 사람 사는 곳이라곤 했지만 사실 가족이 된다는 건 정말 가장 가까이에서 24시간, 남은 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인데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종교를 믿고 다른 이념 아래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 함께 사는 건 또 다른 일인 것 같았다. 인도와 북한, 일본을 둘러싼 복잡한 이념과 종교와 역사 속 이야기들이 떠올랐고 언니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사랑은 국경도 이념도 종교도 뛰어넘는 것일까 싶었다.
"넌 어떻게 리시케쉬에 오게 된 거야?"
흠. 이제 내 소개를 할 차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