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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17. 2021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범한 일상의 선물

어릴 적 만화들의 엔딩은 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말로는 열 몇 시간이라고 했지만 결국엔 스무 시간이 넘어 도착한 맥그로드 간즈에서 델리까지의 마지막 여정. 버스에서 내리고 난 뒤, 나는 다시 인도에 처음 도착했던 델리에 닿아있었다. 이렇게 딱 한 달이라는 시간이, 여정이 마무리되는 건가?


그럼에도 방심은 근물. 끝날 때까진 절대 끝난 것이 아니니 아직은 정신을 바짝 차릴 때.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리기에는 아직 비행기 시간도 멀었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하다. 5월 건기의 무더움이 기승이던 델리. 델리를 더 돌아다니기보다는 우선 비행기를 타기 전 몸을 펴고 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여행자들의 거리, 빠하르 간즈에 다시 도착. 반나절을 머물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숙소를 두리번거리다 무려 2000원이라는 믿기지 않는 가격의 숙소를 도전. 너무너무 잠이 왔던지라  이성적인 뇌 작용은 멈춘 채, 그저 반나절만 잘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들어왔건만...


여인숙, 여관이라는 분위기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건지. 밖은 이렇게 뜨거운데, 바늘처럼 어디든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은 햇살도 스며들지 못하는 곳이 있구나. 바깥의 햇살이 전혀 들어오지 않은 여인숙 안은 작고 동그란 전등 몇 개에 빛을 의지하고 있었다.


안내를 받고 들어가는 기다란 통로를 따라 끼이익 소리가 나는 나무문을 열고 나니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는 방. 문을 닫으려고 보니 문고리가 잠기지 않는 방.

오랜만에 가져온 자물쇠로 스스로 문을 잠그긴 했는데

통로 쪽에 열린 창문은 또 왜 그리 큰지, 개인 방이지만 개인적이지 않는 방.


그렇게 갈색이고 회색인 방에 덩그러니 놓인 하얀 침대. 그런데 그 하얀 느낌이 더 불안한 느낌은 왜인지...

그토록 기다리던 침대인데도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왜인지 모르게 하얀 베개를 들춰보는데... 그 작은 배가 시트에, 하얀 시트에 나는 세상에 초록색 비스듬한 색깔이 이리도 다양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초록색 계열의 곰팡이들이 가득 피어 있던 배게 시트 뒷면. 이불을 들춰보는 것은 참기로 했다. 한국에서 2000원은 인도에서도 2000원인 것이었다.


자물쇠를 꺼냈던 가방을 다시 주섬주섬 뒤적여서 리시케시에서 썼던 침낭을 다시 꺼낸다. 침대 시트의 하얀 면만 제대로 펴놓고 그 위에 다시 침낭을 깔았다. 꽤 넓은 공간이 있는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번데기처럼 침낭 속에 꼭 붙어 미라처럼 그곳에서만 잠을 청했다. 여행이 끝나가는 듯했지만, 정말 떠나기 전까진 인도는 인도였다.


침낭 속에서나마 잠시 꿀잠을 자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나의 기분은 이미 비행기에 올라탄 것처럼 들뜨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서는데 안전한 느낌이 그제야 들었다. 내가 굳이 가방을 자물쇠로 잠그지 않아도 되고 앞뒤로 부여 메고 있지 않아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제야 인도에서의 여행이 끝나는 건가! 실감이 든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인도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이렇게 혼자만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델리 공항에 돌아오기까지. 건강한 사람들도 힘들고 위험할 수도 있다던 인도 여행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도움을 받아 혼자서 무사히 해낼 수 있었음에 뿌듯한 마음이, 감사로 가득했다.


기념으로 출발 터미널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나 혼자 얼마나 들떠 있었는지 그 와중에 내 뒤에서 나를 따라 방방 뛰어주는 인도 청년이 함께 찍혔다. 우연히 다른 사람 앞에서 사진 찍힌 모습이 민망한데 웃음은 터져버렸고, 그런 나를 보며 그 청년도 웃었다. 나보고 무슨 그리도 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와서, 나는 그냥 너무너무 좋았다고, 고맙다고 웃음을 지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하늘은 인도에 날아가던 하늘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같은 기내식을 먹고 있는 나는

그 사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혹여나 비행기를 타며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기내식 사진은 커녕 식사도 무서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선 거뜬히 한 끼를 맛을 음미하며 먹고 있었다. 이렇게 걱정 없이 의심 없이 비행기를 타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뇌출혈이 왔던 세 달 전만 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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