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이 있다. " 덕을 쌓으면 언젠가 복을 받는다 "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말은 옆 나라 일본에도 있다
徳を積む: 착한 행동을 반복해 인격을 쌓는다
이 덕이란 무엇인가? 착한 행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베푸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 들어가 보자
요즘은 개인주의가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옛날 사람들과 좀 거리가 멀다.
특히 베푸는 것에 대해 특히 강박하다. 그에 비해 나는 성격자체가 베푸는 것을 좋아해 주변인들에게
내가 무리 안 되는 선으로 자주 베풀려고 노력한다. 성격자체가 받는 것보다는 내가 잘해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옛날부터 가정교육을 " 원준아 많이 베풀고 살아야지 복이 오는 거야 "라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서 " 친구들 가게 데려와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으라고 말해 " 라면서 나에게 친구들에게 선의를 베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 가게를 자주 데려와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곤 했다. ( 옛날에 우리 부모님은 중화요리 가게를 하였다 ) 물론 내가 베푼 것보다는 우리 부모님이 아들 친구들에게 베푼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영향은 그대로 커서도 적용되었다. 중, 고등학교 때도 친구가 돈이 없다고 같이 밥을 먹기 힘들다고 하면 나오라고 하면 사주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서 집고 가자면 우리 집은 형편은 못 살지는 않았지만 잘 살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 베풀었다. 그런데 이게 성인이 되니까 뭔가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문제는 몇몇 애들이 내가 잘 베푼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나만 만나면 돈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는 뭐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의 특징은 고마움도 없었다는 거였다. 전에는 말이라도 고맙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말도 사라져 당혹스러웠다. 그럴 때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 내가 뭘 바라서 베푸는 것은 아니잖아 "라는 생각으로 그냥 또 넘겼다. 그런데 그들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 특이한 점은
자신의 대학 여자후배가 밥 살라고 해서 맛집에 갔다거나, 자신이 여자친구가 생겨 그 여자친구의 비싼 화장품을 사주거나, 각종 밥이든 술이든 모임들에 빠지지고 않고 다니거나, 자신의 여행을 가거나 하면서 나랑 만날 때는 돈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근황 이야기를 나눌 때에 물어본다. " 아니 네가 그런 비싼 선물 할 돈이 어디 있어? "라고 물어보면 " 아끼면 살 수는 있지 "라고 말한다. ( 이때도 내 친구는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면서 지갑을 두고 왔다 )
그런데 이런 이들이 내 주변에 많았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나는 그들은 나의 호의를 이용했다는 생각에 정말 배신감이 들었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마저 들었다. 나는 그 이후로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는 그 친구들과 연을 끊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들어보니 그 친구들은 오히려 내 뒷담을 하고 다녔다. " 원준이 그렇게 착한척하더니 애가 가식적이다 " , " 걔 여태 착한 척한 거였네 " , " 내가 걔 그럴 줄 알았다 " 등등 전해서 나에게 들려왔다. 거기서 내 결정이 맞았구나 싶으면서도 슬펐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뭐 한 거지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 그러기에 그때 그 상황에 대해서 정말 절망스러워서 이런 기도를 하였다.
"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고 오른편 뺨을 맞아도 왼쪽 뺨도 내주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는데 이게 뭔가요? 그들에게 전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이게 무엇인가요? "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조용하셨다.
나는 그 이후로 어떻게 인간관계를 구성할지가 고민되었다.
그냥 내 사람들만 챙기면 되는 것인가? 그냥 나만을 위해 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기도를 하며 성경 말씀에 더욱 깊이 보았다. 그때 내게 주신 말씀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나는 이 말씀에 큰 위안을 받았다. 분명히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나에게 더 큰 은혜를 주기 위하심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에는 감사함이 가득했다. 그 뒤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더욱 홀가분해졌다. 근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정리를 해도 자신의 필요로 연락 오는 친구들이 아직도 있다. 그리고 매일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들은 똑같이 앞에 얘기한 친구들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걸 보면 어딜 가든지 존재하는 유형인 듯하다. 그래도 지금은 그거에 대해서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한 선을 넘어버리면 가차 없이 돌아선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나는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선한 것과 미련한 것은 분명히 다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어떤 친구와 인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걸 말하고 마무리하겠다.
친구: 나는 인맥관리는 필요하다고 봐
나: 왜? 이유가 있어?
친구: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내가 도움을 줄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잖아
나: 맞는 말이네 그런데 그 도움이라는 게 주든 받든 언제가 될까?
친구: 그건 모르지 그래도 넓게 하다 보면 생기겠지
나: 흐음 그 언제 줄지 받을지 모르는 도움 때문에 계속 맞지도 않는 이들을 데리고 가는 거는 좀 그렇지 않을까?
친구: 그건 그렇지만 세상 일 모르니까
나: 그래 모르지 그런데 그렇기에 내 사람들에게 더욱 잘하고 새로운 사람 생겨도 잘 맞으면 같이 가는 거고 아니면 서로 갈길 가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어
친구: 그렇긴 해도...
참고로 이 친구는 나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없다고 지친다고 앞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학업에다가 자신이 원하는 자격증 준비에다가 인맥관리까지 하니 자신을 돌볼 시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인맥관리는 중요하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관계는 과감하게 끊어버리길 바란다.
그 도움을 받는 만약에 경우를 생각하는 것은 거의 내가 집 밖을 나가 교통사고 나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들은 도움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어본 분들도 자신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