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gant Life

프롤로그

by 강작

제목에 기대를 걸고 들어왔다면 미안, 여기엔 아직 우아한 여자는 없다. 30대 초반에 글밖에 몰라 글 쓰는 일을 돈벌이로 하고 있는 미혼 여성만 있을 뿐. 하지만! 당신이 내 매거진을 누른 순간 우리 사이의 '운명의 시계'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어찌 되었든 당신은 나와 함께 앞으로 재미있는 한 달을 살아보는 거다.


3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그다지 '우아'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았다. 심지어『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고도 턱을 만지며 "오드리 헵번? 예쁘군..." 정도였다. 고 앙드레김이 오~ 엘레강스를 외칠 때도 왜 뷰리풀~이나 어메이징!이 아닌 엘레강스일까 궁금했었다. 우아함을 떠올리면 고전적인 여자 이미지가 떠올랐고, 올드했고, 사치스럽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쯤. 내가 20대 초반일 때) 더 핫한 것, 더 트랜디한 것, 더 용기 무쌍한 이미지를 원했다. 프라다나 샤넬을 살 형편도 되지 않았지만, 만약 길에서 줍는다고 하더라도(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내 이미지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당연하다! 그런 것들은 패션계에서 '우아'라는 단어를 먼저 들이밀고 보는 상품들이니까!

30대에 가까워지니 이상하게도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에 호기심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생리적으로 아이를 낳을 때가 다가와서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많아진 탓일까?(안타깝게도 결혼을 할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다) 아니면 이제 내가 핫한 트렌드를 원한다 하더라도 핫한 트렌드 자체가 날 받아주지 않는 슬픈 현실 때문인가?(정말이지 오랜만에 홍대에 갔더니 무척 소외감이 느껴졌다. 하마터면 울뻔했다) 무엇 때문인지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다시 보니 오드리 헵번의 손짓 하나하나가 아름다워 보였고, 고 앙드레김이 왜 그토록 엘레강스를 외쳤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조금은.


'우아하다'는 사전적인 의미로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고상하고 기품이 있어야 한다는 추가 사항이 붙는다. '그렇다! 나는 바로 이 점에 매료된 것이다!' 만약 우아하다의 의미가 생리적으로 아름답다던가, 젊고 아름답다는 뜻이라면 크게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상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에 끌린 건, 바로 고상하고 기품 있는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이다. 우아한 삶은 어른스러운 고품격의 행복을 만들어낸다. 즉 여전히 고전적인 여자나 사치의 느낌을 풍기지만, 동시에 이성과 감정이 안정되어 있으며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줄 알며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대 초반, 나는 나의 내면을 가꾸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더 신경을 썼다. 뒤죽박죽된 삶 속에서 사춘기처럼 나를 탓하고 상대를 탓하며 행복을 찾으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외적 환경으로부터 어질러진 삶을 정리하고, 내면부터 다듬어, 스스로의 균형을 찾아나가야 '진정한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상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전혀 우아하지 않다. 종종 동료들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깔끔하다'나 '여성스럽다'라는 말은 듣곤 하는데(안타깝게도 예쁘다, 귀엽다는 말은 연인에게 강요해서 가뭄에 콩 나듯 듣곤 한다) 우아하다는 말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 10회에 걸쳐 우아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한 번도 우아하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여자가 우아한 인생을 추구해 나가는 리얼리티 한 현장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고리타분한 자기 계발서형 글은 절대 쓰지 않겠다(나는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50가지의 약속 중에 1가지를 겨우 지킬까 말까 한 사람이니까). 다만 생활밀착형 우아함을 실천해보겠다. 물론 꽤 노력이 필요한 것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인생은 당신에게 '오드리 헵번처럼 살지 마세요.'라던가 '와인 대신 소주를 드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그렇게 안한 것일 뿐. 만약 당신도(심지어 당신이 고급의 20대 초반이라도) 우아한 인생을 동경한 적이 있다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나를 차분히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연재는 화/목/토 밤늦게(여러분이 자는 시간에 부엉 부엉-) 살며시 올려두고 아침에 까꿍하고 싶다. 브런치로 내 글을 먹어줄 독자들이 생긴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실천형 에세이다 보니 더 많은 글을 연재하지 못하는 것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게 돈이 많다면 삽화가를 고용하고 싶지만, 에디터와 프리랜서 일을 병행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능력이 없으므로- 종종 글 사이에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 등장할 수도 있다. 엘레강스하지 않다고 내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다.


삶이 힘들수록, 우리는 더 우아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한계에서도 행복을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과도 같으니까. 당신을 닮았을 수 있는 내가, 조금씩 풀어내는 이야기에 손을 잡아 준다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 이렇게 멋진 작가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준 브런치 팀에게도.


writer. 강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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