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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04. 2022

도서관과 커피숍

  언제부턴가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뜻 생각하면 기이한 현상이다. 한심해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쯧쯧, 이런 곳에서 무슨 공부를 한다는 것인지 원. 집중이나 제대로 되겠어? 공부 한다는 핑계로 와서 커피 마시며 시간 때우는 거 아냐?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듯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도서관처럼 조용한 공간에 있어야 집중이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커피숍처럼 음악도 나오고 해야 집중이 잘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S의 경우에는 커피숍이다.


  도서관은 답답하다.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마음을 압박한다. 그래서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 게다가 주변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얘기를 주고받기라도 하면 신경이 곤두선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으면서 밖으로 향하는 사람도 본 적 있다.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앞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손짓으로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밖으로 나가거나 각자의 공부에 집중하면 좋으련만,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고, 계속해서 눈치를 봐가며 속닥거리는 사람도 있다. 


  커피숍은 자유롭다. 커피숍의 기본 조건은 조용함이 아니다. 음악도 흘러나오고 사람들도 들락날락한다. 주변에서 대화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그런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가기 때문에 소리에 예민해지지 않는다. 지극히 조용한 공간보다 오히려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에서 S는 집중이 더 잘 된다. 물론 주변에서 임계치를 넘어서는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사람이 있거나 사람이 너무 많으면 집중이 안 된다. 그리하여 S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음악도 너무 크게 틀지 않는 커피숍을 자주 이용한다.


  공부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소음이 편안함을 주는 경우는 많다. 혼자서 등산을 하는데 몇 시간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럴 땐 무섭기까지 하다. 특히나 밤이나 새벽이면 더더욱. 저 멀리서라도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면 안심이 된다. 도시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혼자 남겨졌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고요함이 때로는 공포가 된다.


  어디 소리뿐이겠는가. ‘백색 공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 흔적 없이 빈 공간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사람은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표현 또한 충격을 받거나 공포를 느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으로든 채워 넣고 싶게 만든다. 학교의 책상이든 도서관의 책상이든 말끔한 상태는 오래가지 못 한다. 1년 넘게 지났는데도 아무런 낙서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신기한 현상이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의 벽이나 화장실에도 사람들은 여지없이 흔적을 남긴다. 하긴 살갗의 빈 공간도 참을 수 없어 문신을 새기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어쩌면 비어 있는 상태를 참지 못하고 무언가로 채워 넣으려는 욕망에서 모든 예술은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하여 미술이 탄생하고, 조용함을 견디지 못하여 음악이 탄생하고, 심심하게 놓여 있는 걸 견디지 못하여 이야기와 춤이 탄생하고……. 어디 예술뿐이겠는가. 지구는 물론이려니와 우주 자체가 고독의 산물은 아닐는지.


  태초에 고독이 있었다. 너무도 오래도록 고요히 놓여 있던 고독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폭발하고 말았다. 고독의 조각들이 튕겨나가며 때론 충돌하고 때론 결합하면서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만들어졌다. 인간이 별이라고 부르는 그 불덩어리 주위로 작은 덩어리들이 빙글빙글 맴돌게 되었다. 고독은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놓고서도 여전히 팽창 또 팽창하고 있다. 고독이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를 알 수 있는 한편으로, 멈출 줄 모르고 끝 간 데 없이 팽창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오래도록 외로웠기에 저럴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S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것도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는 것도 결국엔 외로워서이다. 우주 공간에 널리 퍼진 고독의 입자들이 S에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스며들어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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