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사람을 인터뷰어(Interviewer)라고 부른다(반대로 인터뷰의 대상은 인터뷰이(interviewee)라고 한다). 예전에는 <연예가중계>, <한밤의 TV연예>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배우나 가수를 인터뷰하는 리포터가 대표적인 인터뷰어였다.
한정된 직군의 사람만 인터뷰어의 역할을 담당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누구나 인터뷰어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독립서점과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북토크의 진행자는 작가를 인터뷰하고, 유튜버나 아프리카BJ는 초대한 게스트를 인터뷰한다. 대화형 모임의 모임장도 참여자를 인터뷰하는 인터뷰어이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어를 경험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인터뷰어로서 꽤나 많은 활동을 했다. 팟캐스트를 운영할 때는 지인을 초대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면서는 게스트 및 참여자를 인터뷰하고 있다.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경험이겠지만 나름의 경험을 통해 좋은 인터뷰어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바로 '인터뷰 대상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누구보다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다.
먼저 인터뷰 대상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파악해서 배려한다면 심리적 안정감을 빠르게 형성할 수 있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누구나 평소에 말하기 꺼려졌던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게 된다. 인터뷰 대상에 대해 깊게 알수록 질문의 수준도 높아진다. 높은 수준의 질문은 높은 수준의 답변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인터뷰 대상을 누구보다 잘 알면 대화의 질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라는 단어 뜻 그대로 상호 간의(Inter) 관점(view)이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기억해야 한다. 인터뷰는 둘 간의 대화이자 그것을 바라보는 제삼자를 위한 대화라는 것을. 인터뷰 대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도 고려한 대화이어야만 한다. 대화 당사자들끼리만 재미있고 끝나면 안 된다. 제삼자가 소외되어는 안된다. 인터뷰어가 '누구보다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 경전에는 "(부처의 말씀을)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제자가 부처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이때 제자들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모르는 척 질문하고 부처의 질문에는 때때로 틀린 답변을 한다. 이를 통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진리를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방편설법이다.
부처의 제자가 그러하였듯 인터뷰어 또한 제삼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세상을 처음 바라보는 아기의 눈으로 인터뷰 대상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잘 아니까 모두가 잘 알 거라는 고정관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