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이 존재하면 그 물질이 갖는 에너지에 의해서 시공간이 휘게 된다. 이러한 시공간의 휘어짐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바로 블랙홀로서, 블랙홀에 들어간 모든 물질들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특이한 성질을 지녔다.
- 박재모, 현승준,, <초끈이론>, 살림, 2023 중 -
넷플연가라는 플랫폼에서 <100권보다 나은 1권의 벽돌책>이라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벽돌책을 4회에 걸쳐 나누어서 읽고 관련내용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이번 시즌에 선정한 벽돌책은 최고의 대중과학서로 꼽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3회 차 모임에서는 <코스모스> 7~9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핵심이 되는 주제는 '시공간'이었다.
우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덕분에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천지인(天地人)으로 우주를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천지인은 각각 '시간', '공간',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경험하지 전에 알 수 있는 선험적인 형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인간에게 '시공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탑재된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과학책을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동서양사상을 언급한 이유는 '시공간'은 다분히 철학적인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공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정의하기 극히 어려운 개념이다. 이를테면 "시간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간단한 질문에 그 누구도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다분히 철학적 사유로 흐르게 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한 참여자분이 "사유에도 중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마치 질량이 높은 물체가 주변의 가벼운 물체를 끌어당기듯이, 높은 수준의 사유는 주변 사람의 사유를 끌어당긴다는 맥락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가리켜 인플루언서(Influencer)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인'을 영어 'in'이 아닌 '끌 인(引)'으로 해석하곤 하는데 이와 비슷한 생각이라 크게 공감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태양계는 이름 그대로 태양의 압도적인 질량이 만들어내는 중력이 지배하고 있다. 엄밀하게 보면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인간의 사유도 이와 비슷하다. 각 시대가 만들어내는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유가 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간단히 말하면 사유의 질량이 큰 지식인들의 총합으로 구성된다. (물론 이도 엄밀히 따지면 칼 융이 말한 원형(archetype), 환경적 변화, 대중의 열망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겠지만 이 모든 것이 사유의 질량이 큰 지식인들의 사유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자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는 개개인의 사유도 이러한 압도적인 질량의 시대정신을 공전하는 사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에게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가 자유의지로 태양을 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넷플연가에서 진행하는 <코스모스> 모임에 놀러 오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과학책을 읽고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이다. 답을 하자면 오늘 나의 글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분방하게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chaos)의 정반대에는질서를 의미하는 코스모스(cosmos)가 서있다. 이러한 코스모스를 다루는 모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화의 내용은 혼돈 그 자체다. 애초에 어느 정도 의도한 바도 있지만 참여자분들의 다양한 생각이 더해지니 카오스라는 코스모스가 완성된 느낌이다.
극과 극은 닮아있다는 말처럼 카오스와 코스모스도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동일한 개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