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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Sep 08. 2022

사춘기 딸이 ADHD 검사를 받았다.

특별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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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행복 정신건강의학과>. ADHD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는 딸의 말에 근처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병원 간판을 보며 하연이가 말했다.

"엄마 딱 정신과랑 어울리는 이름이네."

개방된 분위기에 환한 조명의 입구도 마음에 들었다. 로비에 있는 4줄의 소파에 빈자리가 보이지 않게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병원 후기에서 다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이 '대기시간이 길다' 였기 때문에 1시간은 기다리겠거니 하고 접수 후에 빈자리를 찾아 편안하게 앉았다.  일반내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표정이  편안했다. '어디가 아파서 온 걸까?'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하연이와 게임을 하며 시시닥거리니 저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또 얼마나 이상할까.


병원을 빙 둘러보았다. 접수실 바로 옆에 언어치료실, 그 왼쪽 옆으로 ㄱ자로 행복 진료실, 마음 진료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사실 2개. 위치는 입구와 가장 가까웠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시선이 가장 나중에 머무는 곳이다. '이 또한 환자를  위한 배려일까.'


"다음 주에 또 만나"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 함께 유치원에서 듣던 톤이 높은 여자 선생님의 목소리 고개를 돌렸다.


"네~~~"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언어치료실에서 나오며 큰소리로 외쳤다. 발음은 어색했지만 목소리는 밝았다. 기분도 좋은 듯 엄마손을 잡고 폴짝거리는 걸음에 원피스 치마도 기분좋게 흔들렸다. '소아과인가? 상담센터인? 여기는 정신건강병원이지. 치료를 받으면 아픈 게 낳으니 웃으며 가는 게 맞지.' 때로는 어린아이의 본능적인 반응이 정확하다.


10여 년 전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회의 시선으로 마음이 어두웠고 숨기고 싶은 방문 기록이었다. 기는 더 어두웠다. 톤 다운된 조명에 어두운 색의 소파. 더 어두운 진료실. 증상에 대한 몇 가지 질문과 약 처방으로 단숨에 끝나버린 진료는 수십 년 겪어온 고통을 알약 몇 개로 대체해버리는 것 같아 다시는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 기억 때문에 하연이가 입원해서 정신과 진료를 권유할 때 선뜻 그러자고 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달랐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받으려고 간 것이니 건강검진받는 기분이었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이하연님 마음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아이만 들어가나요?"

"보호자는 따로 부르실 거예요."


5분 정도지나 아이가 나왔다. '5분이나 상담을 하네.' 아이는 검사를 받으러 가고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어떤 부분이 불편해 보이세요?"


상담 선생님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눈빛이 진지했고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연이의 스토리를 순서대로 말씀드렸다. 자살 일기를 썼고, 우울해했고, 약을 먹었고, 병원에 입원했던 이야기. ADHD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고, 어릴 적 이해할 수 없는 증상들이 정말 병일까 궁금해서 나도 동의했다는 것까지 국어시간 책 읽듯 또박또박 말했다.


"학교에서 공황발작을 해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그 증상은 언제부터 나타났나요?"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혼난 뒤부터라고 했어요. 그전에도 불안해서 손톱을 뜯기는 했지만 심한 호흡곤란이나 공황발작은 없었어요.'


"아이가 말하는 증상들은 ADHD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맞아요. 검사를 해보면 더 정확해 질테니 일주일 후에 결과 듣고 이후 치료를 상의해보죠."


진료실을 나왔다. '일단 선생님은 합격. 이 정도 진료면 상담센터도 아닌데 훌륭하지.' 어떤 희망 같은 것이 속에서 올라왔다. 아픈데 이유를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 검사를 받으러 다니던 사람이 드디어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기분일까.


 '나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를까?'

 '나는 왜 자꾸 실수하지?' 했던 하연이의 마음.


'내가 아이에게 잘못해서 그런가'

'나는 엄마자격이 없나?' 스스로를 자책했던 마음.


"단지 당신들만의 잘못은 아니에요. 아픈 거니까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검사실에서 하연이가 나왔다.

"검사 잘했어?"

"응. 시각이랑 청각 주의집중력 검사를 하더라고. 시각은 집중 잘한 것 같은데 청각은 놓쳤어. 질문지 검사도 하고."

"다음 주에 결과 나온다고 하니까 학교 개학하기 전에 오자."


주의력 검사는 비보험이라서 10만 원 검사비를 추가로 결제했다. 아이는 결과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인터넷 자료, 논문자료까지 찾아 나를 보여주며 "엄마 이것 봐. 나랑 정말 똑같지. 나는 이상한 게 아니었어." 하고 연신 감탄을 했기 때문에 자신은 이미 ADHD라고 확신했다. 하연이가 보여주는 자료에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하연이가 있었다.  


 



일주일은 편안하게 흘렀다. 다시 병원.


"검사 결과는 경계에 있어요. 어떤 부분은 수치고 높고, 어떤 부분은 낮은 것으로 보아 자라오면서 스스로 노력해서 좋아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수치가 높은 부분은 주의력 결핍이 맞으니 아마 더 어려서 검사를 했으면 맞게 나왔을 것 같아요. 검사 결과와 아이가 말하는 증상들을 종합해서 약을 먹어보도록 하지요. 주의력과 불안 공황 중 어떤 약을 먹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주의력 약을 먼저 먹자고 했더니 내일이 개학이라 불안하다고 해서 긴급할 때 먹도록 불안증 약도 같이 처방했어요. 아이가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까 좋아질 거예요. 부작용이 두통, 복통, 멍해짐, 불면이 있을 수 있는데 흔히 나타나지는 않아요. 일주일 먹어보고 다음 주에 다시 보지요."


"매일 먹어야 하나요?"


"효과가 12시간 정도 지속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먹이세요. 밥 먹고 먹으라고 하고요. 학교 안 가는 날은 안 먹어도 괜찮아요."



약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왔다.

"엄마, 상담사는 대단한 거 같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짧은 시간 대화로 마음을 열고 말하게 하잖아."

정신과 진료는 처음이었지만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감정과 행동을 이해해주니 자신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것 같아 울컥했다고 말했다.


"엄마 내가 말하다 격해서 눈물이 나오려 하니까 선생님이 이러더라. '왜 다시 슬퍼지고 그래요.' 나는 이 말이 위로가 됐어. 나는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이건 병이니까 약 먹으면 낳는 거니까 슬퍼하지 말라고 해주는 거 같았거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내가 왜 우울했는지 알 것 같아. 내가 참 못나보여서 자존감이 무너졌거든. 찾아보니까 우울증으로 약도 상담도 차도가 없을 때 ADHD 검사를 받고 자신을 알게 되는 사람이 많대. 나도 그런가 봐. 이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 같아. 나를 창피해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나 그래서 좋아."


정신과 진료를 신뢰하지 않았었다. 마음의 병이라고만 생각해서 알약으로는 치료될 수 없다고.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한 검사 데이터로 진단하고 상담해주는 일은 아이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런 병을 앓고 있으면 당연한 증상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

텀블러가 필요하다고 했다. 운동할 때 마실 물을 담을 용량이 큰 텀블러. 워낙 물건을 잘 잃어버리니 비싼 물건은 잘 안 사준다. 그걸 아는 아이가 다이소에서 기웃기웃했다.

"하연아 엄마 스타벅스 쿠폰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거기 예쁜 텀블러 많아."

진한 초록색, 빨대형 말고 뚜껑형. 신중히 골라 '카라멜마끼아또'까지 담아 집으로 왔다. 다음날 개학이라 할머니 집에 가야 했다.


"엄마가 차로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줄게.  

"약 잘 챙겼지?"

"당연하지. 내일 아침에 먹고, 불안증 약 하나 챙겨서 갈게. 뭔가 든든해."


딸과 기분 좋게 인사하고 지하철 계단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봤다. 더 이상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닌 게 감사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를 알아갈수록 마음이 아린다.





집으로 가기 위해 D 버튼을 누르는데 진한 초록색 텀블러가 보인다. 톡이 왔다.


'엄마, 미안. 텀블러 놓고왔다.'

'괜찮아. 다음에  갖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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