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파도소리와 달빛과 감수성에 취..한..다..
처음 그 곳에 간 건 2017년 3월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으로 일하던 친구가 최근에 생긴 곳이라며 금능 해변을 지나, 포구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들어가는 길목에는 ‘금능 반지하’라는 투박한 글씨와 화살표가 그려진 표지판이 서있었다.
제주까지 왔는데 굳이 반지하 카페라니,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는 서울에도 넘쳐난다. 제주에 온 만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카페를 가고 싶었는데, ‘반지하 카페’라는 이름에 입구부터 거부감이 느껴졌다. 친구가 굳이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오나 싶었을 정도로.
하지만 표지판을 지나 짧은 골목길을 돌자마자, 바로 탁 트인 마당과 바다가 보였다. 적당한 크기의 마당은 나즈막한 돌담과 함께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경계선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와, 여기는 오션뷰가 아니라, 오션이구나.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는 카페 공간만 반지하에 움푹 들어가있고, 마당 모든 곳이 야외 테이블이었다. 평일이었는지 생긴지 얼마안되어서 그랬는지, 아무도 없는 드넓은 마당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기네스를 들이켰다. 3월이라 아직 추운 날씨였는데, 탄산이 적은 흑맥주라 그런지 추위보다는 술기운에 몸이 금새 달아올랐다. 역시 바다보며 마시는 낮술이 최고지, 우리는 별로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바다를 보며 한모금, 사진찍으며 한모금, 한참을 놀았다.
하지만 금능 반지하의 진짜 매력은 밤이다. 밤이 되면 푸른 바다는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파도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어두워진 밤에 시각이 약해지면서 청각이 더 강해지는 건지, 마당에 앉아 밤처럼 까만 흑맥주를 들이키면 안주처럼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보름달일 때는 파도의 하얀 끝자락이 보이고, 초승달일 때는 소리만 들렸다. 밤에 그 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면 나와 친구는 유독 기분이 몽글몽글해져서, 오늘의 안주는 파도네, 따위의 말을 서스름 없이 했다. 부끄럽지만 난 관광객이니까, 여행지에서 이 정도 감수성은 부려도 되지. 어둡지만 않았으면 친구와 나는 다이어리를 꺼내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도 쓸 감정이었다. 그런 감수성은 반지하를 나오자마자 깨지고 마무리는 한라산으로 했지만.
금능 반지하는 아직도 있다. 주인이 바뀐 건지 마당 인테리어는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바다의 경계선에 있다. 제주의 많은 가게에서 술을 마셨지만, 관광객답게 여행 감수성과 파도소리에 취하고 싶을 때는 역시 금능 반지하의 흑맥주 만한 것이 없다. 파도소리와 달빛에 비친 당신의 눈동자에 치얼스, 하더라도 뭔가 용납이 되는 그런 진짜 파도소리와 달빛이 있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