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가 바뀌기 전에 내가 담당했던 고학년반 아이들은 대체로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없었다. 고학년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와 처음 수업을 했던 3학년이었을 때도 내가 단어와 읽기를 수업시간에 집중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3학년이었던 당시에도 우리 반에는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우리 반에 들어오면 엄마들이 다른 반으로 옮기거나 시간표를 바꾸려 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제일 오래 근무해서 학원 사정이나 커리큘럼 관리를 맡아서 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아이들 실력이 눈에 띄게 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2학기 되면서 시간표가 바뀐 후 담임을 맡게 된 2, 3학년 꼬맹이들이 수업 시간에 책을 못 읽는다. 누구 하나만 못 읽는 것이 아니라 반 전체가 다 책을 읽지 못한다.
외부에서 중간에 합류한 친구도 있고 우리 학원에 들어온 지 이제 막 3개월 밖에 안 된 친구도 있고 레벨이 같은 아이들만 모여있다 보니 전부 다 reading이 안 되는 아이들만 모여있는 반이다. 읽지를 못하니 숙제는 언감생심 낼 수도 없고 지금 진도를 나가는 책을 못 따라오고 있는 수준이다. 아이들 실력이 안 따라주니 그전부터 누구 하나 단어를 가르쳐 테스트를 진행할 엄두를 아무도 못 내고 있었다.
단어를 모르니 당연히 책을 못 읽고 수업 시간에 쏟아진 질문 90%가 전부 단어 뜻을 물어보는 질문이다.
"famous (파머스)가 무슨 말이에요?"
"homework이 무슨 일이에요?"
"field trip (파일 트립) 이 뭐예요?"
누군가는 웃을 수 있겠지만 이 아이들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레벨이 낮은 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모르는 상태로 반을 맡은 것도 아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달을 가르쳤는데 지난주에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결정타를 날린 계기가 생겼다.
"선생님 물이 영어로 뭐예요? 워러인 건 아는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해요?"
질문의 수준도 낮지만 평소 수업시간에 이런 기본적인 단어의 스펠링을 몰라 화이트보드 가득 단어를 써줬기 때문에 그날도 개의치 않고 단어를 평소와 같이 써주면서 수업을 마쳤다.
꼬맹이들 수업이 끝난 후 다들 나가고 고학년들이 기다리고 있는 강의실로 이동하기 위해 내 필기도구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그 강의실에서 수업이 있는 한 남자아이가 들어오면서 보드에 가득 쓴 단어들을 보고 했던 한마디에 더 이상 오냐오냐 하면서 수업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와~~ 선생님 얘네 water도 혼자 못써요? 부럽다 수업 내용이 되게 쉽나 보네"
같은 3학년 남학생, 심지어 그 반도 같은 교재를 사용하는 반이다. 그렇다! 수업 내용이 쉬운 게 아니고 단어를 외우지 않고 선생님에게 의지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실력이 부족하다고 우쭈쭈 하면서 다 써주고 알려주니 아이들이 굳이 단어를 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나 역시 고학년만 계속 맡아서 가르치다가 오랜만에 저학년을 맡아서 마냥 귀엽다고 생각했고, 중간에 담임이 바뀌면서 갑자기 고학년처럼 공부시키면 당연히 힘들다, 선생님이 무섭다는 컴플레인이 나올 수밖에 없기에 차근차근 가르친다 생각하고 마냥 넘어갔는데 같은 학년의 다른 반 남학생의 이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10월부터는 매 수업시간마다 단어를 외워서 간단하게 테스트를 할 테니 숙제로 5개씩 외워오라고 했다. 첫 주에는 당연하게도 다 틀리거나 잘 못 맞추더니 한주가 지나고 서서히 습관이 잡혀가더니 이제는 5개는 거뜬히 외워온다. 그래서 11월부터는 단어 개수도 6개로 늘리기로 했다.
시간이 약일테니 서서히 늘리면서 단어도 알아가면 점차 나아질 거란 기대를 가지고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아직은 큰 문제없이 다섯 개씩 잘 외우고 있어서 다들 대견하다.
아이들 잘못이 아닌 선생님의 잘못을 그나마 해 넘어가기 전 빨리 눈치챘기에 망정이지 마냥 오냐오냐 하다가 4학년인데 water도 혼자 못쓴다는 소리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듣기 전에 지금이라도 가르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