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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의 하루 Oct 22. 2023

하노이 요가 TTC 트레이닝 코스

울다가 명상하다가  티칭하기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봐야지



제니스 요가 스튜디오

YTTC(Yoga Teacher Training Course)


6주 동안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 총 200시간. 아이들 학교 갈 때 같이 등교, 하교 직전 귀가.


15 명의 베트남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한국인이었고, 사용 언어는 영어와 베트남어뿐. 20년 동안 요가를 했고 좋아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요가는 아사나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영어 듣기 평가 같은 철학 수업에 해부학까지. 이걸 왜 배워야 하나 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시켰다.



발가락을 들어 올리면 발 아치, 무릎뼈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평발이었지만 40년 넘게 그냥 살았던 나에게 일생의 중요한 순간이었다. 평발인 나는 발 아치가 없고, 무릎과 골반이 틀어져 척추측만에 턱관절까지 아팠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요가를 찾아 헤매던 이유였던 것. 요가를 하면 몸이 편안해졌다가 얼마 동안 쉬면 몸이 불편하고 비뚤어지는 느낌이어서 다시 요가원을 찾아다녔다.



첫 번째 난관은 영어였다. 하노이 와서 영어가 늘었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듣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영어 요가 용어, 신체 용어에 난관에 부딪치며  골반, 관절, 뼈이름, 등 네이버 영어사전을 끼고 살았다.



첫째 주와 둘째 주는  더디게 지나갔다.


어느 날은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느 날은 조용한 명상 시간에 개 짖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요가 트레이닝 코스여서 장점은 점심시간에 간단히 먹고 매트와 볼스터 위에 누워서  휴식하며 아주 짧지만 낮잠도 잘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베트남 모델 친구 리즈와 단짝이 되었다. 우리 둘은 고등학생들처럼 해부학 시간에 다크 초콜릿을 몰래 나눠먹기도 했다.



오후 시간은 대부분 철학 수업이었다. 베트남 튜이샘이 담당이라 베트남어로 먼저 설명하고, 나만을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점심 후 틈틈이 졸며 쉬던 베트남 친구들과 달리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며 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주와 넷째 주


저질 체력인 나는 아사나 수련으로 단련도 되었음 애도 불구하고 하루종일의 수업에 지쳐갔다. 친절하게 다가와주는 베트남 친구들과도 언어 장벽에 막히고, 우리는 마음만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서로에게 항상 웃으면 인사하지만 의사표현을 마음 놓고 못하는 답답함이란.



다섯째와 여섯째 주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집에 있는 아이들과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약간의  미안함을 가지고 시간은 또 흘러간다. 언어의 갑갑함에도 불구하고 몸은 단련되고 있었다. 내 마음도 집중했다가 못 했다가 업다운이 반복되었고,  중간엔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마저도 수련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거의 모든 대인 관계는 못하고, 좋아하는 골프와 테니스도  어쩔 수 없이 중단 상태였다.


수리야나마스카 모의 티칭을 앞두고는, 집에 오자마자 순서외우고 수련해 보고 영어로 암기까지 해야 했다. 남 앞에 나서는 걸 제일 두려워했는데 할 수 없이 덜덜 떨며 시연을 해냈다. 그것도 영어로.


이후에 가장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마지막주 필기와 실기 테스트였다.


5가지 아사나를 정해서 20분 안에 티칭 하기.



지금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데 그때는 넘기 힘든 큰 산처럼 보였다.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리고, 자면서 외우고 ,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세 연습하고! 세상의 요가 선생님들이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대망의 테스트 데이.


실기는 이틀에 걸쳐 15명 정도가 순서를 뽑기로 정했는데 난 13번. 앞 번호를 받은 친구들은 먼저 해야 하니 걱정의 한숨을 내쉬고, 뒷번호를 받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 있어  러키한 듯했다.



첫째 날 테스트는 시험당사자, 참여자 모두 긴장과 집중도가 높았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는 이미 시험  본 사람들은 긴장이 풀려버렸고 하필 나는 둘째 날에서도 거의 마지막 순서라서 이미 지쳐있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티칭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미 모두들 정신은 스튜디오 밖에 가 있는 듯하다. 점심시간 직전이라 배까지 고프고, 집중하지 않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때, 튜이 선생님이 내 티칭을 잠시 중단시키더니 베트남어로 뭐라고 학생들에게 주의시키는 느낌이다.


케이트는 혼자 한국인이고
(나이도 많고)
영어도 베트남어도  어려운데 우리가 응원해 주자.  


이런 내용이었을 것 같다.

이제 학생들이 조용해졌고 다시 계속하면 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6주가 스쳐 지나간다.


아니, 하노이에 처음 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사건부터 영어 하느라 고군분투했던 기억까지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곳 베트남에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 속에서
난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이거 해서 뭐 하겠다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우리는 같이 얼싸안고 함께 울다가 웃다가 그 순간에 우리는 그냥 친구였다. 소통이 안 되는 한국 친구가 아닌 이해가 안 되는 베트남 친구가 아닌 그냥 사람인 친구.



우리는,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 함께 명상을 했다.


울다가, 웃다가, 명상이라니.



명상의 참 파워를 느낀 순간이었다. 튜이샘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시작하라고 했고, 나는 기적처럼 술술 그동안 준비한 티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이 순간은 이번 TTC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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