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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May 25. 2019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산문

내 영향인지 요새 들어 서울대 근처 서점에서 하는 독서모임에 나가고 있다는 동생이 적극 추천해서 읽게 된 책. 읽을 당시에는 평론가라 그런지 약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는데 중간중간 접어놓은 글귀들을 다시 보니 곱씹어 볼만하다.


언제 가장 슬펐을까 생각해 보니 별다른 기억이 없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크게 슬프지 않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3년 동안 가족들이 삼교대로 간병했었고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감정이 메마른 인간인가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종종 울컥해진다. 하지만 아직도 펑펑 울어본 기억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상황이 오면 어색하다. 작가는 “제대로 이해해야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라고 얘기한다. 슬픔도 이해해야 하다니 책 제목도 그런 딜레마를 표현했나 보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가볍게 무시한다. 그리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간다. 프레드릭 베크만의 [우리와 당신들]에서 “문제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대부분 우리가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맞는 거 같다. 사람은 대부분 이중적이다.


내가 진실로 깨닫고 성장했을 때는 언제였을까? 과연 어릴 때에 비해서 얼마나 달라진 게 있기나 한 걸까? 책에서는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배우고 그때 겨우 변한다”라고 한다. 아마 본성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바뀌었더라도 아주 조금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처절하게 깨지지 않아서 그대로 일지 모른다.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조금 위로가 된다.


강신주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철학적인 삶의 반대말을 습관적인 삶이라고 했다. 현실은 매 순간 습관적으로 하지 않는 게 없다. 철학적인 삶은 어렵다. 어떻게 매 순간 사유할 수 있나? 그러니 평소에 사유해 놓아야 한다. 누구나 노예의 삶을 살기보다는 주인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노예의 삶을. 어쩌면 자발적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문학은 질문이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답이 없다




p96

“학대받은 아이들은 아프고 슬프니까 따뜻하게 위로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노래만 불러야 할까? 제제의 흥미로운 이중성을 노래한 아이유가 그랬듯이" 그러자 그 학생은 고요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중성 자체가 학대받은 아이들의 특징이에요"


p176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p217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p222

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가장 강력한 두 후보가 바로 ‘미소지니'(여성 혐오)와 ‘국정농단'일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도 정교한 방식으로 여성이 배치된 원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미소지니의 구조적 측면이 이 용어(여성 혐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핵심은 구조적 혐오에 있는데 그보다 개인적 혐오의 층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


p263

인간이라면 기본적인 생존에 만족할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이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그런 갈망이 없다면 그것이 곧 노예의 삶이라는 것.


p280

한 작가에 대해 신속,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일단 세 권의 책을 읽으면 된다. 데뷔작, 대표작, 히트작. 데뷔작에는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에, 대표작에서는 그 작가의 역량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히트작은 그가 독자들과 형성한 공감대의 종류를 알려주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


p371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어느 쪽이 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아주 심각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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