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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작가 Sep 02. 2024

운명​ / 권분자

짧고 긴 사유


운명


권분자



좌석버스 의자에 앉았는데

앞 의자 등판에 내걸린 광고는

인간사(人間事) 다 엿본다며

이사문제 자녀문제 결혼운이 궁금하신 분은

전화하라며 부추긴다


앞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나는

앞사람의 뒷통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보고 싶었다


그리하면 버스 안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하겠지

달리던 버스는, 지구대 앞에 정차하겠지


누군가의 발길질에

파괴의 흔적 껴안고 살아간다 믿었던 불구

중첩된 우울을 이젠 결박하고 싶다


인간사 다 엿본다는 전화번호를 달고

만원의 사람들 상처를 질질 끌고 버스는

지구 표면 길이 세워 둔

채집망 걸친 가로수 사이를 유유히 굴러가겠지


내게 뒷통수를 얻어맞은 앞사람은

누구일까? 석가나 예수나 장자일지라도

내게 무슨 항변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머지않아 뒷자리에서

내 뒷통수를 후려칠 달이

자꾸 버스를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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