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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2 / 권분자

산문

by 권작가
블면증, 저수지.jpg


불면증2


권분자



내 방 구석진 곳에서 은근한 빛을 내뿜고 있는

작고 동그란 램프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고향마을 저수지를 바라보는 것 같다.

깊은 밤이면 중력을 잊은 달처럼 탁자 위에 조용히 떠올라,

방바닥에 얇은 물결을 드리운다.

램프는 지나간 시간을 켜켜이 가두더니 이젠 내 삶까지 저장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즐겨찾던 곳은 집 뒤편의 작은 저수지였다.

저수지는 언제나 축축한 흙냄새와 짙은 풀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물가에 서면 공기마저 깊어지는 듯했고,

가만히 손을 담그면 물속의 차가움이 손목뼈를 타고 몸의 중심까지 번져왔다.

그 고요함은 모든 것을 감싸 안은 어머니의 품속 같았지만,

비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악마의 얼굴로 표정을 싹 바꾸어

잔뜩 불어난 수면 아래에서 알 수 없는 음울한 기척이 올라와

아이를 한순간에 삼켜버리는 위험한 아가리가 되기도 했다.

물결 한 점 없는 새벽,

가득 고인 진실을 품은 저수지는 예나 지금이나 침묵이다.

하지만 해 질 녘이면 숱한 사건사고들이 물 위를 아프게 떠다니다가

바람이 지나갈 때면 미묘한 괴성을 질러댔지만,

모두 덧없이 소멸되곤 했었다.

나는 그 물거울 앞에서 처음으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물속에서부터 은근히 올라오는 습한 냉기와 발끝에 닿는 진흙의 질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떨림과 아픔으로 층층이 쌓여 있어

어디까지가 나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램프 앞에 앉아 있으면 문득 그 시절의 저수지가 떠올라

램프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더듬어본다.

여전히 깊이를 알 수 없는 내 안의 감정들이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조용하게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불면의 파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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