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그해 봄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나는 당신과 마주앉아 통닭을 먹었다
나는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비출 검은 테가 못내 신경쓰였다
나의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사랑하게 될까 두려운 당신이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당신이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나를 살피는 당신의 말이
죽을듯이 두려웠던 나는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위로 하나에 나는 기어이
당신을 사랑하고 말았으니
그래 정말,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