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때까지

에필로그. '헤어짐'의 단상 모음

by 케니스트리

Mar 27. 2025

그가 퇴사하며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후 가끔 안부를 물을 때면 여전히 그날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회사 생활 속 동료에 대한 좋은 기억은 이렇게, 잘 보내며 맞이하는 이어짐 속에 머문다.

그들은 우릴 떠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회사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함께 올라온 어리둥절한 초보 배우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로에게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승선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빠르게 적응하려는 본능이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조직 내에서 낯선 분위기나 환경이 조성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들고나는 사람들로 인한 변화가 가장 크다.

누군가 새로운 회사에 첫 출근을 하면, 그는 원래 있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고 여기며 조심스러워진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은 긴장으로 가득할 것이고, 머릿속은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조직보다 개인에게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열 명으로 구성된 팀에 한 사람이 새로 합류할 때, 기존의 열 명이 한 사람에게 적응하는 노력보다, 한 사람이 열 명에게 적응하는 노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담을 줄이고 적응 기간을 짧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렵게 채용한 직원이 업무에도, 관계에도 더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이를 맞이하는 과정, 온보딩(onboarding)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하차

지인이 운영하는 중고 의류 거래 플랫폼의 이름은 '반복'이다. 그곳의 구호는 '만나고, 헤어지고, 반복'.

처음 이 캐치프레이즈를 접했을 때 피식 웃었지만,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깊이 다가왔다. 내가 가진 물건도, 카페의 종업원도, 우연히 마주친 행인도, 깊은 정을 나눈 연인도 모두 만나고, 그리고 헤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의 만남은 반갑고, 대부분의 헤어짐은 아쉽다. 물론 좋은 만남과 좋은 헤어짐에 한해서.

반가운 만남은 좋은 에너지를 만들고, 좋은 헤어짐은 좋은 인연을 남긴다. 반대로 나쁜 헤어짐은 마음의 짐이 되거나 소모적인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가운 만남만큼이나 좋은 헤어짐을 위해, 함께 보낸 시간과 이별의 순간에 조금의 정성을 들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가 온보딩 못지않게 오프보딩(offboarding), 즉 헤어지는 과정에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이별 적응

하나씩 흐르던 별똥별도,

같은 자리에 빛나던 샛별도

더는 별다른 감정 없이 바라볼 수 있음에

아주 특별한 공허함을 느끼다.

기업이 요동치는 시류를 만날수록,

승선원들은 더 단단히 배의 난간을 붙잡고 힘을 모아 항해해야 한다.

고전적인 팀워크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요즘 회사에서 일하는 개인들은 더 이상 배의 승선원이 아니라,

각자의 '배'로 함께 항해하려는 듯하다.

각기 다른 배들은 함대를 이루기도, 벗어나기도 하면서 '대략'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은 의리나 정(情) 같은 감성적 지지대보다,

훨씬 실질적인 이해관계다.

그렇게 이별은 잦아지고, 우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이별 적응(2)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단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야.

그래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中

익숙해지는 것들 중,

이별과 단념이 가장 슬프다.

리뷰(re-view)

“기업평가 플랫폼에 올라온 악성 리뷰가 지원자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데,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요?”

한 인사담당자 강연에서 연사가 질문을 던졌다. 지인에게 부탁해 긍정적인 리뷰를 남기는 방법,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해 부정적인 리뷰를 가리는 방법, 댓글로 소통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던 중, 누군가는 가장 본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악성 리뷰를 살피며 회사가 고칠 점은 고치고, 개선할 부분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대안이라기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에 가까운 의견이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연사는 이런 사례를 덧붙였다.

“어느 회사는 퇴사한 제게 매달 같은 날 10만 원씩 지급하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함께할 때 좋은 인재였고, 떠난 후에도 여전히 좋은 인연입니다. 10만 원은 함께해 주셨던 시간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렇게 6개월간 매달 10만 원을 선물 받았고, 결국 그 회사에 대한 좋은 기억만 남게 되었습니다. (웃음)”

이 이야기에서 첫 단추만큼이나 마지막 단추를 잘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례는 기업의 모범적인 이별 방식을 보여주지만, 연사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까지도 깊이 공감하게 만든 이유는 그 기업이 보여준 진정성 있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이런 미담이 특별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미건조한 이별이 흔한 시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숙한 마음

담으면 닿지 않고

말하면 쉬이 잊히고

쓰니 더욱 선명해지는,

마음.

쓰고 전하자. 만나고 배웅하자. 마음은 아려도 의미는 더 깊어진다. 스스로도, 관계도, 그들과의 미래도. 보상 체계나 오프보딩 방법론 이전에, 동료로서, 사수로서, 또는 상급자로서 먼저 직원을 그런 미래로 초대하고 이끌어 주자. 성숙함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떠나는 이의 따뜻한 기억을 통해 세상을 데울 것이다.

바람

이별에는 떠나는 입장과 보내는 입장이 있다. 후자가 더 잦다. 그래서 떠나는 경험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남겨진 이 보다 떠나는 이의 이별 잔상이 더 진하게 남기에, 그가 혼자 출입문을 나서지 않기를,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닫히는 문을 바라보지 않기를, 그의 마지막 시선이 바닥이 아니라, 함께했던 동료들의 눈에 한 번 더 머물렀기를, 응원을 가득 담아 더 힘차게 걸어가기를, 그런 마음으로 함께, 문을 나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