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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란다

추구하는 리더의 모습에 대하여

by 케니스트리 Mar 24. 2025

나는 발음과 발성이 종종 심각히 나빠진다. 오래전 치료의 부작용으로 한쪽 귀의 청력이 안 좋아졌고,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혀가 굳기 때문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 그럴 때 차분함과 정숙함을 유지하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는 않다.


약 30년 지기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해외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한 번 만나면 할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언젠가 캐나다에 가서 친구를 만났을 때는 둘이 밤을 새워 이야기하기도 했다. 신기한 건, 이 친구는 나의 바보 같은 (생각을 말로 옮기는) 발음도 천재같이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분명 내가 하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도,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오랜 인연에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것을 진한 공감으로부터 깨닫는다.


Education ≈ 교육


그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를 시작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친구의 최근 관심사인 육아가 됐다. 얼마 전 아이 아빠가 된 친구와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며, 우리 어릴 때 무서웠던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다. 자주 회초리를 들던 선생님. 친구가 하는 캐나다 교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문득 교육이란 단어에 얽힌 사실이 떠올랐다.


"한자 교육(敎育)에는 체벌과 다스림이란 의미가 들어 있고, 영어 Education은 '밖으로(E-) (잠재력을) 끌어낸다(duce)'는 라틴어에 기반을 한대."


엄밀히 교육과 education은 같은 단어가 아니며, 동양의 교육관과 서양의 그것이 근본적으로 언어부터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하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we don’t raise our children, we grow with them."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자라는 거야.")


친구가 사는 캐나다 마을의 이웃 아저씨가 했다는 이 말은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왔다. 키와 인식이 커가고, 자신의 의사를 더 또렷하게 표현하게 될 아이들과, 그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돌보며 스스로도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갈 부모가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러면서 하게 된 깊은 공감이, 바로 회사라는 공간으로부터 전해진 반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함께 성장하는 리더


과거 린(Lean), OKR이나 3 Whys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추구하는 일하는 방식을 접하며, 지피지기 없는 이론의 적용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리더가 자신의 성공 스토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현 구성원을 부정하면 생기는 정체 현상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조직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도 흔히 보았다. 특히 문화를 막연하게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형식과 방법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소통이 경직되는 경우도 봤다. 모두 함께 성장하기는커녕 서로를 불신하며 문화적 퇴보를 겪는 기업문화 사례다.


반면, 공통의 선과 공동의 발전을 추구하는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배려 깊은 태도, 상냥한 언어, 날카로운 통찰력, 그리고 실수 없는 업무 센스를 갖췄다면 분명 흔치 않은 훌륭한 리더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췄다 하더라도, 단 하나가 빠져 있다면 우리는 그를 ‘함께 성장하는 리더’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 하나란 바로 '책임'이다. 책임 있는 리더는 이끌때는 이끌고, 낮출때는 낮춘다. 또 지나치게 권위적이지 않다. 나 혼자만이 아닌, 조직의 발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리더가 되어보니, 권위가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듯, 책임 또한 스스로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하지만 수평적 조직문화를 표방하는 회사들 가운데 상당수의 리더들이 수평적이어야 할 '상호 존중'의 문화와 수직적이어야 할 '지휘'와 '책임'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위는 특권 아닌 책임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이렇게 말했다.
 

"지위는 특권이나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부여한다."
 ("Rank does not confer privilege or give power. It imposes responsibility.")


또한 그는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리더십이란 한 사람의 시야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고, 그 사람의 성과를 더 높은 기준으로 끌어올리며, 그의 인격을 본래의 한계를 넘어 확장시키는 것이다."
 ("Leadership is lifting a person's vision to higher sights, the raising of a person's performance to a higher standard, the building of a personality beyond its normal limitations.")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이 문장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본의가 단순한 유행이나 기교가 아니라 뿌리와 같은 본질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문장의 본뜻처럼, 요즘의 동료들도 리더십의 진짜와 가짜를 잘 구분한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책임을 회피하거나, 실력보다 권위만 앞세우는 리더의 모습은 쉽게 간파된다. 실제로 '리더로부터 배우지 못해서'라거나,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라며 회사를 떠나는 이들도 많다.


함께 자라는 모습은 분명 앞에서 이끌거나 뒤에서 밀어주기만 하는, 그런 힘겨운 모습이 아닐 것이다. 어느 시점에 어디에 서 있든, 리더와 동료는 서로에게 부담인 존재가 아닌, 동행의 기쁨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몸의 감각이 점점 퇴행해도, 인식은 올바른 자리를 잊지 말자'라고, 요즘, 자신의 아이는 귀하다며 대신 선생님을 혼내는 것으로 ‘좋은 부모’의 역할을 다 했다는 부모들의 사례를 접하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표지 사진: UnsplashLinus Nyl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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