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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08. 2021

미국 사무실에서 지니어스 된 썰

공로상의 영광을 한국 교육과정에 바칩니다~^^


나는 현 직장에 매우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직장 중에서도 정말 좋은 자리임은 확실하다! 이민자의 입장에서 법적으로 차별이 금지되고, 그것이 지켜진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정말 큰 안전감을 주고, 동료와 상사들도 대부분 다 좋으신 분들이며, 맡은 일도 단순한 업무라 일하기도 편하다.


공무원의 장점은 안정적인 직장이라 망할 일 없고 월급 밀릴 일 없고 짤일 일 없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근무하는 기관 자체의 시스템은 무언가 획기적인 계기, 예를 들어 사기업으로 치면 회장님 지시, 정부 지시와 같은 큰 사건이 없고서야 발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아직도 타자기를 쓰고, 수기로 작성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었다.


왜 이렇게 일하는 시스템이 구식이지. 컴퓨터가 있고 프로그램들 정품으로 다 깔려있는데 대체 왜 안 쓰지. 왜 업데이트를 안 하지. 등등 답답한 점이 너무 많았는데 입사 후 딱 한 달 근무하고 나니까 딱 알겠더라. 그 이유는 바로바로


1 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이대로 돌아감 = 문제없음 = 바꿀 필요가 없음)

2 할 수 없으니까 (능력 자원 인재 투자금 등의 부족)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준 공무원으로 일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한국의 근무 환경은 엄청나게 효과적이고 빠르고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통합관리시스템이 있어서 노트북이나 심지어 핸드폰에서도 프로그램만 깔면 언제 어디서든 접속되고, 전자결제시스템으로 승인받아 내외부로 전송까지 가능하고, 이메일이나 클라우드 등 정말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일이 많아도 출장을 가도 휴가를 가도 필요하면 일을 할 수 있는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아주 바람직한 근무환경이겠다.


그런데 지금 사무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업무는 회사용 보안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회사용 컴퓨터로만 접속이 가능하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통합시스템은 따로 없고 각 시스템별로 각각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야 한다. 야근은 승인받은 시간에만 추가 근무를 할 수 있고 당연히 추가 수당은 나오지만 승인을 해주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튼 30대의 가장 젊은 피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컴퓨터로 모든 작업 과정을 옮겨놨고 정말 행정직 단순 업무이기에 일도 아주 쉬웠다. 그리고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밀려있던 몇 년치의 업무가 쓰나미처럼 몰려들었을 때, 빨리빨리의 민족인 나는 수기로 작성하던 이 업무방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팀장님께 이러 이런 방법도 있으니 계속 바꾸자고 말씀드렸지만, 팀장님께서는 공무수행에 적합할지 조금 오랫동안 고민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말까지 투자해서 상담예약을 잡던 분기별 일정표와 고객 명단과 담당자 배정표, 사건 마감일과 보고서 기한 일정표 등등을 전부 공유 파일로 만들어 보여드리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어서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적극 설득하였고 결국 우리는 내가 만든 시스템을 임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손으로 적던 연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쾌거를 이룬 것이다.


아무튼 학교 졸업요건으로 공부했던 MS Office 자격증 덕분에, 나는 =countif 랑 =datedif 만 알아도, 인쇄하려는데 프린터 오류라서 대충 껐다 켜줘도, 그림판으로 어설프게 저세상 느낌으로 이미지 파일 포스터를 만들어도 컴퓨터 지니어스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 받아온 평가들 중 최상일 듯하다. 뿌듯하기도 하지만 이게 맞는 건지, 내가 노오오오오오력을 한건 아닌데 이런 칭찬을 받아도 되는 건지 가끔 헷갈리기도 하는 느낌이다.







워라밸에서 라이프가 공허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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