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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08. 2021

그러면 옷은 누가 벗나요?

하와이 '북한 미사일' 오경보 사태


내가 느낀 이 직장의 특징은 모든 업무가 need to know basis라는 것이다. 딱 내 업무 내 직급에 필요한 만큼만 알려주고 더 이상 말해주지 않는다. 이게 딱히 비밀로 숨긴다기보다 어떤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업무를 하게 되면 내가 책임을 지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각자의 직급에 해당되는 만큼만 알려주는 것.


내가 한국에서 일할 때에는 상급자 대신 결제나 서류에 직인을 찍는 경우도 공공연하게 많았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에서 (상급자까지 결재가 된 상태인데) 어떤 오류나 실수가 나중에 발견되면 무조건 내 잘못이었고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고객님을 쫓아가서라도, 어떻게든 내가 고쳐놔야 했었다. 아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타 부서와 협력하는 경우 무조건 팀장을 통해서 전달되며, 대결은 상상도 못 하고, 내 직급에서의 실수는 내 책임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업무를 확인하는 절차를 만들고, 상급자가 직접 수기로 사인해서 결재하고, 기한을 충분히 갖고 일처리를 한다. 실수가 있어도 고치면 되고 시간이 없으면 기한을 미루면 된다.




사무실 내에서도, 외부기관과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 같다. 이곳은 각 기관마다 그리고 그 기관이 전부 정부기관이나 비슷한 업무를 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물론 각 기관의 독립적이고 자체적인 시스템을 존중하고 해당 업무에 특화된 업무처리 방법이나 능력을 맞춤형으로 개발할 수도 있겠다. 각 기관별로 유착관계나 부정부패, 비리 등을 예방하기도 보안유지를 할 수 있기도 하고, 전체적인 업무가 하나의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분산되어 큰 사건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각 기관으로 업무가 이전될 때마다 새롭게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에 따른 단점도 있다. 통일성도 떨어지고, 각 기관마다 새로운 번호를 부여해서 관리하므로 사건의 연계성이나 정확도도 덜한 것 같다. 게다가 매번 새롭게 케이스를 만들 때 들어가는 시간은 정말 낭비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듯. 그러니 적어도 2-3주씩 넉넉하게 아니면 17주씩 기다리라고 하니. 한국의 선진 시스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도 모를 수도 있다. 비자나 재판 등 안 그래도 복잡한 절차를 처음 겪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답답하고 힘든 여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거의 모든 개인정보를 다 얻어낼 수 있다. 신분증, 등본, 운전면허, 출입국 조회, 체포/수감기록, 학교 생활기록부, 건강보험 내역, 통신정보, 인터넷 사이트 가입이력, 은행조회, 재산/신용조회 등등등 게다가 통신사 가입 시 법원에서 명령받은 경우 위치추적 기능까지 전부. 가족관계 증명서 학생 제적부 등 민원 24에서 클릭 몇 번이면 뽑히는 우리나라 행정 만세. 연말정산도 클릭하면 끝. 한국에서는 외국인의 비자 신청, 갱신, 변경 등 온라인으로도 신청 가능하게 구축해놓았고 신분변경하는데 빠르면 며칠 만에 승인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통합시스템으로 한 번에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정말 좋으나 개인정보 항상 잘 보호되지는 않는다는 단점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비효율적인 업무 때문에 민원 처리가 아주아주 느리다. 면허증도 실제 카드를 받는 데 최소 3주는 걸리고 세금 환급도 실제 돈을 받는데 최소 한 두 달은 걸리고 무슨 서류를 떼야하는 경우에도 1-2주는 기본으로 걸리고 비자나 영주권 등 이민 관련 업무도 1-2년에서 10년까지도 우습게 걸리는 것. 그리고 그냥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또 실수가 적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 직원의 실수로 재난 안내 문자 발송 시스템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주 전체에 긴급 대피 안내 문자를 보내버린 사건이 있었다. 


BALLISTIC MISSILE THREAT INBOUND TO HAWAII. SEEK IMMEDIATE SHELTER. THIS IS NOT A DRILL.
(탄도미사일 하와이로 접근 중. 즉시 대피처 찾을 것. 훈련 상황 아님)


곧 재난 안내 문자가 실수로 발송되었다는 사실을 긴급하게 안내하였고 티비나 라디오로도 방송이 되었지만, 그 당시 주민들은 완전 충격과 공포에 빠져서 엄청난 혼란이 빚어졌다고 한다.


오경보를 발령한 직원은 해고됐고, 비상관리국 국장 역시 사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고 한다. 국장이 책임지니 다행인 건가. 이 사건은 당시 북한의 핵 미사일 공격을 가상한 첫 대피훈련이 실시된 지 한 달도 안돼서 벌어진 일이었고, 그 실패를 교훈 삼아 3년 뒤 신뢰할 수 있는 긴급 경보 발령 개선 법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실수를 통해 발전하는 것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만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국 같으면 정말 빨리빨리 해결됐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하지만 한국에도 사건사고가 많아서 어땠을지는 알 길이 없겠지.







https://brunch.co.kr/@kim0064789/7

미국은 왜 아직도 아날로그로 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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