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Mar 05. 2024

미국인 시어머니 신혼집 최초 방문의 건

미국인 남편 주관 고부 소통 간담회

내가 5월 중으로 무조건 이사를 간다고 선언하고 나서, 남편은 그 안에 시험을 꼭 보겠다고 또또또 약속했다. 그리고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복병으로 나가오는 시어머니의 하와이 방문. ㅋㅋㅋㅋㅋ..........


시어머니... 아아, 어려운 그 관계여.


시어머님은 정말 배울 점이 많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오신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건 나와는 매우 다른 분이고 배우고 싶지 않은 점도 꽤 많다는 사실이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하와이에 처음 놀러 오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 초 한 2년 간 시댁과 연락을 끊은 적이 있어 나에게 직접적인 연락이나 부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첫 단추부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세부사항은 조금씩 바꿨지만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싶은지 이 글을 통해 정리해보려 한다.


그동안 내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방법, 다만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서 수년간 꾸준히 해야 하지만, 그래도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방법을 복기한다.




1.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만약 기가 찰 정도로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면, 내 의사를 밝히는 대답을 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자기 자신이 내뱉은 말을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면서 그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언어감지          ⇌          남편어     

━━━━━━━━━━━━━━━━━━━━

남편: “어머니께서 (며느리인 내가 듣기에 불합리한 요구)라고 말씀하셨어”

나: “어머니께서 ‘~~~~~’라고 말씀하셨다고?”

━━━━━━━━━━━━━━━━━━━━

어머니께서 우리가 예행 계획을 세워서 같이 여행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

어머니께서 ‘우리가 여행 계획을 세워서 같이 여행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


효자 남편과 시댁 문제로 부딪히는 일은 딱히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는 것을 짧은 결혼생활이지만 깨달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나 맞불작전, 아니면 눈물로의 호소도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어감지          ⇌          남편어     

━━━━━━━━━━━━━━━━━━━━

(X) 너희 부모님은 무슨 염치로 이런 걸 부탁하냐

(X) 평일 내내 출근하는 며느리를 뭐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냐

(X) 내가 외벌이 해서 힘들게 사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으시냐

(X) 우리 형편 다 아시면서 대체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하실 수가 있냐

━━━━━━━━━━━━━━━━━━━━

-> ‘우리가 여행 계획을 세워서 같이 여행하면 좋겠다’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야?

-> ‘우리가 여행 계획을 세워서 같이 여행하면 좋겠다’는 말씀은 정확히 어떤 걸 원하시는 거야?

━━━━━━━━━━━━━━━━━━━━


굳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할 필요 없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도 어머니의 요구가 무리한 부탁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다만 상대가 조금 양보해서 그 부탁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사람이니까, 있을 수도 있지.


그 대신에 상대가 전한 말을 반복하면서 그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남편의 입을 통해 설명할 수 있도록 질문해 본다. 남편이 어머니 말씀의 의미를 짐작해 보고, 어머니의 부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가늠해 보고, 실현 가능 여부를 결정하도록, 이 모든 생각들을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가 며느리 입장인 나에게 직접적으로 대놓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면, 남편에게 일임한다. “그렇구나. 당신이 여행 계획 세워서 관광시켜 드리면 어머님께서도 무척 좋아하실 거야.” 끝.


그리고 나는 그 어느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노력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2. 행동으로 인지시켜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본인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인지시켜준다.


남편에게 일임하기로 했으면, 남편의 모든 결정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 시험 공부하느라고 바쁜 남편인데 내가 조금만 도와줄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남편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효도는 셀프다 백 번 말해봤자 소용없다. 한 번의 행동으로 알게 될 것이다.



          언어감지          ⇌          남편어     

━━━━━━━━━━━━━━━━━━━━

당신이 고민이 많겠다.

어머니랑 대화로 잘 해결했으면 좋겠어.

━━━━━━━━━━━━━━━━━━━━



남편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나의 입장을 일관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 어떤 조언도 잔소리도 도움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번에는 도와줬는데 왜 이번에는 안 도와주냐, 내가 한다고 그랬는데 왜 네가 나서서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이냐 등등 일은 일대로 내가 다하고 나서도 괜한 원망을 들을 수도 있으니까.


본인이 직접 해야 할 일들이 쌓이면 스스로 을 두고 거절할 수 있는 부분은 거절하고 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은 해드리겠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마디.



          언어감지          ⇌          남편어     

━━━━━━━━━━━━━━━━━━━━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

━━━━━━━━━━━━━━━━━━━━




3. ‘나’의 중심을 잡는다.


문장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 ‘나’를 주어로 한다. 시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기! 어머니에 대한 첨언을 하면 할수록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쉽게 저질렀던 오류는 포커스를 다른 사람에게 두는 사고였다. 예를 들어서 시어머니께서 상처 주는 말씀을 하셨다면, 시어머니의 말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시어머니께서 그 말씀을 왜 하면 안 됐었는지, 시어머니는 왜 이러저러하신지 등등 모든 생각과 말들이 시어머니로부터 시작했었다.


관계의 특성상 시어머니에 대한 공격을 할수록, 아들인 남편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내가 하는 말들이 백 번 옳을지라도 남편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이니까. 아들이니까.



          언어감지          ⇌          남편어     

━━━━━━━━━━━━━━━━━━━━

(X) 이렇게 말씀하신 시어머니가 잘못했어!

-> ‘나’는 이런 부분에서 상처받았어.

━━━━━━━━━━━━━━━━━━━━

(X) 시어머니께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

-> ‘나’는 이런 표현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



특히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기도 한다.


약간의 조종통제

약간의 죄책감 유발

약간의 효심 자극


이런 상황에서 그 말들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여 그것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아마 상대도 변명할 구멍으로 빠져나가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것은 분명하다.  

결국 우리 보고 여행 경비 부담에 가이드 역할까지 하라는 얘기잖아~

아들은 시험도 못 보고 몇 년을 허송으로 보내고 있는데 여행 계획 세우라는 말씀이 나오나~

시어머니도 안 해주시는 학바라지 하는 며느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으신가~

라고 팩트로 뼈 때려서 순살 만들어 봤자, 상대의 치부를 드러낼 뿐이지 나에게 이득 되는 건 없으니까.



          언어감지          ⇌          남편어     

━━━━━━━━━━━━━━━━━━━━

어머니께서 ‘예의상 누구도 초대하고 누구도 초대하면 좋겠다.’고 하셨어

-> ‘나’는 진심에도 없는 빈말로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지 않아. 우리 형편 상 그렇게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해.

━━━━━━━━━━━━━━━━━━━━

어머니께서 ‘부모가 죽으면 남아있는 형제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자주 연락하고 직접 소식 전해라.’고 하셨어

->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은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해.

━━━━━━━━━━━━━━━━━━━━



나의 행동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영향력을 받지 않고 나의 중심을 잡으면 된다. 끝까지,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한다. 아무리 나를 쥐고 휘두르려 해도, 나는 그들의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처럼,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편의 의사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남편이 누구도 초대하고 누구도 초대하고 싶다면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비용 지출 면에서 논의할 여지는 있겠지. 남편이 형제와 자주 연락하고 소식 전하고 싶다면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둘이 아주 친해져서 정말 재밌는 일들을 계획한다면 자연스럽게 나도 어울리겠지.




4. 부부는 한 팀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편 가르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고부갈등 상황에서는 시어머니가 적대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남편에게 어머니냐 와이프냐 택일하라는 것은 어려운 문제겠지.


여기서는 전제가 잘못되었다. 남편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 편을 택할지 선택권은 내가 갖는 것이다. 어머니 대 와이프가 아니다. 남편 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남편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고부갈등은 나와 어머니의 갈등이 아니다. 남편과 어머니의 갈등. 그리고 내가 남편의 편에 서서 남편을 위로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하신다면, 나는 그 반대를 보여줘야 한다. 무리한 요구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당신의 편이고, 나와 함께일 때 편안하고, 나의 곁에서 안전하고, 나와 함께 할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어머니가 하는 말을 반대로 하면 된다.


조종통제하려는 상대보다

수동공격적인 표현을 하는 상대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

포근한 위로 한마디

건네는 상대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니까.



          언어감지          ⇌          남편어     

━━━━━━━━━━━━━━━━━━━━

당신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이 하고 싶은 건 뭐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



그리고 어머니를 완전히 배제한 우리만의 관계에 대해 평소에도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할 것이다. 연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부부 중심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뜻. 우리 부부의 미래, 우리 부부의 꿈, 우리 부부가 원하는 생활, 우리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우리 부부의 취향, 우리 부부의 집, 우리 부부의 약속...


그렇게 부부사이를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람이 어머니일지라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언어감지          ⇌          남편어     

━━━━━━━━━━━━━━━━━━━━

나는 우리 사이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였으면 좋겠어.

━━━━━━━━━━━━━━━━━━━━







물론 나도 이성을 잃을 때도 있고

피해의식에 방어적으로 해석할 때도 있고

뻔히 보이는 화법이 싫어서 대놓고 지적할 때도 있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한 글 ^^; 앞으로 잘하자. 나나 잘하자.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414149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https://class101.net/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74436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