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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Apr 22. 2024

외국인 남편의 “mean”이라는 말

남편의 변한 모습일까, 원래 모습일까?


“She is so mean to him”


같이 영화를 보다가, 어느 한 장면에서 남편이 말했어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비슷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면서 크게 반응합니다. 부부나 연인, 직상 상사와 부하직원, 부모와 자식 등의 관계에서 두 인물이 싸우는 장면, 구체적으로는 한 인물이 상대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면 상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참고 있는 그런 장면이요.


차분하고 친절하게 말해줄 수도 있는데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게 듣기 싫대요. 그래서 제가 몇 번이나 착하게 말해줬는데 상대가 무시했지 않냐며, 저 사람이 먼저 잘못한 건 잊어버렸냐고, 참고 참고 백 번은 더 참다가 화내는 건 안 보이냐 물었어요. 오죽했으면 그랬겠냐고, 저 사람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냐고. 그래도 소리 지르는 건 무조건 나쁘대요. 


“mean” 이란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보다 화용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아요. “못됐다” 보다는 “못돼 처먹었다” 느낌. 표현 대상인 사람, 혹은 그의 행동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표현으로,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고 남 탓으로 돌리는 몰지각한 방어기제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 즉 상대가 불친절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배려심이 없다고 믿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니,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럴 수 있어?” 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전달하는 거죠.


다른 문화권에서는 관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여지는 행동들도, 어떤 관점에서는 당연할 수 있는 정의구현도 남편 입장에서는 다르게 해석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치관 차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현재의 남편은 한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한 분야에 화석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사회성도 떨어지는 것 같고 점점 현실 감각도 없어지고, 그래서 세상을 보는 시야도 굉장히 좁아지는 것 같아요. 알고리즘으로 추천받는 방송을 보면서 정치적인 견해도 예전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 예전에 제가 존경할 만하다고 느꼈던 남편의 장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실망스러운 것 같아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 발언을 하는 이 사람을 보면서 내가 함께 하기로 선택한 사람이 맞는지 멈칫할 때가 있어요.




저는 남편의 그 “She is so mean to him”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요. 아마 저희가 예전에 싸우던 양상과 오버랩되면서 각자의 트라우마가 건드려지기 때문이겠죠. 이 말 한마디로 대화의 중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의 잘못으로 몰고 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희석시켜 버린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대로 된 소통이나 공감은 불가능하고 의미 없는 고성만 오고 가는 거죠. 


차라리 그 “so mean” 하면서 남탓할 시간에, 쟤가 왜 저럴까 단 한 번이라도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안 하면서 상대가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표현하는 데, 그 말조차 듣지도 않고 “so mean” 이러고 묵살시켜 버리다니! 바꿔 말하면 저희 남편은 소리 지르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리고, 차분하게 하는 말만 들을 수 있다는 청력(?) 신체적 한계(?)가 있나 봐요.


물론 아주 우아하고 고상하게 대화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앞설 때도 있고, 공감이나 위로를 바랄 때도 있고,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지, 상대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읽고 있는데, 이걸 남편에게 공유하면 남편이 뭔가 깨달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왠지 헛된 기대일 것 같아 마음을 접기도 해요.  




어제 위 대화를 했을 당시에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했어요. 수많은 다툼 끝에 제가 발견한 남편의 대화 패턴은 자신의 말에 반박이 달리면, 굉장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의견을 절대 굽히지 않으려고 해요. 남편은 말로는 각자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처음에는 다른 의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요. 


여기서 제가 바라는 대화 방식으로 이끌어 가려면, 남편의 의견을 먼저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해요. 네 말도 맞아, 소리 지르기보다 차분하게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나의 의견도 맞아. 여자는 지금 자신의 오랜 불만을 표현하고 있고, 남자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개선된 부분이 하나도 없었잖아. 물론 더 차분하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저 사람이 느끼는 좌절감과 억울함도 분명 존재해. 그 감정 역시 타당하잖아. 남자가 조금이라도 개선의 노력을 보였으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어?


그런데 남편은 이 부분에서 만큼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건드려졌는지, 계속해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요. 남편의 말투가 점점 더 공격적이 어지고, 점점 우리 부부의 실제 상황과 동일시해 가며, 결국에는 남편 입에서 그럼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내가 무능력했다는 거야? 라는 말이 나오기 일보 직전.


여기서 내가 원하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 오해가 될 만한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아요. 네 맞아요. 그 장면은 무능력한 남편과 불행한 아내의 다툼이었거든요. 무직의 장기 전업 수험생인 남편과 외노자 외벌이 아내인 저희의 상황에 대입해서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끼기 쉬운 경우인 거죠. 네 그리고 저도 당연히 아내 입장에 감정 이입했어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는 거죠. 


남편이 물어요. 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너도 내 말이 맞다고 인정하지 않았냐고. 그럼 지금 대체 뭐가 문제냐고. 제가 대답해요. 나는 네 말을 끝까지 전부 듣고 너의 의견을 인정했지만, 너는 내 말을 다 듣지 않고 내 의견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대화와 소통은 양쪽의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니냐고. 결국 남편도 어쩔 수 없이 제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돼요. 


자 여기까지.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하고 대화가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주 교과서적인 부부 갈등 해결 대화법에 나올만한 전개였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저는 남편의 자기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 모습에 상당히 실망했고, 그게 표정으로 드러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어요. 자기가 뭘 하던, 제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래서 본인을 무능력하게 느끼게 만든) 제게 화가 난 남편은 마지막 공격을 던져요. 자기는 제가 바라던 대로 네 말을 인정해 줬으니 지금 네 감정은 네 책임이라고. 


저는 인스타에서 본 대로 지금 네가 한 발언은 우리 관계를 단절시키는 문장이라고, 네가 원하는 게 진심으로 그런 거냐고 물었어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부부 사이는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게 아니었냐고, 한쪽이 기뻐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고, 한쪽이 슬퍼할 때 위로해 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냐고요. 길거리에 모르는 사람이 울고 있어도 측은지심이 드는 게 인정 아니겠냐고, 그런데 내가 울고 있을 때 네가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면, 네가 울고 있을 때 내가 똑같이 하기를 바라는 거냐고. 배우자가 울고 있을 때에도 책임소재를 찾는 것이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우리 사이인지 대답해 보라고 했어요. 


남편은 울고 있는 저를 위로해 주면 제가 말한 대로 자기가 바뀌어야 할 까봐 거부감이 들었대요. 제가 남편 보고 어떻게 바꾸라고 명령한 게 있냐고, 나는 네 의견을 전부 경청하고 인정해주지 않았냐고 되물었어요. 그랬더니 납득이 되었는지 화해의 제스처를 건네긴 했어요. 개인주의 저희 남편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 본인에게 납득이 되면 즉각 시정한다는 거. 




네, 문제는 저예요. 제 마음이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닥 풀리지가 않았어요. 저는 세상을 사건을 사람을 넓게 길게 멀리 볼 줄 아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거든요. 유연한 사고와 확장된 시각을 가진 사람, 배울 점이 많고 존경할 만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논할 때에는 시대상이라는 걸 반영해야 하고,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라볼 때에도 관계성을 통해 받아들여야 하고, 

세상 모든 일들, 세상 어느 누구에게든, 양면이 있고 모순이 있는 법일 텐데.

단편적인 사건만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보다,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줄 아는 열려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말이에요.


개개인을 대할 때, 각자가 가진 과거의 경험, 이상적인 소망, 현실의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시야가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요. 


관계 내의 역학관계, 한 사건 속의 인과관계, 개개인의 기질에 따른 영향력을 받는 정도와 각자 역할과 행동과 그에 대한 책임까지도 볼 줄 아는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여행도 다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더 많은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싶어요. 

끊임없이 배우고 추구하는 사람들, 그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경험하고 싶어요.

그러다가 저와 잘 맞는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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