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째 주
벌써 한 주가 훌쩍 지나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다들 나에게 고생스러울 것이라며,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조금만 참고 버텨보라고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었는데. 무리에 무리를 해서 겨우겨우 뛰쳐나오니 그 말씀들이 새삼 사실이었다는 게 실감된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 사서 고생하는 거라는 걱정이 현실이 됐다. 사는 게 만만치 않다.
그래도 좋다. 새로운 곳에 와서 좋다. 변화가 생겨서 좋다. 우리 부부가 같이 고생해서 좋다. 완벽과는 거리가 먼, 불안정한 지금이, 우리의 선택이라서 좋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내가 바라던 결혼생활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먹구름 뒤의 희망이 한 줄기 빛으로 내리쬔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빛에 눈이 부시다.
일요일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불상사가 우리에게 기회가 되는 순간이 왔다. 진짜 인생은 타이밍인가. 지난 몇 년 간 바라던 일들이 허무하게나마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발버둥 치며 애썼던 게 무색하리만큼. 다 때가 있었던 것일까.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고, 안 될 일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까. 흘러가는 데로 그렇게 사는 게 정답인가?
월요일
여유롭고 여유로웠던 시골 생활, 그래서 시간도 느리게 흘렀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으로 우리의 일상이 급속도로 진전됐다. 커피 한 잔도 다 못 마시고 식어가던 그 몇 시간, 우리는 확답을 기다리고 대청소를 하고 짐을 싸고, 숙소를 예약하고 차에 올라 출~발~! 하게 된다. 술이 식기 전에 적을 베고 돌아오는 관우 급으로 빨랐다.
우리에게 온 기회를 감사히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이리저리 알아보고 문의하고 준비해 온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그 시간 자체는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그렇... 겠지? ㅠㅠ
화요일
남편의 첫 출근 날! 드디어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게 됐어요!!! 파트타임이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수 있는 게 어디예요 >_< 수험기간이 길었으니 올해 여름에는 쉬고 싶었다는, 말도 못 하게 이기적이었던 남편이...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습니다! 장족의 발전!!! 가문의 영광??? 아이고 장하다 장해 ㅠㅠ 거의 마흔이 다 돼가는 남편의 새로운 시작을 살아생전(?)에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ㅜㅜ 한 번만 더 미뤘다면 제가 제 명에 못살았을 거예요.
하와이에서 외벌이로 살 때는 그 시간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진짜 아침에 혼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자고 있는 남편이 어찌나 얄미웠던지 몰라요. 아주 가끔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면 자거나 쉬고 있는 남편을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숨이 턱 막혔었거든요. 밤낮이 바뀐 남편은 밤새 공부했다고는 합니다만,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도 마음이 안 좋았을 거예요. 그리고 또 어김없이 다음 날이 오고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출근하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게 나를 짓눌렀는지.
만약 제가 퇴사를 지르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이 기회를 잡았었을까요? 잡을 수 있었을까요? 시댁에서 4시간 거리였기에 면접도 볼 수 있었고, 공석이 생겼을 때 바로 출근할 수 있었으니, 무리해서라도 이사를 감행했던 지난날의 결정이 다행이라 여겨져요. 하와이에서 당장 내일 와달라는 오퍼를 받았더라면 제 직장문제, 월셋집 퇴실 문제, 비행기 표, 그리고 숙소까지 아마 더 쉽게 포기할 상황이었을 것 같아 분명 또 후회했을 거예요.
수요일
일하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 짠해요 짠해 ㅜㅜ 연애 시절, 벌써 7년 전, 제가 한국에서 일했을 때 남편이 한국에 두 달 정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저는 출근하고 남편은 사무실 근처 도서관이나 라운지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서 남편이 출근하러 가면 저도 커뮤니티센터나 도서관 가서 시간 보내다가 퇴근하면 같이 집에 갑니다. 와 이런 날이 오다니... 꿈만 같아요 >_<
8시 반,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나와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세상 어디든 이렇게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골에서 2주 동안 게을러져 버린 저의 생활습관을 다시 점검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마음 먹었어요 ㅜㅜ 남편의 직장이 확정만 된다면 저도 재취업에 도전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둘 다 9 to 5로 회사 다니고, 저녁에는 같이 밥 먹고, 주말에는 장보고 놀러 다니고 하는 그런 평범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싶어요.
목요일
집 보러 갔다 온 날. 아휴 힘들다 힘들어. 어딜 가든 집이 제일 문제다 문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할 최소한의 공간. 아무리 미니멀하게 살아도 사적일 수밖에 없을 개인 공간. 그 기준은 어느 정도까지 일까ㅠㅠ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6년을 살았으니 작은 공간도 충분하다 여겼는데, 큰 집을 보면 큰 집에 가고 싶고,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다.
하와이에서 본토로 이사 간다고 했을 때에는 다들 본토가 싸니까 더 나을 거라고 했는데. 왠지 나가는 돈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그럼 뭐가 싸다는 거냐면
1. 하와이 집은 비싼데 엄청 낡았고 꼬질꼬질하고, 여기는 비싼 만큼 값을 하는 듯
2. 하와이는 가격은 높은데 세일즈 텍스가 4.712%, 여기는 가격이 비슷한데 텍스가 10.3%
결국 다 돈인 건가! ㅠㅠ 맞벌이를 안 하면 살 수가 없다 ㅠㅠ
여담으로, 옛날에 LA 사는 동생이랑 밥을 먹고 계산할 때 있었던 일. 팁을 얼마 내야 하나 핸드폰 계산기를 꺼냈더니, 여동생이랑 제부가 하는 말. “저스트 더블 더 텍스~” 곱셈을... 하라굽쇼??? 동공 지진 ㅋㅋㅋㅋㅋ 저는 두 자릿수 넘어가면 덧셈도 암산이 안 되는데요 ㅠㅠ
LA도 그렇고 시애틀도 그렇고 텍스가 10%이 넘어가니 팁 20% 낼 때는 텍스 두 배 하면 되는구나 후덜덜. 그럼 메뉴에 쓰여있는 가격에 1.3배란 얘기 ㅠㅠ 언제나 발려지는 건 나야 나.
금요일
이곳은 올 젠더 화장실 All Gender Restroom 이 곳곳에 있다. 역시 블루 스테이트 (민주 성향).
토요일
며칠 전부터 문득 에어비앤비 예약 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다른 숙소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다시 마음을 바꾸기가 어렵다 ㅠㅠ 만약 예약 변경 취소 수수료나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그 비용을 감수하고 싶을 만큼 마음이 요동쳤다.
물론 이 숙소 역시 나쁘지는 않다. 호스트 분께서 잘 관리해 주시고 충분히 편하게 지내고 싶으면 지낼 수 있는데, 이제 내 마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ㅜㅜ 그래서 다시 에어비앤비 웹사이트를 들락날락, 원래 가고 싶었던 숙소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온라인으로 모든 예약을 처리하는 덕분에 확정 전 발생 예상 비용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이 숙소는 24시간 이전 예약 취소가 가능했다! 내일까지로 예약을 변경하고 남은 기간은 환불받고, 새로운 숙소로 이동한다. 덕분에 비용 지출에 민감한 남편에게도 당당하게 이사 가자고!! 호스트분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래 당일 예약이 가능했던 이 숙소 덕분에 우리가 바로 이사 나올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호텔이나 더 불편하고도 더 비싸기만 한 상황이었겠지. 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마음을 예쁘게 먹자.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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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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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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