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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n 17. 2024

스토킹 당하는 꿈을 꾸다

6월 둘째 주

이번 주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주 섬뜩하고도 무서운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리... 리...


낮은 굵은 그 목소리,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목소리처럼 메아리치듯 귀에 꽂힌다. 음습한 기운이 차오르다 못해 넘실댄다. 팔에 소름이 쫙 돋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뇌가 마비되는 것 같다.


리... 리...


이제까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나를 애칭으로 이름 마지막 자로 불렀던 사람도, 어디서 만났는지 모르지만 얼굴은 기억나는 사람들도, 나를 싫어하기도 좋아하기도 했던 사람들도. 그 모든 사람들을 피해 도망간다.


리... 리...


낯익은 서울 집부터 어렸을 때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네까지. 나는 두 다리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도망간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다리가 계속 움직이고 등 떠밀리듯 어딘가로 달린다. 마치 누가 나를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리... 리...


이 날 밤 꿈에서는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노이즈 캔슬링 에어팟으로. 귀가 아플 정도로 목소리가 반복된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망할 아이폰! 통화녹음이 안 된다. 그 통화 중인 핸드폰을 들고 경찰서에 가려고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 절명의 순간!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우리 숙소다. 벌써 해가 뜨려고 하는지 파란 새벽빛이 들어온다.


그런데 그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다시 들려온다.


리... 리...


남편이었다. 남편이... 코 고는 소리였다.




와... 일주일 내내 수면 부족에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하루종일 골골거렸는데. 범인은 남편이었다니! 남편도 힘들긴 힘든가 보다. 코를 이렇게 골다니 ㅠㅠ


그랬구나. 무서운 꿈을 꾸었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인 걸 알게 되니 다시 잠이 들었다. 피곤했는지 이 날 늦잠을 잤다.





#0609 #일요일


새로운 에어비앤비로 이사를 했다. 이전 숙소보다 방은 좁지만, 호스트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집이라 훨씬 더 관리가 잘 되어있는 느낌이다.


이전 숙소는 반지하와 1층은 에어비앤비 2층은 주인집으로 나뉘어 있어서, 부엌과 화장실 모두 게스트만 사용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식기나 조리도구가 다 낡고 더러웠었다 ㅠㅠ 뭐 해먹을 마음이 안 생김. 공간도 원래 방이 아니라 임시로 나눠둔 것 같은 느낌. 못 지낼 곳은 아니었지만 멀기도 해서 일주일 만에 옮겼다.


새로운 숙소는 부엌과 다이닝 룸, 리빙 룸 공간이 1층에 있어서 모두 공용으로 사용하고, 2층에는 호스트 부부가 사용하는 마스터 베드룸에 에어비앤비 게스트가 사용하는 작은 방 3개가 위치해 있다. 각 방 안에는 소형 냉장고가 있어서 훨씬 개인적이고 편하다. ㅎㅎ


이곳은 4주 예약하면 7% 할인 ㅋㅋㅋ 환불도 안 돼서 앞으로 4주는 꼼짝없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 그 한 달 동안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생길까?!





#0610 #월요일


나는 공간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공간에 따라 마음이 요동치기도 편안해지기도 한다. 기준은 없고 그냥 내 맴이다. ㅠ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내가 하는 일

- 한국 라디오를 듣고 옛날 웹툰을 본다.

외식하거나 아주 최소한으로 먹는다.

- 물건을 사들인다.

- 화장실을 안/못 간다.

- 아무것도 안 하고 잔다.


불안해지면 내가 익숙했던 행동들로 움츠러들게 되는 것 같다. 옛날에 행복했던 기억들로 되돌아가 그 행동을 반복한다. 약간은 스스로를 방치하게 된다.


공간이 조금이라도 안정되면 내가 하는 일

- 화장품 도구와 통들을 깨끗이 씻는다.

- 손발톱과 눈썹을 정리한다.

- 도시락과 물병을 깨끗이 세척한다.

- 김치와 한식재료를 사들인다.

- 물건을 비운다.


안정된 상태에서는 그나마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을 만한 여유를 되찾는 것 같다.





#0611 #화요일


남편은 다르다. 자신의 페이스에 공간을 맞춘다. 내가 보고 배워야 할 또 하나의 모습.


요리를 해야 한다면 요리할 공간을 만들고, 필요한 도구들을 찾아내 뚝딱뚝딱 해 낸다.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환경에 의해 자신을 위축시키지는 않는다.


요리와 설거지를 귀찮아하지 않는 남편. 볼 때마다 대단하다. 좋은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최고로 대우해 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남편. 피곤하고 시간 없으면 대충 사 먹거나 끼니만 때우고 넘어갈 법도 한데.


나도 양심상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요리하면서 이 집에 있는 온갖 냄비며 프라이팬 다 꺼내 썼는지 ㅠㅠ 설거지 하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맛있게 먹은 저녁 다 소화되고 다시 배고파지는 것 같다. 진짜 체력이 부족하다. 밥도 못 해 먹겠다. ㅠㅠ





#0612 #수요일


아구 튜워라... 손발이 차다. 며칠째 춥다 ㅜ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0613 #목요일


어제 남편이 회사에서 보내준 사슴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 유유히 걸어가는 엄마 사슴 아기 사슴이 너무 귀엽다. 세상에나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있다니. 여기는 진짜 사슴이 나오는구나!


남편의 알바 마지막 날! 벌써 끝났어? 앞으로 2주 간 방학이다 ㅋㅋㅋㅋㅋ 기념으로 치킨을 사 와 브리저튼 시즌 3 보면서 먹었다. 





#0615 #금요일


스토커 때문에 잠을 설치던 날들이여 안녕... 이 날은 거의 10시까지 늦잠 자고 하루종일 낮에도 잠들었었다. 이제 마음 편히 잘 수 있어! 





#0616 #토요일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했다. 벌써 이 숙소로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4주 예약했으니 이제 3주 남았다. 그 안에 나는 재취업을, 우리는 월셋집을 찾을 수 있을까? ㅠㅠ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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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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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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