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해 Apr 20. 2024

프롤로그

    이어지는 이야기는 고모와 두 조카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나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고모는 대만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겨울방학을 지내러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대구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돌아가지 못하고 휴학을 한다. 

    고모는 중국어 공부를 한답시고 중국어 신문을 통해 중국 상황을 너무 실감 나게 느껴버린 것이 문제였다. 대구도 중국 우한처럼 병원이 미어터지면서 사람들이 병원 밖에서 줄줄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밤에 이탈리아가 도시 봉쇄를 했다는 뉴스를 중국어로 들으면서 휴학을 결심한다. 가족 중 누가 죽기라도 하면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은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일단 대만으로 돌아갔다 하면 돌아오는 게 맘처럼 쉽지 않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느니, 반학기를 털어 가족과 함께 이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것이 반 학기 일찍 졸업하는 것보다 의미로운 일이라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대만으로 돌아가지 않은 무위의 고모가 맞벌이하는 막내 동생네의 두 아이를 돌보게 된다. 고모는 대구에서 31번 환자가 발생했던 2월 18일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딱 그날로부터 학교도 학원도 쉬자 팔자에 없는 아이 돌보기를 한다. 팔자에 없다고 하는 것은 죽도로 게을러서 밥 하는 것도 싫고, 애 돌보는 것도 싫어서 아예 시집을 안 갔기 때문이다. 고모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면서 무상의 노동이 주는 고통을 체험한다. 


    대구에 하루 천명이상의 확진자가 나오던 위기의 순간은 지나간다. 도시 봉쇄도 일어나지 않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지도 않았다. 고모가 걱정했던 나이 든 엄마의 방비능력은 고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아서 고모의 휴학 결정은 혼자만의 기우에 따른 오판으로 판명 나고 만다. 

    고모는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가난한 학생이었고, 휴학으로 한 학기 장학금을 날려먹어 외국인 학생에게 책정된 대만 학생의 2배에 해당하는 학비를 자기 돈으로 내야 했을 때, 속이 쓰려 죽을 뻔한다. 


    고모는 두 조카와 보낸 코로나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할까?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wrtn.ai로 그렸다.


참고: 이 글에 등장하는 인칭대명사는 경도의 입장에서 봤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