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지 May 12. 2023

지는 게임을 시작하다

물 만난 물고기 되기 프로젝트3

 나는 보통 내가 이기는 게임만 하는 편이다.

 내가 뭘 잘하고 재능이 있는지 알고 있는 편이기도 하고, 내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한 일종의 자기 방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볍게 시간 죽이기용으로 할 모바일 게임을 선택할 때에도 당연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되도록 내가 잘하는 일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수영은 정말 내가 못하는 일이다.


 내가 못하는 일을 이토록 본격적으로 제대로 시작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수영을 정말 못한다.




 첫 수업 이후로 두 번의 수업을 들었다.

 두 번째 수업까지를 듣고도 수영의 알고리즘이 잘 파악이 안돼서, 일단 수영에 필요한 근육이라도 만들어 놓자는 생각으로 집에서 열심히 홈트를 하면서 근육을 키웠다.

 하지만 세 번째 수업을 들으면서 확신했다.

 수영은 무조건 수영을 하면서 스스로 익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운동이라는 사실을.


 발차기가 잘 안 되길래, 힙브릿지를 하고 런지를 하고

 몸이 자꾸 좌우로 휘길래 코어가 부족한가 싶어, 상복부 하복부 운동을 하고

 어깨 쪽이 긴장해서 자꾸 솟아오르길래, 스트레칭을 자주 해줬는데...

 하등 쓸모없는 일이었다.


 멀게 보면 필요할지 몰라도, 음파음파를 하는 수영 왕초보에게 홈트로 세부근육을 기르는 일은 참 꼴값 떠는 일이었다.


 발차기는 결국 물속에서 많이 차 봐야 수영에 필요한 발차기가 습득돼서 앞으로 나가고,

 호흡법도 지상에서 연습해 봤자 절실하지가 않아서 도움이 안 되니 물에서 연습해야만 늘었다.

 호흡이 트인다는 말이 지금 나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언젠가 호흡이 트인다는 말을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두 번째 수업에서 강사님이 자꾸 고개를 더 깊게 숙여야 된다고 해서 너무 무서웠는데,

 세 번째 수업 마지막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서 자명하게 이해가 됐다.

 뻗은 팔 사이에 정확히 머리가 들어가야 물을 더 경제적으로 가로지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역시 나는 머리로 이해가 돼야 진도가 잘 나가는 사람이다.

 기왕 얼굴을 물에 박을 거 확실하게 팔 사이에 넣어야 물을 잘 가로지를 수 있다!



 그 사실을 수업이 끝날 때 들어서 그런지, 그게 정말 사실인지 몸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바로 샤워장에 가봤자 모두가 샤워를 해서 비좁은 틈에서 샤워를 해야 할 텐데, 그 시간에 방금 배운 걸 몸소 습득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린이 풀장에서 연습을 더 했다.

 수업이 막 끝나서 그런지 호흡이 가쁜 상태에서 계속 음파음파를 하며 발차기를 하려니까 어쩐지 벅차올랐다.

 그 벅차오름이 이상하게 울컥함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왠지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엥? 수영을 하다가 갑자기 운다고?

 사실 수업을 받는 내내,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고 호흡도 너무 짧고 물도 무서워서 짜증과 답답함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근데 머리를 팔 사이로 넣어보니까 진짜 잘 나가는 느낌이고, 이제 호흡이랑 발차기만 감을 잡으면 더 잘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도 해도 모르겠다. 특히 발차기!

 호흡이야 폐활량 문제인 것 같으니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눈감을 수 있는데,

 발차기는.. 발차기는! 하면 될 것 같은데 안되니까 너무 답답하다!!!


 맨날 내가 잘하는 것만 골라서 하다가, 진짜로 내가 못하는 걸 걸음마부터 시작하려니까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마음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너무 까마득해서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잘하고 싶다. 진짜 잘하고 싶다. 정말 잘하고 싶다 수영!



 하... 자유수영을 자주 나오고 싶은데, 자꾸 약속이 생기고 일정이 생기고 그래서 자유수영은 한 번도 못 나왔다.

 병원 안에 있는 센터라서 주말 공휴일은 휴일이고, 화목에 자유수영을 나가야 되는데..

 왜.. 왜.. 못 나가지 나?


 일단 오늘 수업이 있느니.. 오늘 수업에서 상태의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폐활량은 어떻게 늘려요?

 코로나 3년 동안 쓴 마스크로 폐활량이 준 것 같아요..ㅠ

이전 02화 수영이 이렇게 빡센 운동이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