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가 되는 길

어떤 다림질...

by 나꿈



언제부턴지 다림질을 한다. 처음엔 서툴러 셔츠 하나를 다리는데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리고 땀도 났다. 또, 열심히 다렸는데도 주름이 잘 잡히지 않으면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두 개, 세 개를 가뿐하게 처리한다. 하다 보니 다림질의 어떤 노하우가 생겨 선수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 꾀가 생겨 집에서 다림질을 부탁하면 어려운 척, 힘든 척하며 마지못해 다리는 척하기도 한다. 그러면 맘 속으로 고소한 웃음이 나온다.


우리 집에는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다. 그 아이가 초등시절엔 주말이면 영화관이나 야외활동, 박람회 등에 늘 같이 다녔다. 아이와 잘 어울리는 아빠가 좋은 아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기 기분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아빠, 영화 보러 가요."라고 하면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따라 나서, 영화도 보고 팝콘도 같이 먹곤 했다. 그래서 영화를 꽤 많이 보는 편이 되고, 덕분에 문화생활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지내기도 했다. 아이와 말이 잘 통해서 딸의 기분이 안 좋은 날은 기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웃도어 활동을 나서면 곧장 따라 나서, 가족들이 함께 캠핑도 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이렇게 말했다.
"아빠, 우리 제주도 갑시다."
"둘이서?"
"네, 둘이서 가요. 뭐 어떼요. 다들 바쁜 것 같은데."
이런 말이 오고 가다 결국 둘이서 제주도 통나무집에서 며칠 지내다가 왔다. 숙박지가 아는 사람과 친한 집이라 귤밭에서 밤새 맘껏 귤을 따 먹기도 하고, 울타리 안에 키우는 말도 관리하며 편하게 지내다 왔다. 그때 말들은 귤도 잘 먹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 저래 어울리다 보니 좀 친해져서 말이 잘 통할 거라 생각했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언제 봤냐는 듯 모른 척을 밥 먹듯 했다. 영화 보러는 친구들끼리 다니고, 아웃도어 활동이나 체험 같은 것은 피곤해서 못한다고 들은 척도 안 하기도 했다.


요새는 공부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로 섭섭함이 있지만 가끔은 나와 친한 척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학교 일이나 친구 일로 그 애가 힘들 때, 고민할 때, 서로의 말을 진지하게 주고받는 모습이 그렇다. 아마도 어릴 때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 속의 기억이 다 없어진 건 아니고, 그래도 아이 맘 속에 잔잔하게 남아 흐르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일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 번은 아주 어렵게 집에서 부탁을 했다.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시간 좀 내어 아이 셔츠 하나만 다려 줄 수 있겠어요?"라고 한다.
"다리다가 망칠까 겁나서 못하겠는데..."라고 했더니 두 말도 않고
"알았어요. 그러면 나중에 내가 다리지 뭐..."라고 하던 집사람이 요즘 많이 변했다. 나를 다림질 전문가로 여기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빨래가 되어 말려진 아이 셔츠 세 개가 걸려 있었다.
"이거 다려 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옷도 보여서
"이 바지는 뭐요?"라고 하니
"그 바지는 내건데 그것도 같이 좀 다려주세요."라고 하며 아무 일도 아닌 듯 내뱉는다. 예전엔 셔츠 하나 다리는 것도 어렵게 부탁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역전이 되어 이것저것 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림질을 하면서 맘을 바꾸기로 했다. 교복 셔츠 다림질을 딸아이와의 새로운 기억을 써 내려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오히려 편해졌다. 이 다림질 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돋보이게 지내면 얼마나 좋은가. 나만의 합리화인지도 모르지만 왠지 괜찮은 설정인 것 같기도 해서 열심히 다린다.
아이가 없는 시간에 주로 다림질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기 교복 셔츠는 아빠가 주로 다려서 편하게 입고 다녔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오길 내심 바란다. 소박한 기대이지만 그런 마음이 서로에게 또 다른 좋은 기억이 되면 좋겠다. 세상을 살아가다가 힘든 일이 생길 때, 아빠에게 쉽게 도움을 청하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




꿈을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따끔한 훈계도 아닌, 너무나 하찮고 소소한 일인 다림질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왜일까. 세상은 화려하고 두드러지는 일에 주목하기 쉽지만, 나는 사소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경험에서 더 큰 지혜와 힘을 느낀다. 우리 딸이 커가면서 어떤 고민이나 얽힌 매듭으로 힘들어할 때, 그런 상황을 쉽게 푸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다림질을 한다. 이른 아침 식사 전에 다리기도 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빈 시간에 다림질을 하기도 한다. 새벽까지 공부하다 자는 아이에게 더 공부하란 말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냥 묵묵히 다림질을 하며 눈치만 살핀다. 일주일에 셔츠 다섯 장은 다려야 한 주가 끝이 난다. 셔츠 한 장이 다려져 옷걸이에 걸릴 때 정말 신이 난다. 거짓말이 아니다. 하하하.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허허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재밌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렵고 고민되는 일이 많다. 좋은 아이가 좋은 아빠를 만드는 걸까, 아니면 좋은 아빠가 좋은 아이를 만드는 걸까. 좋은 아이가 좋은 아빠가 되기 쉽도록 돕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아빠가 되면 좋은 아이가 되는 건 더 맞는 말이다. 뭐든지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좋은 아이를 원한다면 오늘 바로 집안의 작은 일부터 하나씩 미션을 정해 실천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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