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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코 Dec 10. 2023

노동조합의 크리스마스 선물

잘 먹겠습니다


작년엔 블루투스 이어폰을 받았다. 직원들이 선 없는 헤드셋 좀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던 모양인데 난 귓구멍이 작아서 인이어(커널형) 타입은 쓰지 못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올해는 먹는 것! 완전 알코올/반만 알코올/무알콜 세트 중에서 선택하라기에 무알콜을 선택했다. 어째서인지 동료들이 하나같이 놀랐다.


"무알콜을 선택했다고? 왜?"

"Impressive"


분명 와인이나 맥주가 들어있을 텐데 남편이 술을 잘 안 마시니 나 혼자 자작할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병 오픈해 봐 한번에 다 마시지도 못해서 차라리 주스가 낫겠다 싶었다.



남편이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땐 매년 스팸이며 참치캔 세트를 받아와서 찬장에 차곡차곡 모아놓곤 했다. 이게 뭐냐고 투덜거리는 나한테 유통기한도 길고 집에 두면 언젠가는 다 먹을 수 있는 거라며 자긴 좋다고 했다.


나도 회사에서 명절이 되면 종종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걸 받았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선물 세트를 받을 때마다 '아휴 차라리 돈으로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내 돈 주고 살만 한 것들은 아니었으니 대부분의 동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손에 쥐는 것 없이 계좌이체로 돈만 받은 해에는 만 원짜리 과자 상자라도 받는 게 낫다 싶었다.


주면 준다고, 안 주면 안 준다고 투덜거렸는데, 기왕 준다면 역시 먹는 게 낫다. 올해 노동조합에서 나눠준 선물은 호불호가 별로 없는 거라 그런지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들고 갔다.


집에 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잼, 버터 캐러멜, 파테, 주스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남편이 상자를 훑어보더니 나쁘지 않다고 했다.


고양이들은 상자와 지푸라기 냄새가 좋은 듯 빈 상자에 드러누워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상자 퀄리티가 제법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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