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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8. 세월은 흐르고, 원망은 그대로, 연민은 더해져

by 김카잇

우리 아빠의 나이는 어느새 일흔을 앞두고 있고, 나는 삼십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과거 자신이 자식들에게 했던 만행에 대한 기억은 뭉개버리고, 자식 셋을 혼자서 키워냈는데 자식들이 아버지 대우를 안 해준다며 늘 화가 가득한 아빠. 과거가 어떻든 지난 일이고, 늙고 힘없는 아버지를 보살피는 건 당연한 자식의 도리일 텐데 아빠에게 받은 건 아무것도 없다며 불효가 일상, 효도는 아주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나. 우리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세월이 흘러도 서로의 입장을 모른다. 아빠는 삼십 중반이면 돈 모아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살 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빠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버지는커녕 남편도 되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아빠 마음을 좀 알까 싶지만 결혼, 출산 같은 단어만 생각해도 막막하다. 처음에는 시대가 변했고, 요즘은 다들 결혼을 늦게 한다는 말로 아빠를 설득했지만, 몇 년째 이어지는 잔소리에 내 생각도, 말도 날카로워졌다. “아빠가 있는데 언제 돈 모으고, 언제 결혼을 하냐고!” 아빠가 우리한테 숨겨왔던 100만 원가량의 빚을 갚아준 뒤였다. 이제 학자금 대출을 갚고 돈을 좀 모아볼까 하는데 아빠의 과거를 수습하기 위해 또 돈을 써야 했다.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아빠와의 인연을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을 덜 하는 건 원망하는 마음이 줄었기 때문은 아니다. 내 생각에는 연민의 마음이 더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날 우러러봤던 키도 크고 건장한 아버지의 뒷모습은 이제 없고, 거북목, 굽어가는 허리, 삐쩍 마른 몸, 손에 들린 지팡이, 아프다는 푸념. 그런 것들만 남아있다.


할머니가 약에 너무 의존한다고 약을 못 먹게 막던 아빠는 지금 하루에 약을 열몇 알씩 먹으며 산다.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며 특별히 아픈 게 아니니 병원에는 안 가도 된다고 하던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병원비를 좀 보내 달라 한다. 아빠가 원망스럽기는 해도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기에 시간을 내서 병원도 모시고 가고 병원비를 보내드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처음 병원에 모시고 간 날,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던 그때의 분노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처럼 아빠를 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형은 아빠가 오래 살 것 같다며 무섭다 한다. 아빠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아빠가 하루하루 더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아빠의 영정사진 앞에서, 염을 하고 누워있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면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이 좀 정리될 줄 알았는데, 아빠의 시간이 멈추고, 내 시간이 멈추는 날이 와도 어쩌면 완벽히 정리할 수 없는 마음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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