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두글로 제 직장생활을 조금 오픈 드릴게요. 실은 좀 겸연쩍기도 하고 조금은 보안적 존재라 조심하는 면도 있는데요. 오픈 가능한 수위에서 나눠 봅니다. 그간 제 일에 대해서 궁금하셨던 독자분들이 해갈하는 시간 되시길 바래요. (직장얘기는 좀 쑥스러워댓글창을 살포시 닫아요 ^^)
보석 같은 작가님들을 소개합니다 매거진의 12회는 <정호승 시인>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독자님들을 위해 짝꿍 얘기 풀어 보겠습니다. 요즘도 아주 재밌는 일들이 많습니다 :)
주말에 나태주 시인과 따님 나민애 교수의 공저 <나만 아는 풀꽃 향기>를 읽었다. 나태주 시인의 미소는인생을 관조하는 삶의 집약된 표현이며, 평범한 감사와 긍정, 여유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미소였다. 그런 여유는 미소를 피워 아이의 미소를 얻내고야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 찰나의 순간을 시로 쓸 마음의 품이 넉넉한 시인이었다.
나태주 시인이 모 인터뷰 영상에서 말한 어느날의에피소드도 그런 여러 일상중 하나였다. 한 번은 길 가다가 한 아이의 미소를 보고 즉흥적으로 시를 썼고 모 공모에 시를 제출했다 한다. 그 즉흥적인 시가 덜컥 공모에 당첨돼 2000만원의 상금을 타기도 했다 한다. 나태주 시인은 그 대목에 대해서, 돌이켜 보건대 실은 내가 먼저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그 아이의 미소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내 직업은 헤드헌터다. 재작년엔가 직장 동료가 우울증이 있어 정신과를 다니고 있었다. 그 여자 동료 말에 의하면, 담당 정신과 의사왈 헤드헌터는 정신과에서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 Top 5로 꼽는다 했다. 그래서일까, 헤드헌터 신입시절부터 점심식사, 저녁식사 때면 인재들에 대한 고충, 고객사에 대한 불만 심지어 우리 회사에 대한 애로사항까지 어두운 언어를 주로 구사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지난하게 반복적인 모습에, 어느 순간부터는 어두운 주제, 엄밀히는 부정적이고도 타인 비난적인 말을 하는 분들을 피해 다녔다. 어느 조직이나 아니 어쩜 직장인들 태반이 익숙한 조직 분위기이긴 하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얘기를 과도하게 발포하는 분들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개인 성과에도 어려움을 겪을뿐 아니라 조직문화에도 해를 끼치는 경우가 꽤 있다.
자타 공인 힘든 업종에 들어와 일하면서도, 내가 스트레스를 거이 안 받고 나름 좋은 성과를 내며 롱런할 수 있었다면, 그건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난암기력이 너무 안 좋아 대학땐 암기법과 마인드맵을 공부하면서 학과공부를 감당했다. 그보단 어머니에게서 배운, 고난 속에서도 밝고 건강한 삶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능력에 비해 성과가 좋다 느껴지는 대목을 돌이켜 보면,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준 동료나 키맨 같은 인재들, 임원, 교수 등 자문단 분들의 결정적인 기여가 있었다. 오히려 이 업종에 들어와서, 인복 곧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축복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특히 여자 임원분들이 나를 자기 가족처럼 챙겨 주시기도 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으로 만났음에도, 그분들은 마치 다양한 과목의 스승님 같았고 때론 정보 요원처럼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도와주었다.
브런치에 와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나의 댓글 소통에 놀랍다는 반응이 그것이다. 사실 댓글 소통의 모습은 나의 오프라인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좀 친절한 사람이긴 하다. 직장에서는 청소하는 어르신께도 종종 선물도 드리고, 내성적인 살림꾼 경영지원 대리님도 기념일 때면 가끔 개인적으로 선물을 챙겨 준다. 새로 오는 신입 헤드헌터분들이 식사할 사람을 못 찾아 쭈뼛하면 함께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내 방 위치는 우리 대표님 바로 대각선이다. 혹자는 요직 같은 위치에 내 방이 있어 물어 보곤 한다. 그때마다 자칭 경영지원실장(실제 직무는 전혀 아니고)이라며 문의사항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라며 너스레를 떤다.
우리 써치펌(헤드헌터 기업을 일컫는 용어)은 삼성, SK, LG 같은 대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 맥킨지 컨설팅 같은 글로벌 컨설팅펌, 칼라일이나 KKR 같은 글로벌/국내 사모펀드, 탑티어 투자증권, 자산운용사 및주요 금융기관 등 쟁쟁한 기업들이 고객사들이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일반 직원뿐 아니라 고위직 임원, 사장을 포함한 C-Level 등도 많이 다룬다. 나도 주력이 팀장과 임원급이다. 이때 상위 임원 영입건을 많이 다루는 헤드헌터는 때로 그 개인이 보안적인 존재일 때도 있다.
동료 중에는 한 달에만 최대 20명 넘게도 입사시킨 고성과 에이스 헤드헌터도 있다. 금융권 담당인데 해당 업종은 때론 팀 전체가 함께 옮기는 형국이 가능하기에 나온 퍼포먼스다. 한 달에 20명 입사시킨 동료 상무님은 나와 대각선 곧 대표님 옆에 그의 집무실이 있다. 고성과자이지만 사람 좋으시고 소탈하셔서 나도 밥도 먹고 도와드린 적이 있다.
반면 상위 써치펌들엔 능력 많은 헤드헌터들이 들고 나곤 하는데, 때론 그 커리어의 정점에서 나쁜 평판으로 업계에서 입지가 좁아지거나 점점 퇴보하는 경우도 가끔 본다. 과업 중심으로 일하며, 이익 앞에서 써치펌 동료나 인재들에게 불친절하고, 상처 주거나 불이익을 끼치거나 심지어 트릭을 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들의 커리어는 잠깐 반짝할 수는 있지만 롱런하기는 어렵다.
내가 먼저 미소 짓고, 내가 먼저 친절하며, 조금은 손해 보고 양보하는 사람이 느리더라도 멀리 또 오래간다 믿는다. 요즘 같이 바쁘고 이해타산적인 각박한 시대엔 좀 뒤쳐지는 가치 같다. 허나, 시대 트렌드는 늘 바뀌지만 세상 사는 인생의 순리는 변함없고 영구적인 법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 소중한 가치들을 영롱하게 바라보며 매일의 미소를 하늘에 띄워 올려 본다.
참고로 전에 브런치에 썼던 데일 카네기 < 인간관계론 > 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속앓이가 심했던 사람으로서 지금과 같은 성격으로 변모한 내용이다.
헤드헌터가 권하는 좋은 리더가 되는 길
사람을 아끼고 키우는 리더가 탁월한 인재를 얻는다
ㅡ 전략 ㅡ
오늘 말하고 싶은 분이 바로 이현명(가명)대표다. 이현명 대표는 내가 본 리더 중 단연 손에 꼽히는 탁월하고 훌륭한 분이다. 미국 유명한 H의대 정교수였고 지금도 미국 K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미국 현지에 벤처를 2번이나 설립해서, 2개 벤처 모두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시킨 분이다. 요즘 한국에서 벤처들이 투자유치의 어려움으로 벼랑 끝에 몰리고 코스닥 상장을 한 번에 못해 재수, 삼수를 하는 일들을 보건대, 그보다 관문이 더 어려운 미국의 나스닥 상장 관문을 2번이나 넘었다는 것. 이것은 아주 탁월한 퍼포먼스다. 한국에 있는 인재들에게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고스펙의 능력이 출중한 인재들이 회사 설명을 좀더 안 들어도 이력서를 낼 기세이곤 하다.
이현명 대표는 그저 두뇌가 명석하고 사업적 수완이 남다른 분에 그치지 않다. 인간미가 넘치는 따뜻함과 젊은이들이 환호할 만한 위트와 스피드, 친화력이 출중하다. 무엇보다 인재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르다. 인재를 써먹기 위한 소모품, 심지어 나의 업적을 빛나게 해 줄 들러리로 생각하기보다그 인재들의 현재와 장래의 진로를 진정성 있게 고민하고 본인의 시간과 돈을 내어 실제적으로 도와준다. 일례로 10년 전엔가 이현명 대표가 H의대 정교수로 재직할 때, 한국에서 학생이 미국으로 박사학위차 유학을 왔다고 한다. 어디 한 군데 의지할 데가 없었는데, 누군가로부터 소개받아 이현명 대표이자 교수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그는 몹시 바쁜 교수생활 중에도 그 학생을 만나 사비로 밥까지 사주며 진로 상담을 끈끈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한번은 한국에서 K대 나온 전략분야의 인재와 면접할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대표님이 나도 함께 배석해 달라 해서 식사형식으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대표님은 티타임 때는 인재와 따로 대화를 해보겠다며 나를 먼저 보내셨다. 나는 면접이 잘 되어 연봉협상이 진행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반대였다. 대표님이 보시기에 그녀는 이력서상 경력은 훌륭했으나 실제 면접을 보니 여러모로 부족했던 것이다. 사실 그녀는 태도나 언행에서는 다소 어둡고 호감이 많이 갈만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럴 경우 보통 손절하듯 빨리 식사를 마치고 면접장소를 빠져나가는 99% 관례다.
이현명 대표는 티타임을 통해 왜 면접이 불합격인지, 다음 커리어를 위해서 그녀가 준비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려 30~40분의 시간 동안 조언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 인재는 면접 전부터 이현명 대표의 열광적인 팬심이 있던 터라, 불합격한 것이 실망스러웠지만 더 존경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현명 대표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 폭주하듯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재들을 대함에는 시간도, 돈도 이토록 할애할 수 있는 것일까? 신비롭기까지 하다. 비단 나와 일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심지어 출중한 인재, 당장 써먹어야 할 인재들에 한정하는 것도 아니다.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학부생이든 석박사 학생이든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한결같다. 진정으로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스승의 진수다.
사실 한국에 유수의 대학 교수 특히 의대 교수님들이 벤처를 창업하지만 고충이 많다. 그중에서 연구실력과 자금문제 보다 인력난, 인력유출 문제로 고생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인력난의 원인 중 하나는 교수님이자 대표님들의 리더십, 인품 및 거기서 구축된 조직문화일 때가 꽤 된다.
대기업에 재직하다 교수님 창업 벤처에 창업멤버로 합류했었던 인재는 아래와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른바 우리나라 1위 S대학 출신의 박사였는데, 자신의 지도교수님에 대한 회고였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저희 교수님은 인품이 너무 훌륭하시고 제가 존경하던 분이셨어요. 내가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벤처를 창업하신다고 함께 일해보자 해서 큰 기대감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뵙게 된 교수님은 동일한 분이신가 할 정도로 많이 달랐어요. 돈(급여, 스톡옵션) 문제도 인색했고 교수님이 옳다는 고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안 들으세요. 대기업을 박차고 벤처에 왔는데, 너무 힘듭니다. 경력만 꼬인 것 같아 속상합니다. 이젠 스톡옵션이 뭐고 다 내려놓으려 해요. 제가 이직할 곳 좀 알아봐 주세요."
이 인재가 토로한 속상함과 답답함은 교수 창업 벤처 임직원들이라며 절절히 공감할 것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교수님들은 연구를 책상에서만 했던 분들인데, 그것이 책상밖 현장에서도 잘 구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다. 마치 책으로만 요리를 배운 사람이 뭐든 다 요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격이다. 벤처를 창업하는 교수님들은 대부분 서울대를 비롯 국내 주요 명문대, 국립대, 지방권에서도 인지도가 높고 연구실적이 탁월한 분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학문적인 프라이드가 높다.
그런데 이 학문적인 프라이드가 벤처를 차리고 실무에 접속되었을 때, 학문적 신념과 오롯한 열정을 넘어 배타적이고 경청 없는 고집과 독선이 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아래 임직원들은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게 된다. 앞에서 직언하기도 어려워, 수개월에서 수년간 꾹 참다가 조용히 이직준비를 하고 어느 순간 조용히 자리를 뺀다. 그들 중에는 회사가 어려워도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숨통을 틀어막지 않았다면, 이 힘든 고비를 함께 견디고 싶었다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물론 요즘 자주 회자되는 벤처의 자금난이 필연 인력난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불황속에서도 열광하는 리더, 가고 싶은 벤처는 여전히 있다. 사람이 먼저다. 인재는 나의 업적의 볼모가 아니다. 내가 쓰다 말아도 되는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다. 인재는 리더의 현재이며 미래이기에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일을 늘 고뇌하고 살펴야 한다. 나보다 학문적 소양은 어려도 그들의 말을 잘 경청하며, 때로 그들이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질책하기보다 기다려 주어야 한다. 회사가 작다고 인재들이 무조건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리더가 있는 곳에 인재들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인다. 사람을 아끼고 키우는 리더가 탁월한 인재를 얻는다. 사
*영상자료상 두분 교수님은 서두글에 나오는 이현명 교수님(가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참고해 주세요.
책 소개
“인생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궁극의 휴머니즘, 세상을 바꾸는 교육, 선한 개인을 위한 정치까지 시대의 은사(恩師) 김형석이 시대의 청춘(靑春)에게 바치는 이야기
“보람, 진리, 그리고 행복… 이토록 다정하고 깊은 삶에 대한 고찰들!” 존재의 답을 찾는 105세 다정한 실존주의 철학자 김형석의 흔들리지 않는 인간을 만드는 최후의 가치에 대하여
올해 105세 한국 최고령 철학자이자 작가, 연세대 명예교수로서 이 시대 최후의 지성이라 불리는 김형석 교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뛰어난 고찰로 각계각층 전문가가 먼저 가르침을 청하는 ‘큰 어른’이다. 〈KBS NEWS 9〉 〈인간극장〉 〈EBS 초대석〉 〈MKTV〉 등 수많은 매체에 출연하며 삶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부드럽고 유려한 언어로 선사해왔다. 그리고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현대인이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100년 넘게 살아오며 얻은 인생의 진리와 깨달음을 『김형석, 백 년의 지혜』에 고스란히 집대성했다.
『김형석, 백 년의 지혜』는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세 가지 관점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웅장하고 대담하게 제시한다. 첫째로 철학계 거목으로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이 잊어버린 사랑과 자유,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을 던져준다. 둘째로 교육자로서 다가올 미래를 위해 후손에게 전해줘야 할 정의는 무엇인지 다룬다.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산증인으로서 이념적 갈등으로 위태로운 한국인에게 다정하지만 예리한 일침을 전해준다. 이 책은 세상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인간을 만드는 최후의 가치를 사유토록 하여 인생의 스승이 필요한 남녀노소에게 꼭 필요한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갇혀 사는 것 같아요.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착함을 선택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저처럼 ㅎ) 그저 순응하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는 사람에게 '착함'이라는 말로 더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못하면서, 가끔은 신랑이나 아이들에게 너무 착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모순이죠?
작가님처럼 착한 분들은 스스로 그 길이 힘들어 답답하면서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그 괴로움과 답답함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저도 예전에 친구들에게 그랬다니깐요.
제가 어렸을 때, 착해서 늘 참고만 있다가 심지어 너무 착하신 제 어머니조차, 너는 왜 맞고 가만히 있냐고 하실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1학년때 남학생이 스탠드에서 저를 괴롭히는 것을, 어머니가 우연히 교문 나가시다 보시고 한숨에 달려오시면서 하신 말씀이었는데요.
그 후로도 이런 제 성격이 너무 진짜 너~무 너~무 싫었지만 한참 동안 벗어나질 못 했어요. 심지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만 있는 자신이 답답했는데, 나중엔 종교까지 생기니깐 가중이 되더라고요. 이래서 우울증이 생기나 싶었는데요.
근데 청소년시절 성경을 깊이 읽어 보니 늘 참고만 있으라고는 하지 않더라고요 ㅋㅋㅋ 예수님도 분노하시고 세상을 책망하시더라고요. 다만 인간인 저는 지혜롭게 예를 갖추어서 충고하고 책망하라 권면하는 것 같았어요.
오늘 서두글은 그런 저의 '자아여행'에 대한 서사가 녹아져 있어요. 물론 지금도 주변에선 착하다고 하는데요. 다만 바뀐 것은 억울한 일, 담판을 지어야 할 대목에서는 예를 갖추되 할 말은 하는 정도는 발전했어요. 어쩜 제 예전 성격으로 퇴화를 막기 위해서 더 이 부분을 강화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세상의 모든 착한 분들'이 좀 더 자유하고 행복해지시길 바라는 마음을 서두글로 공유드려요 ^^
오, 정말요? 저는 교보문고 글판의 <풀꽃>이란 시로 나태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이번에 찾아보면서, 나태주 시인은 참 긍정적이고 따뜻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면때문인지, 발간하는 시집들이 자주 베스트셀러가 되나 보다 생각이 들어요. 독자의 마음에 따뜻하게 봉우리를 만들어 선물을 주는 것 같다랄까요.
우리가 사는 동안 겉과 속이 일치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좌우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모두가 마땅히 품어야 할 명제 같아요. 완벽한 선을 행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극한 선을 인생의 푯대로 삼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요.
저도 속을 보이면 지금도 여전히 창피해요. 흐흐흐 ^^; 사람들이 부귀영화로 자기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심리와 같은데요. 누군가 나를 선망하고 인정하고 인기 있고.. 이것은 어떤 욕구보다 강하고 중독성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래서 브런치에 '중독성'이 있으니 삶의 밸런스가 깨지지 않게 유의하려는 이유거든요.
"인간 안에 선한 것이 하나 없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명제이며, 인간의 민낯인데요. 그럼에도 자꾸 상대적으로 누구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 아니 내 본래 모습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고 싶은 욕망은 늘 자라나는 것 같아요. 근데 이 포장이 그저 애교스러운 포장으로 끝나면 좋은데, 종국으론 교만으로 맞닿아 있기에 일부러 저의 후진 모습을 오픈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오늘 글처럼 말이죠.
그럼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있는 척하던 교만과 허세, 꾸밈이 사라지고 겸손과 진실이 주는 안정감 있는 '인생의 안전벨트'가 착용되는 안도가 생겨요.
소심이요? 저도 꽤 솔직한 편인데도, 가정사든 개인사든 다 드러내기 힘든 게 있어요. 그건 때로 나의 문제라기보다 듣는 상대방이 내 누추한 비밀을 성숙하게 받아주고 지켜줄 것인가의 문제일 때도 많아요.
사람들이 모두 내 맘 같진 않잖아요. 나는 솔직하게 내 약점을 오픈한 건데, 그것을 악용해서 실익을 얻으려는 비열함이, 유명인들 사이에서는 흔하고 일반 서민이 사는 세상에서도 빈번해요. 그래서 솔직함도 상대방의 성숙함에 따라 조절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솔직함의 등급이 있다면 이미 '최상급'이세요. 작가님은 누구보다 속내를 솔직하게 많이 오픈하시기에, 저는 작가님을 애정합니다 ^^
저도 카톡프로필 문구가 10년 넘게 한 번도 바꾸지 않고 "감사"랍니다. 그만큼 늘, 항상 감사하는 삶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한데요.
제가 누굴 대놓고 미워하거나 적의를 드러내질 못 하고 살았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착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는데요. 실은 그때도 미움과 적의를 오히려 숨겨놓은 곶감처럼 쌓여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우울감이 드는 것 같았어요.
오늘 서두글은 어쩌면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이라면 유턴해야 할 세상을 바라보는 뷰의 전환이에요. 나만 늘 상처받고, 나만 피해 본다는 감정. 쌍방 다툼이든 소심한 미움이나 적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공통점이고요. 이 점은 인간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늘 씨름하는 자기 한계인데요.
그때 한적한 오솔길을 걷듯, 나 자신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객관화하고, 상대방과 세상을 넓은 뷰로 보게 되면 보이더라고요. 나도 상처를 주고 가해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고, 내게 해코지 하려는 상대를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말이죠.
저의 경우 대면해서 싸우는 일이 거의 없기에, 이 모든 일이 마음과 독백, 글 정도에서 대부분 일어나긴 하는데요. 그 감정이 숨겨지겠는가 싶어요. 소심한 사람들이 숨겨둔 미움과 적의는 몰래 쌓아놓기엔 더 폭발적일 수 있다 생각해요. 자신을 우울로 해를 입히거나 타인에게 공격적이 되거나 등등.
남들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과 교만을 내려놓으면 자기 성찰과 반성이 수월해지고 마음의 쉬 자유해지는 것 같아요.
@Kyrene 오, 정말요? 제 글들이 시간을 좇기며 썼던 터라 퇴고시간도 충분치 않아 내보이기 민망하고 송구스러울 때가 자주 있거든요. 부족한 글이 작가님의 명상의 식탁에 동석했다니 소자 황송하옵니다.
나름 나 자신과 치열하게 씨름했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는데요.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지점을 브런치에서 함께 나누며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감사와 겸손. 이 두 가지를 장착하며 죄는 거이 박멸되지요. 광의의 겸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이 그 뿌리이기에, 진짜 겸손한 사람을 죄를 짓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이 또한 평생 씨름하며 나아가야 할 길인데, 저는 아직도 갈 길이 태산 같아요. 오늘도 열심히 경주해야죠 ^^
그죠? 최근에 제 손윗언니에게도 동일한 말을 해주었답니다. 언니는 늘 억울한 게 많고 쌓인 분노, 상처가 많거든요. 언니에게, 언니는 의식을 못하지만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주변을 힘들게 하는지, 50대를 바라보면 자기 객관화가 돼야 행복하다고 얘기해 주곤 해요. 전에는 이런 말을 하면 발끈하곤 했는데, 요즘은 순한 양처럼 잘 들어요. 대신 물질적이든 아들 문제든 제가 전심으로 도와주었거든요.
그리고 이 말은 제가 거쳐왔고 또 지금도 매일 씨름하는 나에게 대한 자기 조언이기도 해요. 제가 인간관계에 스트레스가 거의 없고 가끔 버퍼링이 생겨도 금세 치유와 평안이 회복되는 게, 이런 자기 객관화가 빨라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 자신의 허물이 보이고 동시에 누군가 밉다가도 참 그 삶이 안쓰럽고 그러면 마음이 풀리더라고요.
이것 하나만 제대로 터득해도 진짜 "행복한 사람"에 빨리 도달한다 생각해요. 작가님 역시~ 핵심 포인트를 잘 말씀 주셔서 오늘도 감탄합니다 ^^
@청년 클레어 저도 떠오르는 사람이 둘 있는데, 정말 그래요. 자기 객관화, mentalization이라는 단어와도 일부 겹치기도 하고..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잠재적 악'이란 것에 의식을 하게 되면, '내가 저 사람의 상황과 경험 속에 있었다면, 내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좀 더 겸손하게 살아가는 경각심이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에서 '..그래 ...(너라서)..그럴 수 있겠네..'가 되기도 하고..
물론 그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하는 대상이 그런 관점을 얻게 하는 건 너무 어렵고, 그래서 초자연적인 개입을 기대할 수 밖에 없기도 한 것 같아요.
댓글도 감사하고, 예상치 못한 과분한 구독에 감사합니다. 달라지는 빌보드 차트 속에 진입한 것 같은 묘한 기분입니다. ㅎㅎ
@빙산 그죠? 저도 작가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이게 머리에 입력된 대로 감정과 삶이 살아지게 하는 게, 자아성찰 내지는 (종교용어로) 성화일 텐데요. 아는 것이 힘이요, 시작이 반이니, 더디 가는 길처럼 보이고 좌우로 간혹 흔들리더라고 오롯하게 가고자 해요.
초자연적인 개입 ㅋㅋㅋㅋ 완전 빵~ 터집니다. (소곤소곤) 실은 제 비밀 병기(무기) 거든요. 제가 참을 만큼 참았는데도 상대가 진짜 변하지 않을 때 기도해요. 하늘 아버지께 대신 다루어 달라고요. 근데 이 간구가 참 응답이 잘 되는 것을 보면 혼자 몰래 놀라곤 해요. 이거 종교인이나 이해할 대목이긴 하죠.
제가 모두 구독하고 싶지만 저와 소통이 많으신 작가님들 위주로 구독하는 게 아쉽고 송구스러운데요. 작가님은 제가 좋아하는 결의 글을 쓰시기에 전부터 생각이 있었어요. 빌보드 차트 ㅎㅎ 과대한 말씀이옵니다. 작가님의 재기 발랄한 언어유희에 종종 감탄, 감동하옵니다 ^^
'성선설'에 의문이 가면서도 '성선설'이 맞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들... 인간은 결코 선한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장 추한 모순덩어리인데 말이죠.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끊임없이 다듬어가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죠.
언젠가 '착한 증후군'이란 단어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단어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삶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답니다. 실제가 아닌데 실제인 것처럼 행사하며 살았다는 어리석음, 그래도 늦게나마 철이 든 것에 감사하고요.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에 감사해야 하는 아이러니...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니 다른 이들의 사는 것도 고까워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감사해지더라고요~ 고요한 밤에 잘 읽고 갑니다~
제가 배운 종교적인 가르침을 인용드린다면, 인간은 본래 선하게 창조되었는데 죄를 짓게 되면서 원죄 곧 태어날 때부터 죄된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 근데 죄를 회개하면 그 본래의 선한 원형을 회복해 가게 된다, 이리 알고 있어요.
"착해야 한다." 이게 참 좋은 말인데요, 내재화(자기 일치화) 되지 않은 착함에 대한 강박은, 때론 개인과 사회를 왜곡하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뉴스의 범죄자들을 보며 '위선'이라는 말을 쓸 때가 그런 거 같아요. 원래는 착하고 거룩한 줄 알았는데, 전혀 딴판이네, 이런 의미잖아요.
근데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를 잘 알아요. 얼마나 내면이 추악하고 이중적이며 속된지를요. 오히려 이런 자신을 직면하고 인정하고 교정해 갈 때, 자신도 겉과 속이 일치화가 되는데서 오는 자유를 느끼고, 그런 나를 보는 가족이나 주변사람들도 편안해하더라고요.
제 짝꿍 천재와 저는 서로 악점과 실수들을 잘 오픈하여 말하거든요. 말하되, 이해심과 공감, 예의, 유머를 밑바탕으로 해서 나누니깐, 서로 기분도 잘 상하지 않고 웃으면서 인정하고 교정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위선적인 세상을 극혐 했던 사람인데, 어른돼 보니 내 안에도 그런 모습이 가끔씩 보여 자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할 수 있으면 솔직하고 투명하려고 애쓰는 노력으로, 어릴 적 클레어가 실망하지 않도록 스스로 단도리 하는 것 같아요.
나태주 시인의 시를 때마침 읽고 계셨다니, 찌찌뽕! 입니다요.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
작가님 글 읽는데 뜨끔하기도 하고 뭔가 제 마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저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갇혀 살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많이 고치려 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ㅎㅎ) 착함의 틀에 묶여서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쏟고 저는 저대로 제 진실된 모습이 아닌 것 같고, 남들은 착한 저의 모습에 익숙해져서 늘 착함을 바라는 것 같아서 늘 괴롭고 괴리감도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엄청 애쓰고 그냥 저의 본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게 그렇게 마음 편하고 좋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렇게 착하지도 않고 그렇게 악하지도 않아요. 착할 땐 착하고 화낼 땐 화내고 누군가에게 적의를 느낄 땐 당연히 저도 같은 마음이 생겨요. 이런 저를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착한 나를 보여주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착한 나에 빠져있기 보다는 다양하고 여러 면이 있는 제 모습이 이제는 좋아졌어요^^ 이걸 인정하기까지 마음 고생도 많이 하고 참 많이 돌아 돌아왔네요. 나 자체를 인정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들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진실함을 뿌리에 둔다면 나중에는 겉모습과 속마음이 같은 사람으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작가님의 정성 가득한 글 보며 자아성찰을 하게 되네요 ~^^ 너무 좋은 글이에요 깊이 빠져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작가님도 '착함의 성'에서 탈출하시느라 고생하셨군요. 브런치 작가님들이 대한민국 평균에 비하면 상위 10% 이내로 착하신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브런치가 글 외에 착한 사람도 글면접으로 작가 합격을 주는가 합리적 추정을 할 정도랍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 대명제는 참 소중한 가치인데요.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 있고 게다가 살면서 모두들 상처를 한 바가지 이상을 받고 살았기에, 본래 품성도 많이 스크래치가 나있어서 왜곡되기 쉽거든요. 곪아 있는 내면을 그대로 둔 채로 동시에 착해야 한다는 명제에 이중으로 눌려서, 그래서 착한 분들이 우울증 등 내면의 병으로 많이 고통하시는 것 같아요.
"나는 착하지 않다"를 종교에서는 "나는 죄인이다"라고 확장해서 말하는데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이것을 처음 깨닫고 진정 유레카를 외쳤답니다. 얼핏은 서운할 것도 같은데, 그보단 내가 죄가 많다는 사실이 주는 '자유'와 '평안'이 너무도 커서 그 이후로는 이 진리를 마음의 1순위로 품고 살아가고 있어요.
때론 인생 살면서 어떤 문제를 만나 마음이 시끄러워지고 분이 올라오다가도, "나는 죄인이다"를 몇 번만 되뇌면 마음이 금세 회복되기도 해요. 물론 가끔 오래 수백 번 되뇌어야 하는 문제도 있긴 할 테지만요.
작가님은 이 명제를 오래전에 깨달으시고 삶으로 살아내셨다니, 제게는 한참 따라가야 할 인생 대선배님이십니다. 저는 아직도 좌충우돌하는 것 같아요. 하나 작가님 말씀처럼 나의 후지고 못난 모습을 드러내는데서 오는 '겸손하라는 회초리'는 아프지만 시원하기도 해요.
글로서 이리 소통하니 꼭 절친과 만찬을 나누는 것 같아요. 오늘도 평안과 자유 파이팅입니다 ^^
착한 사람이 아니더래도 착한 일을 하면 꼭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착해지려고 노력한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에 대하여 작가님 덕분에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러하듯이 어쩌면 글을 읽으며 이렇게 최선을 다해 집필해 주시니 읽는 저로서는 감동 또 감동입니다. 나태주 시인처럼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게 제 바람입니다. 장마철 건강 챙기면서 일하세요. 감사드립니다.
제가 인정이 많은데, 그날은 비도 오는 데다가 지하철은 만원이고, 비지백에, 우산, 가방, 전날 피로까지 누적되어 좀 예민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남자가 아니 비임산부가 임산부석에 앉으면 안 돼요! 그건 적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준법(?)의 영역이랍니다. 요즘은 시민의식이 높아져서 만원 전철에서도 웬만하면 임산부석 빈자리로 가거든요.
혹시... 작가님도... 아니죠? ㅋㅋㅋ 정의는 그렇더라도 이상하게 제 감정이 평소보다 격앙되더라고요. 아마도 내가 임산부인척 앉고 싶었는데, 주변 눈치 보며 또 양심상 포기했다는 그 지점이 더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원래 나랑 닮은 사람이 더 미워 보이고, 내가 하고 싶은 나쁜 짓을 남이 하면 더 얄미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의 이상 심리들 중 하나인데요. 그날 제가 좀 후진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아, 나중에 민망하더라고요.
새로 집 이사 간 것처럼 브런치 단장 잘 해 놓으시면, 언제 시간 되면 방문(^^) 드릴께요!~
'악당의 등판은 진짜 나의 민낯을 드러내주는 절대자의 선물이다' 작가님, 제가 밑줄을 그은 대목입니다. 오늘 낮 12시 30분경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앞에서는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옆에서는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나를 사이에 두고 먼저 가겠다고 하다 오토바이는 쌩 내빼버리고 자전거 아저씨가 충돌 직전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고는 뭐라 하더라고요. 아무 말 않고 지나치다 제가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악담을 하였는지........ 집에 돌아와 작가님 글 읽으면서 참회하였습니다. 나태주 님은 닮고 싶은 시인입니다. 만나고픈 작가를 만난 오늘 참 좋은 날입니다. 청년 클레어 작가님, 고맙습니다!
우와~ 저도 서두글에서 '악당의 등판은 진짜 나의 민낯을 드러내주는 절대자의 선물이다'에 마음으로 형광펜 칠했던 대목이거든요. 이게 핵심 포인트 중에 하나거든요.
인간은 사람을 속이는 방식으로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 생각하잖아요. 그중에 하나가 속마음, 중심, 진심 등인데요. 이 대목에서 위선과 거짓이 자라 가는 건데요. 절대자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면을 그냥 두시지 않고 사람과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더라고요. 깨끗한 그릇이 되도록 주시는 크고 작은 불연단인데요.
이를 모르고 사람과만 씨름하고 사건이나 환경만 탓하면 내 내면만 황량해지고 열매 없이 세월만 낭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악당 = 훈련 천사'라는 공식으로도 이 부분을 말씀 주시던데요. 살아보니 맞는 말이에요. 다만 내 마음그릇이 그것까지 수용이 어려워 휘청이거나 버티는 게 문제인 게죠.
그나저나 작가님은 자전거 아저씨, 오토바이 아저씨 사이에서 간담이 서늘하게 무서우셨을 것 같아요. 요즘은 소소한 시비에도 사람이 다치고 죽어나가니.. 작가님이 안전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태주 시인이 참 넉넉한 품성의 작가님이시더라고요. 저도 금번에 재발견을 하며 팬심이 생겼답니다. 좋은 시 한 편은 더운 여름 청량음료 같아서, 오늘 아침 여러 번 <사는 일> 시를 읊으면서 마음이 달달하니 좋더라고요 ^^
누군가 그러셨거든요. 타인의 칭찬도, 때론 타인의 비난도 기본적으로 내가 잘나고 못나고는 2순위이고, 실은 '상대방의 인격'이라고요. 그러니 타인의 칭찬에 너무 들뜨지도 말고 또 비난에 너무 위축되지 말란 말일 텐데요. 그럼에도 그중 비난은 내가 독을 발라 겸허 받으면 내게 도움이 된다고요. 이것을 알 때, 타인들에 의해 내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게 되더라고요. 제 경험은 그랬어요.
이름 모를 청년? 그분 20대로 보이나 애 있는 유부남일지도 몰라요 ㅋㅋㅋ 계속 게임을 하더라고요. 전철 입구 들어올 때부터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래서 저를 툭 치고 임산부석에 앉은 거거든요. 제가 경우 없고 무례한 사람 (속으로) 질색하거든요. 원래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전철에 사람이 적은데, 그날따라 1시간 늦게 출발한 데다, 비가 왔고 비지백 등 짐과 우산, 전날 피로 등이 뒤섞어 감정이 잠시였지만 뾰족해지더라고요. 그 사람보단 나를 뾰족하게 만든 상황이 더 싫었던 것도 같아요.
본글의 원문인 <내가 가장 평안할 때(6) 적의사회 2>에선 (본 서두글엔 생략되었는데요) 하단에는 전철을 나갈 무렵엔 그 남자분을 긍휼히 여기며 적의 감정이 원상회복 되었다고 기술했는데요. 순간의 감정이든, 수십 년간의 앙금이든 그 감정의 본질은 같기에 통칭해서 나누어 봤어요.
나태주 작가님을 실제로 뵈었군요? 우와~ 몇몇 작가님들도 대면해서 뵈었다고 하시네요. 독자들과의 만남도 왕성히 하시는구나 간접 느끼네요.
7월에 더없이 쏜살같이 지나갔는데요. 작가님도 더위와 장마 속에서도 건강하고 즐거운 여름 되시고요 ^^
마음에 꿈틀대는 선의와 악의의 다툼에서 선의가 우세하길 늘 갈구합니다. 매 순간 선한 마음의 자세와 용기를 다짐하고 가다듬지 않으면 어느새 악한 마음이 빈틈으로 파고들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어느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적의는 감출 수 없어 표현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글을 통해 순간 순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태주 시인님을 소개해 주셔서 아들딸과 공주에 있는 풀꽃문학관 견학과 인근에 강의 오셨을 때 온 가족이 함께 감동과 재미와 감성을 가득 충전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가지고 간 시집에 ’ 풀꽃‘ 시구를 써 주셔서 감동 두배~.
하루에도 수없이, 인간 내면에선 선의와 악의가 정말 치열하게 전쟁하는 것 같아요. 나이 드니깐 무던해지고 무디어져서 소싯적 때보다는 평상심이 잘 유지가 되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가끔 마음이 엉클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 말씀처럼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악에 지지 않고 선으로 이기는 삶을 살기를 소망해 보아요.
제가 직업상 험악한 성격(^^)의 임원들과도 소통하고 일하는지라, 좀 센 사람들을 부드러우면서도 위트 있게 제압하는 습성이 생긴 것도 같아요. 예전보다 '분명함'과 '단호함'이 많이 연마된 것 같아요.
작가님도 풀꽃문학관을 가족분과 더불어 견학을 가셨군요. 때마침 나태주 작가님이 강의를 오셨다니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글은 지문처럼 작가의 심성이 녹아지고 드러나는 듯한데요. 저도 나태주 작가님을 재발견하는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나태주 작가님 포함 인생을 먼저 살아내신 분들은 모두 인생 스승이시라 생각해요. 여전히 또 계속해서 늘 배우고 성장하는 클레어가 되기를 다짐에 다짐을 해보아요.
봉사행사를 잘 치뤄내시고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그 고운 마음을 하늘에서도 아셨을까요. 그렇게 내리던 비도 피해 가고, 무더움도 돌아서 갔다니 분명 하늘에 뜻인가 봅니다.
악의와 적의에 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최소한의 예의로 임산부석만은 지켜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야 없겠지만. 착한 코스프레. 그냥 지난 세월이니 그랬다고 쉽게 치부해 버리고 가벼이 살아갑니다. 몰라서 착해야 했고, 알고도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고. 그것들이 무엇이든 이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으니 잘 살아온 것이겠지요.
나태주 시인의 문장들은 쉽고 평이한 언어들로 쓰여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어려운 단어들로 중무장하듯이 쓰여진다면 일반독자들에게는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나태주 님의 시는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긴 글 감사합니다.
봉사행사 때 날씨 놀랍죠? 저는 기도하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요. 출발할 때부터 맑았고 약간 흐려서 햇볕도 별로 없고 좀 시원하게 갔어요. 오는 날도 비예보가 있었는데요. 새벽에 잠깐 내렸던 것은 같은데, 아침 식사할 때부터는 쾌청해졌답니다. 많은 분들의 염원이 하늘을 감동시킨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문제의 임산부석. 앞에서도 말씀드렸는데요. 아마도 내가 임산부인척 앉고 싶었는데, 주변 눈치 보며 또 양심상 포기했다는 그 지점이 더 자극이 된 것도 같아요. 원래 나랑 닮은 사람이 더 미워 보이고, 내가 하고 싶은 나쁜 짓을 남이 하면 더 얄미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의 이상 심리들 중 하나인데요. 그날 제가 좀 여러모로 마음이 후지고 모잘랐던 것 같아요. 전철 나올 때 즘엔 민망해서 그 남자분에 대한 불편감은 사라지고 참회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흐흐흐
나태주 시인님의 글이 무난하고 편안하게 읽히더라고요. 시나 에세이는 그런 접근이 대중들이 선호하는 것도 같아요. 어려운 단어도 많이 알아야 그리 써질 텐데, 전 애초에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에요. 나태주 시인님의 시집은 베스트셀러에 자주 올라서 참 신기하다 몇 번 생각했는데요. 이번에 그 매력을 맛보아 저도 팬심이 생겼답니다.
어제밤 다 읽고 댓글 쓸려고 하니 어! 갑자기 글이 없어져버렸더라고요.ㅎㅎ 제가 너무 급했나 봅니다. t.v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퀴즈에 나태주시인님 나오는 예고를 보고 몇 년 전에 정규로 시인님의 방송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따님 나오는 것도 보았는데요!
유쾌하고 어린이 같은 감성을 지닌 나태주시인님을 보며, 더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작가님의 방대한 자료와 열정의 글로 더 알게 되어 기쁩니다. 작가님! 무더위 지치지 마시고 더위타파 잘하시옵소서~~♡
보셨군요? 어젯밤 제가 송구스럽게도 또 발행 취소를 했답니다. 어제 하루종일 직장일로 뛰어다니다 저녁 때서야 글을 마무리했는데요. 제가 성격이 급해 바로 독자분들을 뵙고 싶어 글을 발행했어요. 근데 시간이 밤 10시가 넘어서 좀 독자분들이 쉬시는 시간에 불편하실까 봐, 댓글 달리기 전에(^^) 바로 발행 취소를 했어요.
< 이 자리를 빌려 어젯밤 '라이킷' 주셨던 독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 올리옵니다. 흐흐흐>
유퀴즈 나태주시인 편을 직접 보셨군요. 저는 오늘 발췌드린 기사로 보아서 언제 시간 되면 찾아서 볼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재밌었나 보네요. 저도 찾아서 보아야 겠어요.
저는 나태주 작가님을 사진으로만 뵈었는데요, 사진상의 인상도 유쾌하고 어린아이 같은 감성이 느껴져요. 제가 이런 분들을 대개 좋아하거든요. 팬심 두둑하게 생겨서 정주행 하려고 해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임산부 자리에 앉은 게임 하는 남자. 제가 혈압이 있어서 약도 먹었는데 갑자기 조절이 안 되는 기분이네요. 최소한의 양심만 지켜줘도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을 텐데 정말 안타까운 사람이죠. 착하게는 아니라도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저렇게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에 빠져 있으니! 아이고~안 본 눈 삽니다~소리가 저절로 나와요^^;; 이제 내면의 평화를 위해 마련해 주신 나태주 시인님의 글로 저를 정화시켜야겠네요. 올려주신 글 감사히 읽고 갈게요.^^
작가님의 강렬한 공감 댓글을 읽다가 중간 부분에서 웃음이 빵 터졌어요. '안 본 눈 삽니다' 이런 신세대 표현을 쓰시다니 작가님 감각이 젊으세요. 아주 신선한 멘트에 시름이 순간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하필 그날 비가 오던 날이고 제가 평소보다 1시간 늦게 나온 터라 만원 전철이었답니다. 게다가 그날따라 제가 옷수선한다고 비지백에, 우산 들고.. 다리도 아파 앉고 싶어서 더 감정이 순간 올라왔나 봐요. 제가 평소에는 도리어 자리도 잘 양보하거든요. 근데 이 모든 절묘한 상황을 통해서 저의 민낯이 드러내시니.. 전철을 나갈 때 즈음에는 가슴을 치며 참회기도를 드렸다니깐요. 흐흐흐
근데 만원 전철의 임산부석에서 게임하는 20대 남자는 좀 생경하긴 하죠? ㅎㅎㅎ 그냥 그분이 전날 직장에서 스트레스받고 게임으로 힘겹게 풀고 계셨던 게 아닐까, 무슨 조직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조폭 부하직원은 아닐까, 취업이 안돼 오늘도 일용직 노동하러 가실까, 등등 상상하다 보니 지하철 내릴 때엔 오히려 미안해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서두글 원문에는 이 대목이 나오는데 글이 길어질 듯 해 오늘은 생략했어요.
저도 작가님 마음처럼 서두글 읽고 답답증을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량감을 회복했답니다. 순간 찌찌뽕! 외칠뻔했어요. 편안하고 행복한 밤 보내시고요 ^^
작가님 글이 잠시 올라왔다 사라져서 한참 찾았답니다. 이제 읽습니다. 착함의 성벽이 무너질 때가 종종 있죠.. 착하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악하지 않은 게 착한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착한 사람도 있겠죠.. 저도 착하다는 말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몰라서 하는 말이죠.. 억울하고 분하고 시기 질투 날 때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저는 혼자 생각합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닌 걸루요..
나태주 시인은 모두의 시인이죠..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글 읽는 동안 시 구절 네가= 작가님이 되어 부렸어요.. 잘 읽고 갑니다. ^^
빛나는 윤별경 작가님도 동일한 말씀을 주셨는데요. 작가님도 그때 보셨군요? 그제 밤 제가 송구스럽게도 또 발행 취소를 했답니다. 흐흐흐.
그날 하루종일 직장일로 뛰어다니다 저녁 때서야 글을 마무리했는데요. 제가 성격이 급해 바로 독자분들을 뵙고 싶어 글을 발행했어요. 근데 시간이 밤 10시가 넘어서 좀 독자분들이 쉬시는 시간에 불편하실까 봐, 댓글 달리기 전에(^^) 바로 발행 취소를 했는데요.
< 이 자리를 빌려 그젯밤 '라이킷' 주셨던 독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 두 번째 올리옵니다. 흐흐흐>
우리 송주 작가님이시면 충분히 착하시지요. 그걸 의심하진 마셔요 ㅎㅎ
다만 오늘 서두글의 '착함'은 어떤 면에서 속사람 즉 마음속 깊이, 무의식까지도 선함을 유지한다는 '착함'이라, 엄밀하게는 인간이 사는 동안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착함이랍니다. 종교용어로는 '의롭다'가 좀 더 적합한데요. 쉽진 않지만 여기까지 자아성찰이 입문하게 되면,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더 평안하고 자유롭게 돼요. 이건 자학이나 자기 비하와는 다른데요. 나의 실체를 아는데서 오는 진정한 겸손이랄까요. 경험해 보면 그 자리에 있는 게 편해요.
'억울하고 분하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이렇게 말할 때 손 드는 사람이 착각 중병인 악한 사람이랍니다. 뉴스에 나오는 착한 줄 알았는데, 뜨악하게 하는 사람이 이때 손 드는 사람일 수 있어요. 인간은 오십 보, 백보 비슷해요. 자신을 유려하게 잘 포장하는 사람이냐, 아니야의 차이가 아닐까도 생각해요.
그렇기에 서로의 포장능력을 경쟁하기보다 나의 실체에 바짝 붙어서 '나는 원래 죄인이야, 착하지 않아' 팻말을 들고 있으면, 세상의 소란스러움에 자유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러더라고요. 잠깐 마음 상하는 일들은 있지만 금세 평안하고 자유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은 이미 이 자유의 세계를 경험하고 계신 것 같으신데요? ^^ 오늘 하루도 즐거운 글쓰기 여행 되시고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동시에 @청년 클레어 작가님의 글을 읽자니, 엄청난 독서량과 다작하셨겠구나 라는 짐작이 감탄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착하다? 한국적인 착함은 사회화와 전체를 중시하는 문화 남을 인식하는 유교문화들이 짬뽕되어서… 우리를 간혹 답답하게 하는 정의가 되기도 한다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 들었어요. 이게 또 저의 정체성에는 엄청난 무게감과 죄책감을 주었더라고요. 대신 “너 때문이야.” 기대감이 크셨던 부모님들이.. 자꾸 너 때문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았거든요. ㅎㅎ 이러든 저러든, 진정한 자유를 저나 작가님 모두 찾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기록이 우리의 구원의 도구이며, 창조주를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착함 = 사랑임을! 알게 되는 시간입니다. 작가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행복한 7월 되세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긴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앗 나민애교수님 유퀴즈에 나왔다는 사실을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방금 읽고 왔는데 통했다며 전율을 느꼈지 뭐예요. 참 그리고 '적의'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네요. 저도 줄곧 착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란 터라 마음속의 화나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내색하지 못해서 병이 날 지경이었어요. 타자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고르고 싶은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바보로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알았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죠. 그들은 나를 이용해 먹고 자기들 편한 대로 마구 조종한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제멋대로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한 번의 단호한 배짱이 더는 저를 함부로 못하게 했죠. 적의를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이, 유퀴즈 나태주 시인 편을 어제 블로그에 보시고 바로 제 글을 읽으셨다니 저도 막 전율이 느껴지네요. 저도 오늘 유퀴즈 편을 유튜브에서 발췌본으로 보았는데, 영상으로 만나는 나태주시인도 참 좋더라고요. 유튜브에 빅퀘스천, 세바시 출연 영상도 좋았어요.
적의. 이 감정이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인간관계에서 우리를 휘청거리게 하며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도 이 지점이라, 많이 고뇌하는 주제 같아요. 누구라고 적의라는 감정을 품고 싶겠어요. 타인에게뿐 아니라 내게 나쁜 감정인 것을 알고 있지만 철거머리처럼 떨쳐내지지 않는 감정이잖아요. 제 경우엔 40대가 되니 이 적의가 정말 파격적으로 줄어들었는데요. 오늘 서두글은 제가 적의란 감정을 털어냈던 또 지금도 잘 털어내는 저의 자아여행 같은 글이에요.
'착함'을 대놓고 강요하는 사람도 은근히 있더라고요. 누구는 착해서 이것도 해주고, 내 얘기(험담 등)도 동조해 주는데, 너는 왜 그렇지 않은가. 이런 접근인데요. 올초에도 집 매매하며 은근 그런 분을 뵈었어요. 그때 대놓고 착함증후군에 대해서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갔고 그분이 수 그러 들더라고요. 문제는 그분은 정작 강성인 성격에 말도 좀 거친 여자분이었거든요.
작가님도 그런 세상에서 이용당한 힘든 경험이 있으시군요. 토다토닥. 그럴 때 한 번은 '담판을 짓듯' 명확하게 말을 하는 게 필요해요. 함부로 못 하도록 말이죠. 적의는 당연히 스며들어 올 수 있는 감정이나 잘 조리해서 건지면 나도, 타인도 교정하며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더라고요.
저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심적으로 조금만 무심하게 살아도 착하게 살아야지, 왜 무심히 대해? 라면서 나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게 문제예요. 이제는 조금 유연하게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고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요.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게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최근 들어서 깨닫고 있습니다.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다는 거겠지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됩니다. '적의'를 품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속 사정을 들여다 보고 이해를 하게 된다면요. '적의'를 품고 실컷 욕을 했다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더라면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이번에는 나태주 시인에 대한 방대한 연구물을 올려주셨네요. 평소에 좋아하던 시인인데요. 나태주 시인을 좋아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을까마는 특별한 인연으로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서사시나 사상시보다 서정시를 선호하게 되는 건 다 같은 사람의 마음일 것 같아요. 쉽게 자연스럽게 쓰여진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니까요. 신춘문예 당선 시들을 보면 난해한 것들이 많은데 대비가 됩니다. 서정시인 박목월님의 눈에 서정시인 나태주님 시가 들어와서 아주 다행입니다. 시인의 따님도 얼마 전 동아일보에 기사에서 독서를 강조했지요. "독서는 장기 투자다. 학부모님들은 '읽기의 힘'을 믿어야 한다."
클레어작가님이 해드헌터라는 직업을 갖고 똑똑한 사람 쏙쏙 뽑아내는 눈을 갖게 해준 게 '읽기의 힘' 맞지요?
초등학교 때는 유독 세상에 대해서 불평과 염증, 회의가 가득했던 것 같아요. 아예 어른들 세계를 불신하며 좀 냉소적으로 보기까지 했는데요. 그런데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이 불편한 감정들이 점점 교통정리가 되더라고요.
작가님의 아래 글을 읽으면서 오늘 서두글을 연상했던 기억이 있어요. 작가님 말씀처럼 자초지종이나 하다못해 그가 그렇게 이른바 악당이나 빌런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서사를 알려하고 들으려 했다면, 그래도 이 적의가 여전히 있을까? 적어도 저는 적의가 많이 줄어들 것 같더라고요.
박목월 시인님이 나태주 시인 결혼식 주례도 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나태주 시인이 유퀴즈에서 읊어 주신 아래 시도 좋더라고요.
-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제 직업이 좀 영향이 있겠죠? 검색하고 정보수집하고 전략 짜고 사람들을 알아보고. 고객사들이 제가 (업무상) 추천한 인재들이 실력뿐 아니라 사람도 좋다는 평가가 많으세요. 제가 돈 많이 번다고 해도 인성에 문제가 있는 인재는 아예 진행을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인가 인생 살면서 힘든 사람들은 잘 피해 다녔던 것 같아요. 엄밀하게는 사전에 거리를 둔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가족이나 지인들은 아니고 오가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좀 이젠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신뢰'를 소중하게 보는데, 모두가 저와 같진 않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에 대해 조심성이 생겨 가는 것 같아요.
그죠? '착하다'는 것은 참 좋은 가치인데, 세상은 그것을 강요하며 오히려 더 무례하게 대하고 심지어 조종하고 이용하려 하잖아요. 타인의 장점을 그렇게 접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른바 착한 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우울증에도 많이 걸리시더라고요. 그런 타인들은 좀 거리를 두던지, 가족이나 지인이라 거리 두기가 어려울 때는 조심스럽게 조언이나 권면, 대화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말이 안 통하면 '담판 짓기'도 불사해야죠. 장기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요.
나태주 시인은 시도 좋고요. 유퀴즈, 세바시, 빅퀘스천 등 영상으로 실물을 뵈니 그것도 더 좋더라고요. 본 글에 해당 영상 링크를 삽입하려고 했는데, 자꾸 에러가 생겨서 포기했어요. 링크 삽입이 가능해지면 사인드릴게요ㅎㅎ
인생을 진지하고 따뜻하게 살아온 시인의 마음이 시에 잘 스며 나오는 것 같아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
핵심 포인트를 잘 보셨어용. 인간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이 안 할 때 또 자기도 하고 싶은 나쁜 짓을 남이 할 때, 더 미워하고 정죄한다고 하더라고요. 비 오는 날 만원 전철에서 누구라고 임산부석 빈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저를 포함 주변 승객들이 더 예민하고 감정이 뾰족해졌던 것 같아요.
가볍게 보면 지하철 악당의 비매너 이기심에 불과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인생에서 이런 상황들이야 말로 불쾌한 문제를 넘어, 나의 민낯을 드러내 주는 '자기 성찰'의 소중한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 저는 어느 날 자신을 돌아 보며 도덕적, 윤리적 강박에 둘러싸인 저를 발견했어요. 슈퍼 에고가 강한, 성향으로 단단히 뭉친 사람이었더라고요. 스스로 만들어 둔 벅찬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어죠. 이제 겨우 글을 쓰며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도 처음 시작은 책에서 세상에서 주변에서 나에게 프레임을 씌우는데 결국 자기를 둘러싼 프레임에 자신은 속고 있죠. 물론 그것은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긍정의 역할을 하기도 하죠. 지하철에서 작가님의 경험은 우리 인간의 의식에 대한 근원적 경험이라 여겨집니다. 최근 저 또한 저를 가득 채우고 있고 저를 지탱한다고 믿었던 이성의 끈이 얼마나 얕고 무기력했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담에 이후 이야기 작가님과 나누고 싶어요^^
이젠 나태주 시인의 시에 의지하게 됩니다. 에너지를 힘겹게 쓰지 않아도 내 삶이 되는 시, 시인이 전한 좋은 에너지, 어린이들을 향한 찬사가 글이 되어 빛날 때 미래에 대해 잠시라도 안도하게 된답니다.
작가님이 소개하신 작가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해 오던 작가님들이었답니다. 물론, 그분들의 작품 글에 더 마음을 치우쳐 있으나... 긴 글 소개 감사드려요. 작가님을 쓰고 소개 작가를 담아낸 작가님 글이 좋네요. 제 응원은 늘 한 걸음 늦지만 '언제나' 읽고 공감하고 자극받아 저도 쓰고 그 위안으로 다시 작가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담아 주신 첫 문장에 격하게 공감이 돼요. 저도 '도심 속의 수녀'에 준하는 인생을 살아왔던 터라서요. 제 경우는 주위에서 강요를 해서라기보다 밑천 없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인생을 살다 보니, 조금의 일탈에도 내가 무너질 수 있고, 그것은 곧 낙오나 실패를 의미한다 생각했어요. 물론 종교를 통해 깨달은 인생의 순리를 중. 고등학교 때 깨달은 바도 있어 자발적으로 즐기며 그리 살았는데요.
윤리, 도덕은 그 자체로는 인간을 파괴와 균열에서 지켜주는 좋은 '안전장치'라고 생각해요. 다만 세상이 일탈, 개성, 자유, 개개인의 다양성의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이것을 '억압' '굴레'로 부각해서 좀 그 가치가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와는 별개로 개인이나 가족, 공동체적인 서사나 특정한 이유 때문에 강박적으로, 강압적으로 써진 프레임이라면 도리어 조금은 나사를 풀어주는 게 나을 듯도 한데요. 윤리, 도덕뿐 아니라 감정, 가치관, 인간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은 입체적인 줄타기를 한 것도 같아요.
나태주 시인과 따님 나민애 교수와의 공저자인 <나만 아는 풀꽃 향기>을 거이다 읽었는데요. 나태주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더라고요. 나태주 시인도 초년도에 정규교육이나 화려한 등단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친근감이 가는 것 같아요.
제 짝꿍 천재와는 너무 재밌는 에피소드가 날마다 쌓이고 있어서 글쓰기 근질근질한데요. 언제 본 매거진 서두글로라도 한번 공유드릴게요. 저에게 최근에 양고기를 사주면서, 제가 '감사하옵니다' 했더니 '양 먹여 잡아먹으려고 그러지' 하더라고요. 변기 막혀 뚫어주면 얼마 준다길래(이런 일을 좀 잘 못하셔요, 그분이), 매번 부끄러워하며 부탁하지 말고 2년 치 마일리지로 주라고 했더니 진짜로 주었답니다. 이거 제 조카가 알고 진짜 실화냐며, 우리 둘이 너무 웃긴 커플이래요 ㅋㅋㅋ
나태주 시인의 순수함이 저는 좋더군요. 그 순수함이란 삶을 건강한 시선으로 보실 줄 안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어요. 소년처럼 설레게 하는 부분도 가지고 계신 분이고요. 얼마 전 나민애 교수도 유키즈에서 보았죠.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란 생각에 흐뭇하고 뭉클했답니다. 좋은 시인을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님.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죠? 70세 나이이신데도 순수 심지어 따님도 귀여우신 면이 있다 할 정도이니 나이 들지 않는 미소년 같다랄까요.
어제도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오디오북으로 읽었는데요. 나이 들어 더 살아서 더 실수하는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런 나이 듦에 대한 자괴감을 기술한 시였는데요. 보통은 노인 홀대한다, 너희는 나이가 안 들 줄 아냐, 이렇게도 접근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찬찬히 살피고 슬픈 듯 그러나 잠잠히 세월의 오욕을 수용하는 대목에서 참 단정하고 부드러우며 군더더기 없이 순수를 지향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브런치 시작하기 전까지 시집을 그렇게 즐겨 본 편은 아니거든요. 브런치 시작하며 호랑작가님 시를 필두로 최신글 '글 도로'를 지나가 나는 시들을 보며, 시가 갖는 마력에 빠져들고 있답니다. 본 매거진을 시작하면 해당 작가님들 책을 1권 이상 읽는다는 목표였거든요. 나태주 시인의 대표 시들 정도 알던 데에서, 시집과 산문집을 읽으며 마음이 정적이며 담백해지는 것 같아 참 좋아요.
'착하다'를 '바람직하다'로 호환하니 뭔가 정체성이 긍정적인 쪽으로 더 강조되는 것 같아 좋네요.
착하다는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선(의)'에 근접해 있는 모습으로, 모두가 지향해 마땅할 텐데요. 문제는 악과 불의, 개별 문제나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이 착함이 악용되거나 끌려다닐 수 있다는 점 같아요.
전 착함의 다른 얼굴엔, 악에 대한 NO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약용 선생님 같은 큰 어르신들의 '단호함' '강직함' 등에 착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생각도 해요. 그런 점에서 착함의 재정의는 개인과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씨름해야 할 주제 중 하나 같아요.
착한 사람콤플렉스... 착한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증상이죠. 저도 착하다는 소리를 항상 들어왔는데, 어느 날, "콤플렉스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청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난 착하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맞아!'라고 말이죠. 그리고 은근히 사람들의 칭찬과 시선을 즐겼던 것 같아요. 물론 '척' 하다가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ㅎㅎ
저는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못 들어봐서인지 :D 클레어작가님의 글을 보며, 브런치 마을 작가님들과의 소통을 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답니다. 반면 나는 왜 착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라고 반문을 해보았는데요. 직설적인 화법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더라고요. 좋게 표현하면 예리함이고 안 좋게 표현하면 OOOO은.ㅋㅋㅋ
근래는 일상에서 대화를 하고, 브런치마을에서 쓰기로 표현을 하며 언어의 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흩어지는 말속에서, 표현되는 글 속에서 '나는 얼마나 진솔한가'에서부터 의도와는 달리 곡해되는 부분까지.. 이 부분이 어쩌면 착한 이의 적의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아몰랑 끌어다 붙여봤어요. :D
BONO 작가님의 아주 기쁜 소식에 저도 함께 축하드렸는데요. 클레어 작가님의 글에서 실명과 실물을 영접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요. 더불어 우리 청년 클레어작가님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두둠칫 춤을 추는 모습과 연관 지어 상상해 봅니다. 상상만 했는데 기분이 좋으네요. :D 언제나.. 늘 그렇듯.. 건강한 하루 되세요.
봉사는 왼손이 하는 것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데, 글 발행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정을 알리느라 드러나 실은 살짝 민망하기도 하고 쑥스러워요. 작가님은 충분히 착하다에 들어가실 것 같은데요? 온라인상에서는 작가님의 직설화법이 잘 느껴지질 않은데, 설사 직설화법이라도 그건 스타일의 문제이지 착함의 잣대는 되지 않을 것이에, 오늘부터 아리사 작가님을 '착한 시민'으로 명합니다 :)
Bono 작가님의 글을 그대로 인용드린 건데요, 저도 소 쿨한 보노작가님의 글향기와 사진을 매칭하며 흥미로움을 느꼈어요. 아름다움은 타 작가님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저는 그저 무명(익명)의 무수리로 남을라고요. (나만의 아름다움은(?!)은 오직 한분 짝꿍님만 감상하시면 그것으로 족하옵니다 ㅎ)
얼마 전에는 천재의 반바지와 티를 오버핏으로 입고 미용실 가서 오랜만에 세팅파마를 했네요. 이 남자가 긴 생머리를 좋아해서 고수하다가 용기 내어 굵은 컬이나마 웨이브를 주고 앞머리도 잘랐더니 10년은 젊어 보인다며 좋아하더라고요.
오늘 직장동료인 남자 상무님이 (제가 브런치 쓰기 훨씬 전인) 예전부터 브런치 글 읽곤 했다고 하더라고요. 재밌다며 약간 마니아 같았어요. 근데 제가 브런치 초반에 100명대 일 때 한번 보고를 했었는데, 이 정도로 오래 읽어온 분인 줄은 그때는 몰랐거든요. 오늘 '내가 그 브런치 작가다'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데, 아직은 제 필명은 비밀로 두고 싶기도 해요. 혹시 내 글 읽고 나인줄 알고도 모른 척해주는 걸까요? 별별 생각을 잠시나마 다했네요.
아리사 작가님의 2막의 여러 도전들이 계속해서 건승하시길 바래요. 날마다 화이팅입니다 ^^
@청년 클레어 착한 시민 명 받겠습니다:) ㅋㅋㅋ 웨이브머리에 앞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하는 찰나의 클레어 작가님이 그려지는 상무님과 에피소드도 넘 재밌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제 하루를 웃으며 마무리합니다. 작가님의 내일도 활짝 웃는 하루이길 바라요.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