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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21. 2021

슐레이만 1세의 사랑시와 슈만의 헌정

값을 매길 수 없는 맞춤형 선물


 유명한 터키 드라마 <위대한 세기>를 보면, 오스만 제국을 통치했던 슐레이만 1세와  왕비 휘렘 술탄의 서사가 웅장하게 그려진다. 제국을 통치하는 슐레이만 1세의 모습은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여느 군주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지만, 휘렘과의 러브스토리는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그녀의 본명은 록셀라나로, 러시아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지만 전쟁 포로로 끌려가 우여곡절 끝에 하렘으로 들어오게 된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는데 휘렘은 이런 관습을 깨고 슐레이만과 결혼을 하여 정식 왕비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권모술수로 이국 땅의 노예신분에서 황후로 살아남은 악녀 취급을 받지만, 그녀는 지혜와 공감능력으로 남편을 도운 슬기로운 아내이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아는 주체적인 여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슐레이만 1세와 그녀의 길고 깊은 사랑은 슐레이만의 편지와 사랑시를 통해 증거로 남아 있다.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 빛나는 나의 달빛이여,
나의 목숨과 같은 벗, 나의 가장 가까운 이, 아름다움의 제왕인 나의 술탄.

나의 생명, 내가 살아가는 원인 되는 나의 천국,
천국의 강을 흐르는 나의 포도주여,

나의 봄날, 나의 즐거움, 나의 낮의 의미,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그림 같은 나의 사랑, 나의 미소 짓는 장미여,

중략.......

머리카락은 아름답고, 눈썹은 활과 같고,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나를 아프게 하는 연인이여,
설사 내가 죽더라도 그 이유는 그대 때문이리니, 나를 구해주시오
오, 비무슬림인 아름다운 나의 사랑.

그대의 문에서 계속 그대를 찬양하리, 그리고 노래하리.
사랑 때문에 아픈 가슴을 지닌, 눈물이 가득 찬,
나는 무힙비요, 행복하도다.
 

 슐레이만 대제가 휘렘 술탄에게 바친 연애시,      <출처-나무 위키>

                안톤 힉켈 〈록셀라나와 슐레이만 대제


 나는 이 시를 쓴 시점이 궁금했는데, 어디에도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았다. 사랑에 빠지는 격정적인 순간에는 어떤 아름다운 말도 할 수 있을 테지만, 함께 한 세월이 제법 되었을 때에도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면 진정한 애착이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짐작일 뿐이지만, 이 시를 읽으면 연애 초반의 강렬한 끌림을 넘어 사랑과 감사로 마음이 채워진 슐레이만 1세의 모습이 그려진다. 왕실은 끝없는 암투가 벌어지는 곳이고, 특히 슐레이만 1세 때의 오스만 제국은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진화심리학자 헬렌 피셔는 사랑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3단계로 나누었는데, 1단계는 성호르몬이 작용하는 욕망(Lust), 2단계는 도파민 회로가 작용하는 끌림(Attraction), 3단계는 옥시토신 등이 작용하는 애착 (Attachment)이라고 한다. 애착의 단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종의 신경회로 변화가 필요하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은 "무힙비" 라는 단어였는데, <사랑에 미친 남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접국을 여러 번 정복하고 오스만 제국을 46년간 통치했던 대군주의 필명이 <사랑에 미친 남자> 라니, 웃음이 나온다.


 이에 비해 슈만의 <헌정>은 클라라와 결혼을 앞둔 시점에 쓴 사랑 노래다. 역시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하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아름다운 사랑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데, 클라라는 이 노래를 들을 때 그러한 삶을 예상했을까.

                            슈만과 클라라의 초상화

          출처 https://cdn.beopbo.com/news>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당신은 나의 환희, 나의 고통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
당신은 나의 천국, 나 그 안에서 날으리
당신은 나의 무덤, 나 그 안에 내 근심을 영원히 잠재우리
당신은 나의 안식, 나의 평화
당신은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고귀하게 하네
당신의 시선이 나를 맑게 하고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어올리네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며,
보다 나은 나 자신이네

 슈만 '헌정'


 내가 술탄의 사랑시와 슈만의 헌정을 묶어 생각한 이유는 내가 그런 시를 선물 받고 싶어서였다. 

남편이 2년 전 개원하자 직업적 의사를 넘어 사업자가 되고 경영자가 되었다. 당연히 의무와 책임이 늘어났다. 우리는 매출, 직원 월급, 살아남기, 성장 등 숫자와 관련된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겪어야 했고, 내 머릿속 시계는 한없이 과거로 태엽을 감았다. 한겨울에 밖에 서 있는 눈사람처럼 시리고 아팠다. 내 마음은 물질과 관계없이 매우 가난했다.

  

 남편에게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지만 남편의 마음 역시 한없이 가난했다. 환자들에게만 나누어줘도 되었던 마음이 이제는 직원들에게도 가야 했다. 처음 해 보는 경영이 불안하고 조급했다. 나는 이 심적 가난의 악순환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몸부림쳤다. 한없이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다투어도 보고, 아이들에게 화도 내어 보고.......


  결국은 어떻게든 마중물을 부어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공허하다 못해 가슴에서 피가 나는 느낌이 들고,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사랑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 힘들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조금씩 도움을 주면서 나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니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며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것이 내가 목말라했던 애착이었나 보다. 전에는 떨어져 있으면 불안한 마음에 늘 가까이 있고 싶어 했던 우리 부부는, 오히려 각자의 자리에서 약간의 심적 거리를 두고도 자기 인생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졌던 바람 중 하나는 남편에게 바로 그런 시를 선물 받는 것이었다. 시의 완성도는 상관없다. 노랫말도 좋다. 이런 요구를 말로 표현하려니 낯간지럽지만, 내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니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하여 솔직해졌던 것이다. 우리 부부의 갈등 중 상당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아도 표현하지 못하는 점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이 바람은 아직 남편에게 얘기하지 못했다.

 

 그 시는 과연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럴 리 없겠지만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내가 아주 큰 빌딩 하나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남편이 지어준 사랑 시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시를 품에 안고 죽을 때 관에 들어갈 것이다. 아직 받지도 못했는데, 아니 써 달라고 얘기도 못했는데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긴 하.


 나는 왜 값나가는 물건보다 남편이 쓴 시가 갖고 싶냐 하면, 내가 이전 글에서 <이마고>에 대해 표현했듯이 아버지는 나에게 타는 듯한 목마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늘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삶을 사는 내성적인 분이었고, 나는 아주 많이 관심 애정을 원하는 아이였다. 나는 알록달록 색칠을 기다리는 흑백 밑그림과 같았다. 어떤 색이라도, 상처를 주는 색깔만 아니라면 칠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동과 삶에 대해 그 어떤 코멘트를 해 주는 남편을 애타게 원했던 것 같다.


 바로 이런 것이 인간이 언어를 통해 부여하는 의미인가 보다. 사람은 각자의 결핍이 다르므로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가 다른 것이다. 나에게 사랑이란, 나의 결핍을 채워 주는 것이고 그 결핍은 나에 대한 언어적 표현다.


 사람 모두 다른 결핍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를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우리는 배우자의 외적인 조건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숫자로 값을 매기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결핍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은 기준으로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이 페이스북에 써 두었던 글을 인스타그램에 옮겨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 나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남편이 올린  글을 보니 제법 잘 쓰는 것 같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도 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시>를 부탁해 보아도 될 것 같다. 어쩌면 시를 쓰는 것이 크게 부담될 거란 나의 예상은 오해인지도 모른다. 전쟁터에 나간 사람처럼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있다 해도, 한 순간 시를 쓰지 못할 만큼 여유 없는 사람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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