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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06. 2024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_21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21. [영화 톺아보기] 그 이름 없는 사제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 로베르 브레송,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

#20. 심문

   일단 또르씨 사제가 젊은 사제를 나무라는 것으로 둘 사이의 대화는 시작됩니다.

   “옷차림하고 몸가짐에 신경 좀 쓰게나. 외투는 꼴이 그게 뭐고, 얼굴은 또 왜 그 지경인가?”

   “제 잘못이 아닙니다.”

   “왜 아닌가. 자넨 요즘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있잖나? 그거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야. 자넨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고나 있나? 그러다가는 자네의 영적 생활도 망가질지 몰라. 무엇보다도 자네, 요즘 기도를 통 안 하고 있잖나. 그 탓에 자네가 지금 스스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생각 좀 해보게.”

   젊은 사제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고백합니다.

   “기도를 못 하는 게 사실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르씨 사제는 그 이유를 차근차근히 따져볼 생각도 않고 다짜고짜 명령조로 다그칩니다.

   “그래도 자꾸 해야 하네. 들어보게. 내가 착각했다고는 생각지 않아. 내 물어볼 테니, 어디 대답 좀 해보게. 난 줄곧 소명에 관해서 생각해 왔다네. 우리는 모두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몸이야. 단지 그 방법만 다를 뿐이지. 어, 왜 그러나? 자네 지금 울고 있나?”

   카메라는 어느 틈에 벌써 젊은 사제를 비추고 있지만, 우리가 이 끄트머리 대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이한 일입니다. 이는 브레송의 또 다른 영화 〈무셰트〉(1967)에서 주인공인 불쌍한 소녀 무셰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브레송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런 방식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냥 어느 순간 문득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주 맑고 굵은 눈물방울들이 거짓말처럼 뚝뚝 흘러내려 얼굴을 적십니다.

   이렇듯 눈물을 보여주는 표현 양식의 독특함이 보는 이의 가슴을 자극하는 정도는 유별납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우는 방식으로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 속 여인들이 한결같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것과 함께 로베르 브레송 영화 속 인물들이 우는 방식이 매우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즈 야스지로는 눈물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로베르 브레송은 눈물의 물성(物性)을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동서양의 극과 극이라고 하면 될까요.

   사제는 또 독백합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몹시 친근하면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영혼의 움직임이었다. 주님께서 갑자기 나한테 은총을 내리시어 나를 애초의 선택된 자리에서 영원히 끌어내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또 내가 성스러운 종말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사실을 또르씨 사제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깨우쳐주신 것이다.


   젊은 사제는 손수건을 꺼내 거기에 대고 코를 풉니다.

   “어린아이 같구먼, 그래. 난 그런 줄은 몰랐네. 자넨 지금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야.”

   잠시 침묵, 그리고 개 짖는 소리.

   “주님께서 자네를 슬픔 속에 가두셨나 보이. 요사이 문제가 되고 있는 자네 이야기는 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네. 하지만 뭐, 상관없지. 사람들의 저 흔해 빠진 못 된 마음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백작 부인한테 그렇게까지 한 건 진짜 바보 같은 짓이었네. 세상에, 그런 연극을 다 하다니, 말야.”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겠는 젊은 사제.

   또르씨 사제가 다시 말합니다.

   “그 사진 목걸이 말이야.”

   “사진 목걸이요?”

   “자네, 참 바보 같군. 그걸 본 사람이 있다, 이 말일세.”

   젊은 사제, 누구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긴 누구야. 백작의 딸 썅딸 말이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체념’이라는 말을 한 건가? 죽은 자식에 대한 하나뿐인 기억을 불 속에 던져서 살라버리라는 뜻이었나? 마치 유태인들 이야기 같구먼, 그래. 구약성경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덧붙입니다.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위협해서는 안 되는 거네.”

   모름지기 대화란 쌍방이 눈높이를 같이해야 하는 법 아닙니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가르치려는 뜻을 굽히지 않는 한 서로를 진실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또르씨 사제가 다음과 같은 억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쩌면 속절없는 일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여자들이란 다 악마니까 처음부터 숫제 상종할 생각도 말게나.”

   하지만 젊은 사제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제 마음을 계속 열고 있을 겁니다. 아무한테도 문을 닫지 않을 거예요.”

   이 순간 둘이 나누는 대화는 차라리 검사가 피의자를 심문하는 광경을 방불케 합니다.

   당연히 또르씨 사제는 가만히 있지 않고 맞받아칩니다.

   “자네가 부인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시켰다는데, 맞는가?”

   “아니오. 저는 부인을 주님께로 인도하려고 했을 따름입니다.”

   그래도 또르씨 사제는 부인의 죽음에 젊은 사제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계속합니다.

   연이은 또르씨 사제의 추궁에 어지간히 지친 사제는 가까스로, 그러나 확신을 품고 대답합니다.

   “부인은 평화롭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또르씨 사제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다시 추궁하지만, 젊은 사제는 부인이 마지막으로 자신한테 보낸 편지의 내용에 대하여 애써 언급하지 않습니다.

   눈을 한 번 내리감았다가 뜬 다음 마침내 일어서는 사제.

   또르씨 사제는 거기다 대고 마지막으로 뒷단속을 합니다.

   “사람들이 자넬 어찌 생각하겠나?”

   사색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사람이 단순하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과 맞서서 이기기란, 어느 쪽의 견해가 옳고 그른지의 여부를 떠나서, 매우 어려운 법 아니겠습니까.

   사제는 피로합니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사제관으로 돌아온 젊은 사제는 오히려 이상한 평온을 느낍니다.

   물론 그 평온이 새로운 불행의 징후라는 예감이 무슨 저주인 양 사제한테 들러붙기는 하지만요. 평온과 불행은 종교적 고뇌에 빠진 영혼한테는 영원한 짝패의 운명 아닐까요.

   사제는 앞으로 계속 있을 고위성직자들과의 면담 리허설 같았던 또르씨 사제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었던 게 차라리 기뻤다고 독백합니다.

   또르씨 사제가 느닷없이 이 젊은 사제를 찾아온 것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 장면이 바로 앞 장면에 이어지는 상황인지, 아니면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서 벌어진 상황인지, 그 여부는 확실치 않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젊은 사제는 탁자 위에 놓인 포도주병을 실수로 떨어뜨리고 맙니다. 바닥에 흥건하게 번지는 포도주의 붉은색, 아니 검은색 액체. 어쩐지 섬뜩하지요.

   종교와 붉은 피를 연결하면 언제나 순교라는 희생의 정서가 촉발되는 것은 속절없는 일입니다. 그 모양을 보고 또르씨 사제가 딱하다는 듯이 내뱉습니다.

   “불쌍한 사제여!……” 그리고 이어 붙이지요. “자네한테 포도주는 독이라네!”

   젊은 사제가 말합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거, 죽음을 자초하는 일인데, 자넨 왜 모르나.”

   이 순간에도 젊은 사제의 독백은 어김없이 이어집니다.


   ‘내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져 왔다. 영혼의 어떤 움직임이 그에 맞서 싸워야 함을 내게 알려줬다.


   “자네를 탓하는 게 아니야. 자넬 술꾼으로 취급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네. 누구나 시골에 살면 약간은 알코올중독이 되는 법이지. 델방드도 그랬어. 이제 술은 끊게나. 자넨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아. 고기를 충분히 먹어서 힘과 용기를 얻어야 할 텐데, 자넨 점점 더 그 알량한 포도주에 의존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신까지 거역하게 될지도 몰라.”     

   ‘무심하게 그를 보았다. 그는 강하고 평온한 사람으로, 신의 진정한 봉사자였다. 그도 맞서서 싸웠다. 보이지 않는 길 양 편에 서서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지나친 상상은 해롭다네. 자넨 그래도 괜찮은 사제야.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욕보이려는 건 아니지만 말일세.”

   이때 젊은 사제가 얼른 또르씨 사제의 말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그런 말씀이라면 이제 그만두시지요.”

   또르씨 사제도 자신이 실언했음을 인정한 것인지, 금세 말꼬리를 거두어들입니다.

   “그래, 관두지.”

   그는 제 모자를 다시 집어 들고는 말을 잇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날마다 하게나. 하찮아 보이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일들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 법이라네. 그리고 기도에 힘쓰게나.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라고. 인류의 어머니 아니신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수 세기 전부터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예비해 두셨지. 영원한 천사들의 여왕 아니신가. 잊지 말도록 하게나.”

   “감사합니다. 제게 축복하여 주십시오.”

   이에 젊은 사제한테 두어 발짝 다가오는 또르씨 사제.

   “아니, 오늘은 자네가 해주게나.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인 또르씨 사제의 이마에 성호를 그어주는 젊은 사제의 손길.  *(다음 글로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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