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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29. 2024

P28. 우리가 뒤꿈치를 쳐들고 나서려면

  - 정끝별, 《와락》

P28. 우리가 뒤꿈치를 쳐들고 나서려면 – 정끝별, 《와락》(창비, 창비시선 295)


   여러분은

   시인의 말하는

   ‘벼락치듯 덮치는 잠’을

   자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너나없이

   여러 가지

   알 수 있는 이유로,

   또,

   그보다 더 많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어김없이,

   틀림없이

   고통스럽고

   피곤한

   불면의 시대임은

   부정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려면

   ‘벼락치듯 덮치는 잠’을

   가끔이라도

   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벼락치듯 덮치는 잠이 삶을 살게 하나니’라고요.

   그런 잠을 자고 나서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어쩌면

   시인처럼 이렇게

   가만히

   중얼거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부드러워라 두 입술이 불고 있는 아침이 기적’이라고요.

   그럼

   우리도

   시인처럼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또,

   그럼

   우리도

   시인처럼

   ‘높아지되 떨어지지 않고 미끄러지되 멈추지 않으며

   허위단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오면

   비로소

   ‘아직까지 누구도 아니었던 나는

   역시

   시인처럼

   ‘황금빛의 시인의 시간을

   ‘눈을 감고 기다’릴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예,

   이것이 바로

   ‘잘 익은 시에서 풀썩이는 숨소리가 들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숨소리가 들린다는 건

   예,

   살아 있다는 뜻일

   터이니까요.

   그렇게 살아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시인처럼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뒤꿈치를 높이 쳐들고 나서야 해요’라고요.

   결국 이거네요.

   ‘벼락치듯 덮치는 잠’을

   달게 자고 나면

   ‘뒤꿈치를 높이 쳐들고

   나설 수 있다는 거요.

   참

   간단하고

   단순하고

   명쾌한

   답이네요.

   이렇게 ‘와락

   덮쳐오는 깨달음이

   참 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시인은 정확히

   아는 겁니다.

   이렇게 나서라고

   우릴

   똥겨주고

   또,

   우리에게

   권해주는 시인의

   마음이

   참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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