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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4. 희고도 슬픈 기적의 여정

- 한강, 《흰》

by 김정수

B54. 희고도 슬픈 기적의 여정 / 《흰》 - 한강 소설, 문학동네

‘하얀’이 아닌 ‘흰’이어서 더욱 희고, 어쩌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색깔의 형용사―.

‘나’에서 ‘그녀’로,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흰’으로 이어지는 이 시적이고 동시에 산문적이며, 서정적이고 동시에 서사적이며, 정서적이고 동시에 철학적인 감흥과 사유, 그리고 그 서늘하면서도 따스한 흐름, 또는 여정―.

희고도 슬픈, 아니, 희도록 슬픈 여정―.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국면의 정서와 빛깔들로 가득 차 있는 ‘소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자랐다.

예, ‘그런’ 이야기 속에서 자랐기에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 ‘스물세 살 난 여자’의 마음을, 어쩌면 몸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한순간 처음으로 여자의 가슴이 화해진다.

그래요, 당신이기에.

그런 당신의 말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

예,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아니, 충만합니다.

소설을 시의 독법으로 읽기, 또는 시를 소설의 독법으로 읽기―.

시든 소설이든, 소설이든 시든, 어느 순간 아무 상관이 없어집니다.

이 ‘소설’에, 아니, ‘이런’ 소설에 왜 해설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한데요.

이것만으로 충만한데요.

당신처럼, 아니, 그 ‘스물세 살 난 여자’처럼 제 가슴도 ‘화해’지는데요.

이 마법 같고 기적 같은 ‘화한’ 느낌에서 딱 멈추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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