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이렇게 무섭다. 다섯 시에 눈이 떠진다. 알람도 없이. 어느 날 병원 일로 인해 큰 스트레스로 자면서도 분노했는지 저랬다.
그 와중에 창밖의 벚꽃 잎이 분홍 하게 이뻐 보이고, 노오란색? 의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나다. 나가서 봄을 느끼며 걸으면서 놀이터 모래를 걷는 까치를 보며 생각한다. 너 나에게 행운을 줄거니? 그렇게 나는 블로그에 글을 썼다. 거의 토로... 하다시피 올린 글에 사람들이 말을 걸었다.
‘같이 사업하는 분 중에 부부가 같이 간호 10년 하셨던 분들이 있는데 보면서 생각한 게 남을 돕는 사명감도 좋지만 내 인생이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여럿이 일하면 흥부와 놀부가 있기 마련인데 흥부만 하지는 마세요’
‘발언하고 요구하고 그래도 안될 때 퇴사해도 늦지 않아요 이웃님 도전 응원합니다’
‘11년 차 프로니까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해줄 수 있는 것 잘 구분해서 지금의 업무를 좋은 자리로 만들어 내시길 응원해요’
내가 감히 배울 수 없는 철학을 가진 분들 덕분에 글을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중환자실에서의 인생의 첫 빌런 ‘그녀’ 이후 스물아홉, 두 번째 빌런이 나타났다. 내 삶에 ‘무개념’이 나타났다.
중환자실에서 장기이식센터로 부서이동한 지 10일 차, 밤 11시 전화가 왔다.
무개념 : 너 차 있지~ 나 술 많이 마셨는데 집에 데려다줘라~
글양 : 아... 선생님 제가 씻고 자려고 누웠어요...
무개념 : 너~ 기회는 세 번 뿐이야~ 근데 오늘 기회를 놓쳤네~ 줄 잘서~ 무슨 말인지 알지?
무슨 말인지 통... 줄을 왜 서지...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는걸요?
‘그녀’, ‘무개념’ 이후에 인생의 세 번째 빌런이 또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약약강(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고)에 본인만 모르고 다 아는 사내불륜을 하는 그녀는 바로 ‘빙그레 X년(요즘애들 말로)‘
장기이식센터에서 업무분담에 대해 회의를 하는데 일이 벌어졌다. 그전에 간단히 설명을 하면 업무분담의 체계가 전혀 없었고 아래 친구들의 잦은 퇴사와 부서이동으로 모든 일이 맞선임에게 올라와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끼리는 업무분담의 필요성에 대해 서너 차례 이야기가 오갔고 모두 한 뜻으로 분담에 동의했다. 그렇게 회의 자리가 있었다.
빙그레 X여자 : 선생님 항상 저희를 위해 제일 많은 일을 하시죠.. 사실 나눠서 하는 게 맞죠...
선생님께서 일이 제일 많으시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했던 일을 하려니 무섭고... 막막해요...
글양 : 응 맞지... 무섭고 막막하지...
맞선임으로 4년 지낸 나는 후배들이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1년간은 본인의 업무 이외에 다른 일들을 맡기지 않았다. 온갖 일을 도맡아 한 내 탓일까? 그냥 일하기 싫은 후배들 탓일까? 업무분담을 방관하는 조직의 탓일까?
그렇게 나는 장기이식코디네이터의 옷을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