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각하는 나에게
지각이다
거의 이주일 째 지각을 한다. 적게는 2분, 많아봐야 10분인 지각이고, 야근이 많아 출근 시간에 별로 개의치 않는 회사 분위기지만 며칠 째 내리 지각을 하려니 눈치가 보인다. 출근 시간은 9시. 집에서 회사까지는 지하철로 딱 4 정거장.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도 지각, 8시에 화들짝 일어나 준비를 해도 지각이다. 지각도 습관이라는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지각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지각을 하는 사람들은 늘 지각을 한다. 9시 3분을 기점으로 늘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5분만 일찍 나와도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인데, 늘 마주친다. 어쩐지 나도 모르게 친근감까지 느껴진다.
우리는 늘 시간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지각(知覺)하며 살아간다. 여유로운 시간에 행복을 얻기도 하고, 지나치게 잉여로운 시간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바쁘고 쫓기는 일정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 수밖에 없음에 비참함을 느끼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시간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물리적이고 공학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존재로 우리 삶에 자리매김한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한없이 자비롭고, 누군가에게 시간은 한없이 박하다. 누군가는 시간의 흐름을 이치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시간의 흐름이 속박이며 자연의 폭주라 생각한다. 시간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살아가다가도 문득 내게 부딪힌 시간을 인식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람들에게 시간은 이렇게나 다르게 지각된다. '지각'이라는 것을 지각(知覺)하는 순간 마음은 불안하고, 걸음은 빨라진다. 시간의 여유를 지각하는 순간 마음은 평안해지고, 주변까지 돌아볼 여력이 생긴다.
나에겐 여러 개의 별명이 있지만, 가장 가슴 아픈 별명은 '좀머 씨'다. 언제나 바쁘게 종종 거릴 것 같은 사람. 시간에 쫓기듯 이 마을, 저 마을을 걷기만 하는 좀머 씨. 이십 대 초반의 난 늘 시간이 없었다. 초과 학점까지 꽉 채워 듣고도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봉사활동까지 했다. 이유는 없었다. 하나라도 멈추는 순간 내 삶이 추락할 것 같았고, 애써 찾은 꿈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것도 같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늘 미안했고, 미안한 맘에 사람들과 멀어졌다. 처음엔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넌 바쁘겠지?"라고 말하며 도리어 미안해한다.
지난 여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저혈압 쇼크가 온 뒤 모든 것을 멈추고 건강과 여유로운 삶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도 같았고, 일에 관련된 부탁을 거절하면 인심을 잃을 것도 같았는데 신기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자신감을 얻어 방황의 시간을 충분히 즐겼고, 늘 바쁜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준 소중한 사람들도 실컷 만났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줄 수 있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었고, 날 따듯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은 어김없이 내 시간에도 적용되었다. 여유로운 시간을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이십 대 초반을 엄습했던 불안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스스로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를 위해 살기로 그렇게 다짐했건만 또다시 '나'의 마음보다 '타인'의 시선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이 내 삶을 지배해가고 있었다. 그 결과 야근하고 돌아와 괜한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졸면서 책을 읽다가 결국 늦잠을 자고, 지각을 하게 되었다. '지각이다!' 처음엔 혼비백산 온몸에 땀이 나고 신경까지 곤두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각하는 순간의 긴장감은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져 버렸다.
마음은 급하고, 욕심은 많아서 나의 시간은 늘 바쁘고, 조급하고, 불안했는데 막상 '출근 시간'이라는 규칙을 어기는 일에는 익숙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듯 바쁘게 움직이는 커다란 삶의 태엽과 고장 난 것처럼 주춤거리는 일상이라는 작은 태엽이 엇박자를 내며 삐그덕 삐그덕 나의 시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습관처럼 인생을 채찍질하는 일이나, 습관처럼 지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다르지 않다. 매일 지각하는 나에게 속삭인다. 삶의 태엽을 조금 천천히 돌려도 된다고. 그렇게 되면 일상의 태엽도 리듬을 맞추기 쉬워질 거라고.
난 삶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나의 시간을 이루는 시계 태엽들이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시침과 초침을 돌릴 수 있도록 나의 시간들을 다시 지각(知覺) 해 볼 필요가 있다. 난 시간에 쫓기는 어른이 아니라, 시간을 다룰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로 결심한 세 달 전을 다시 기억해본다. 외부의 힘이 없이 혼자 관성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종종 자신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이를테면 평생 안 하던 지각?)들을 통해 나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오늘 하루'는 사실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하기 위한 글모음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속도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의 속도를 내가 정해 가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 후 적어가는 일기와도 같다. 관성의 법칙 때문에 다시 이전의 조급한 나로 돌아간 것 같아 요 며칠 참 우울했다. 초, 중, 고 12년 개근상을 받았고, 평생 지각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는데 지각하는 것이 습관화된 요즘 난 다시 나의 시간을 돌아본다. 조금씩 삶의 균형을 맞춰가야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다시 좀머 씨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이전에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 본다. 오직 '나'에게 집중하던 그 짧은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거절의 이유 : https://brunch.co.kr/@knockknoc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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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글을 써놓고, 월요일 출근 길에 글을 올린다. 주말 동안 글을 쓰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인지 오랜만에 일찍 출근했다. 따듯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출근하는 이 순간이 참 좋아진다. 당신의 시간들도 이번 한 주 모두 안녕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