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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쓰는 법] 4. 특별한 경험, 매력적인 관점

by 엄지혜 Jan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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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 매력적인 관점이 있는가

 - 이은정 아몬드 출판사 대표

"저자를 찾을 때, 두 가지를 고려합니다. 첫째, 전문가인가. 둘째, 당사자인가. 둘 모두를 충족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 또는 메시지가 독특하고 분명한 저자라면 더할 나위 없죠. 아몬드 출판사는 심리학, 정신의학 등 인문 심리 분야의 책을 주로 펴냅니다. 마케팅을 충분히 할 만한 자본력이 없는 1인 출판사로 살아남으려면 독자를 무한정 확장하는 것보다는 ‘좁더라도 확실한’ 타깃을 염두에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심리 전문 출판사’ 자체로 브랜딩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다만 분야는 전문적이되 형식은 대중적이길 바랐다. 아몬드의 저자들은 대체로 심리학자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류학자 같은 전문가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어렵지 않게’ 글을 써준다면 필요한 독자들이 알아봐 주시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심리 분야 책을 만들다 보니, ‘정신건강’이라는 주제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조울증), 조현병 등 정신질환/장애를 겪는 분들이 자신의 병과 싸우는 것뿐 아니라 사회의 편견이나 낙인과도 싸워야 한다는, 이중의 투쟁 중이라는 걸 목격하게 됐죠. 전문가들이 근거를 기반으로 편견을 깨뜨려주는 이야기뿐 아니라 정신질환/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어딘가 반드시 존재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도 더 많이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은정 아몬드 대표가 논픽션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는 것은 '경험'과 '관점'이다. "남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했느냐, 그 경험을 흔하디 흔한 결론으로 귀결 짓지 않을 매력적인 관점을 지녔느냐." 경험 자체가 독특하면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에 힘이 생긴다.





"창업 초기에 투고가 많지 않았지만 최근엔 조금 늘어난 편입니다. 막상 투고 수가 늘어도, 출간 계약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습니다. 지난 3년간 17권의 책을 펴냈는데, 투고 원고가 출간으로 이어진 경우는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한 권뿐입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 여러 면을 고려하는데 ‘이 저자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를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습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를 예로 들면, 책을 쓴 김초롱 작가의 투고 메일을 처음 열었을 때 ‘이 중요한 이야기는 반드시 책이라는 매체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습니다."

김초롱 작가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로서 당사자성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수많은 당사자가 존재하지만 책을 쓰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드문 데다, 이미 김초롱 작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많은 사람에게 화제를 모은 경험이 있고, 그 글을 유력 일간지에 연재해본 저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분야도 중요합니다. 저희는 심리 분야의 논픽션을 내는 출판사이기 때문에 시집이나 에세이, 소설은 아무리 좋은 원고라도 출간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도 일반 에세이가 아닌, 사회적 재난 이후 개인이 겪게 되는 트라우마의 형태와 양상을 증언하고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등 교양서로서 아몬드의 출간 방향과 맥락이 맞닿아 있었기에 출간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출판계에서는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읽는 사람은 줄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느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목적이 '책 출간'인 경우가 대다수다.

"거칠게 분석하면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 뉴미디어의 발달과 활황이 그 요인 중 하나일 텐데요. 예전에는 신문, 잡지에 ‘작가’ 또는 ‘전문가’가 실은 글을 모아 책으로 엮는 과정이 일반적이었기에, 저자가 되는 과정에 일종의 진입장벽(한정된 지면에 글을 쓸 기회를 얻을 정도로 이름난 혹은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이어야 한다)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자기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글(또는 영상)들을 ‘연재’해 모아갈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리게 됐어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누구나 ‘저자’로 데뷔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거죠."

다양한 이야기와 견해들이 책으로 엮이는 일, 지식(또는 이야기) 생산 과정이 두루 평등해지는 상황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주류를 거스르거나 그 흐름에서 뻗어나간 잔류 같은, 콘텐츠의 다양성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양성’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복붙'한 듯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생산되거나, 근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지식이 새로움으로 둔갑하는 일들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 예비 저자를 위한 당부라기보다는, 책을 골라 발행해야 하는 제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지침일 것 같습니다."



�이은정 아몬드 출판사 대표

2002년부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흐름출판, 김영사, 생각연구소 등을 거쳐 푸른숲 편집장을 지냈다. 이후 푸른숲에서 심심을 론칭해 심리교양서를 만들며 이 분야의 매력에 빠졌고, 2021년 인문 심리 전문 출판사 아몬드를 열었다. 만든 책으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 애덤 그랜트의 『기브앤테이크』를 비롯해 『우울할 땐 뇌 과학』 ,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도서출판 아몬드(@almond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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