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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Jan 20. 2024

잠의 요정은 내게 오지 않아

불면이라는 잔혹동화

그 집은 고(孤, 苦)로 가득 찼다. 


고립, 고독, 고단, 고민, 고통이 들어선 집에서 우울은 표정을 바꿔갔다. 

우울증 초반에 나는 잔뜩 먹고 잔뜩 잤다. 그리고 잔뜩 살이 쪘다. 몸은 지방으로 잔뜩. 마음은 외로움으로 잔뜩. 하지만 우울이 강해지면서 힘을 빼앗아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빼앗아 갔다. 우울은 내게서 잠을, 음식을 빼앗아갔다. 나는 먹을 힘조차 잘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일본인 전남편은 혼자여도 괜찮고 편한 사람이었다. 주말에는 아침에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보러 가거나 파칭코를 하러 가서 저녁에 들어왔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지 않았고 편하지 않았다. 외로움에 나는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보니 10kg 넘게 늘었다. 전남편은 나에게 살을 빼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멀어졌다. 내가 먼저 다가가도 그는 등을 돌렸다. 그는 나를 밀어냈다그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할 때의 좌절감과 망가진 스스로를 향한 모멸감에 나는 무너졌고 그 감정들과 마주하기보다는 피하고 싶었다.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가정집들은 작고 좁다.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작은 방이 내 방이 되었다. 공간 활용을 위해 싱글보다 작은 세미 싱글 사이즈의 로프트 침대를 샀다. 침대는 높았고 맞닿은 천장과 나의 간격은 좁았다. 

높지만 좁은 틈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 침대로 불면이 찾아왔다. 눈을 감아도 숨소리에 집중해도 좋은 향을 맡아도 소용없었다. 새벽이 올 때까지 뒤척였다. 


안데르센의 동화 “잠의 요정”이 생각났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잠의 요정착한 아이의 머리맡에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펼쳐 환상을 보여주고 나쁜 아이의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우산을 펼쳐 꿈을 꿔도 기억하지 못하고 푹 자게 만든다. 잠의 요정은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좋은 꿈을 꾸지도 푹 자지도 못했다. 

나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못했나 보다. 요정도 오는 걸 망설인 걸 보니.


내게 환상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잠드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는 사람들에게서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동료를 앗아갔다.  

혼자만의 방에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나에게 말을 걸던 공기가 다시 찾아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거봐, 여기 너 말고 아무도 없다니까.


그 공기가 찾아온 후 나는 못 자고 못 먹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고 10kg 넘게 빠졌다. 외로움과 우울이 찌운 살을 불안함과 공포가 뺐다.


7월 16일 나와 그의 결혼기념일.

그는 우리를 위한 꽃다발을, 나는 나를 위한 이혼을 꺼냈다. 


우울은 마침내 내게 ‘사랑’까지 빼앗아갔다. 


이혼을 꺼낸 그날밤 그 좁고 높은 침대에 누워 오지 않을 잠의 요정에게 기도했다. 

잠 못 이루는 어른들이 잠의 요정에게 기도했던 것처럼. 


 ‘상냥하고 작은 나의 잠의 요정님, 아무리 애써도 잠들 수가 없어요. 

밤새 눈을 감고 있어도 지나온 모든 일들이 눈에 보여요.

작고 추한 마물(魔物)의 모습을 하고 제 머리맡에 앉아 뜨거운 물을 부어요. 

부디 제 곁으로 오셔서 그놈들을 내쫓아 주세요. 푹 잘 수 있도록.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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