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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May 16. 2020

제자들이 기억하는 나의 외할아버지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외할아버지는 소도시 국민학교 교사였다. 그는 내가 아는 최초의 선생님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정년퇴직을 하셨으니, 벌써 30년도 더 전에 교직을 떠나셨다.


외할아버지가 어떤 선생님이셨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몇몇 제자들이 외할아버지를 찾아오고 있으며,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남편과 함께 찾아오는 제자도 있다고 하셨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외할아버지가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셨고, 제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중후한 인상에 건강하시던 외할아버지는 세월 앞에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내 대학 졸업식에도 오시고 외증손녀 100일 잔치에도 지팡이를 짚고서 오셨었는데, 하필 4년 전에 고관절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으셨다. 워낙 고령이시다 보니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보행은 불가능해졌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누워 지내게 되셨다.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잃게 된 외할아버지는 4년여의 기간을 병상에서 보냈다. 가까이 사는 가족들이 때마다 찾아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확산되는 바람에 보호자를 비롯해 모든 외부인의 방문이 몇 달째 차단되었다. 나도 설 연휴 뒤로는 외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그 사이 외할아버지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지셨다. 지난주 응급실로 옮겨지셨고, 외할아버지는 올해 스승의 날을 4일 앞두고 98세 나이로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도 제자들은 외할아버지를 방문하였나 보다. 생전에 외할아버지를 만났던 제자들은 이제 조문객이 되어 외할아버지를 찾았다. 외할아버지의 연세만큼이나 그분들도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장례식장 입구 한편에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화환을 바라보는데 내 마음이 다 슬프고 애잔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선생님으로서는 어떤 분이셨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제자분들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제자이시면서 또한 안성지역에서 선생님으로 퇴직하신 한 어른이 장지까지 동행했다. 내 소개와 인사를 정중하게 드리고 "외할아버지는 어떤 선생님이셨나요?"라고 여쭤봤다. 86세이신 이 제자분은 해방 직후 국민학교 5 ~ 6학년 때 2년간 외할아버지에게 배우셨다고 하셨다. 당시 중학교를 가기 위해선 시험을 쳐야 했는데, 선생님이 방과 끝나고도 과외로 늦게까지 가르쳐 주셨다면서 "선생님은 자상하고 열정적인 분이셨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매년 외할아버지를 찾아오셨다는 제자분의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를 드렸다. 나이로는 어머니보다 몇 년 위로만 알고 전화를 드렸는데, 또래보다 국민학교를 늦게 들어가다 보니 실제 나이는 80세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셔서 외갓집인 안성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세 번 담임을 맡으셨는데,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잘 안 나타나니 애처로워 자신을 잘 대해주셨다고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서울로 갔지만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 다시 안성으로 돌아가겠다고 아버지께 간청을 여러 번 했는데, 이때 외할아버지가 '잘 참고 견디라.' '적응 잘하라.'며 편지를 5통이나 보낸 사실도 알려주셨다.


이밖에도 시골에서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고 외갓집에서 수학여행도 안 보내줄 때 외할아버지가 수학여행 보내야 한다고 편지도 써 보내 설득하고, 수학여행비도 사비로 주셨다고 했다. 나중에 잘 되셔서 그 돈을 되돌려드렸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선생님은 진실한 분이셨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외할아버지의 퇴임식에도 참석하셨고, 40년 이상 아버지처럼 생각해 매년 방문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외갓집 식구라든지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모르시는 게 없으셨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외할아버지의 인간미도 느끼고 내 마음도 충만해졌다. 외할아버지는 선생님으로서 제자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사셨다고 생각한다.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을 알게 되어 다행이고, 친지들과도 함께 공유하면서 외할아버지를 추억하려 한다.


이제 외할아버지 생전의 스승의 날은 모두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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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그런데 스승의 날이 적십자에서 유래되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까?



<사진 출처: 대한적십자사 블로그>


<스승의 날 유래>

스승의 날은 충남 강경지역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1958년부터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는 봉사활동을 해 오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1963년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에서 9월 21일을 충청남도 내 '은사의 날'로 정해 일제히 사은 행사를 가지기로 결의하였고, 이를 계기로 삼아 1963년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개최된 제12차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는 스승을 위한 '은사의 날'을 5월 24일로 정하여 기념할 것을 결정하였다.

1964년 5월 개최된 제13차 협의회에서는 '은사의 날'을 '스승의 날'로 고쳐 부르기로 하고 날짜도 5월 26일로 결의하였다. 또한 '스승의 날' 제정취지문을 작성 발표함으로써 이때부터 제1회 스승의 날이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에 의해 기념되기 시작하였다.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하여 행사를 실시하여 왔다. 1973년 스승의 날이 사은행사 규제로 폐지되었으나, 1982년 공경하는 풍토 조성을 위하여 다시 부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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