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23
(난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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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옛날,
비범한 전설이 마치 평범한 일상처럼 일어나던 시절에
‘페레’라는 젊은 용사가 살고 있었어요.
그는 강한 용기와 끈질긴 인내를 지녔고,
곧 신부가 될 아름다운 여인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했지만,
몇몇 요술사들은 그를 시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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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요술사는 페레의 신부를 몰래 좋아했어요.
그래서 페레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르러 떠난 사이,
그녀에게 청혼을 했어요.
하지만 신부는 단호히 거절했어요.
화가 난 요술사는 신부를 꽃으로 만들어,
깊고 거대한 숲 속에 숨겨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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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돌아온 페레는 사라진 신부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맸어요.
그는 며칠이고 먹지도, 잠도 자지 못한 채 신부를 찾아다녔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몸은 점점 약해졌지만, 신부를 향한 마음만은 더 간절해졌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람의 신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신부가 있는 숲을 알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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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넓은 숲에서 수많은 꽃들 사이에서
신부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도 페레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숲의 구석구석을 헤매며 꽃이 된 신부를 찾았어요.
그러나 끝내 그는 신부를 만나지 못한 채
어느 골짜기에서 쓰러지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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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숲의 신이,
페레의 뜨겁고 간절한 사랑에 감동했어요.
숲의 신은 그를 나비로 변하게 해주었어요.
나비가 된 페레는 마침내 꽃이 된 신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어요.
그는 날갯짓을 하며 향기를 따라 힘차게 날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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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비가 된 페레는
숲 속에서 꽃이 된 신부를 찾아냈어요.
신부는 날아온 나비를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페레 역시 잃었던 신부를 되찾은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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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서로의 눈물이 마법을 풀어 두 사람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거예요.
젊은 용사 페레와 그의 신부는 기쁨에 겨워 서로를 꼭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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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눈물을 흘렸던 자리에는
나비 모양을 닮은 꽃이 피어났어요.
사람들은 그 꽃을
행복을 가져다주는 ‘팔레놉시스’라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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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팔레놉시스’라는 난초를 바탕으로 지어낸 창작 이야기예요.
꽃 모양이 나비를 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