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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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 뒤편,
아담한 빵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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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소년이
'이담에 커서 빵집 아저씨가 될 거야' 하고 품었던 꿈이,
꼭 삼십 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개업 첫날,
주인 송건우의 마음은 자연스레 삼십 년 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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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늘 배고픈 시절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건우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도시락을 싸 간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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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건우는 먼 길을 돌아서라도 꼭 마을 시장을 거쳐 집으로 갔다.
시장 어귀에서 붕어빵 굽는 노점을 보기 위해서였다.
검게 달궈진 쇠판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붕어빵,
풍성하게 번져 오는 구수한 냄새.
그것이 어린 건우에겐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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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아저씨는 종종 빈손으로 서성이는 아이들에게
갓 구운 빵을 몇 개씩 나누어 주곤 했다.
그러나 건우는 단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작은 자존심 하나가
구걸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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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배고팠던 날이었다.
시장 어귀에 앉아 붕어빵을 바라보던 건우에게,
아저씨가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 하나를 내밀었다.
건우는 당장 받아먹고 싶었지만,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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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부탁인데 이거 한번 먹어줄래?
아저씨가 새로 만든 건데,
맛이 어떤가 좀 궁금해서...”
그 순간 건우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모르는 아이의 자존심까지 생각해 준,
아저씨의 따뜻한 배려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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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건우가 배를 곯으며 점심을 건너뛴 적은 없었다.
아저씨의 고마운 '부탁' 덕분에,
건우는 매일 새로 만든 붕어빵을 맛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건우가 언젠가 빵집을 열겠다고 꿈꾸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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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초등학교 담장 너머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정겨운 소리였다.
그때 건우의 눈에,
학교 뒷문 근처에 낯익은 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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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개업 준비를 하며 눈에 띈 아이였다.
점심시간이면 홀로 뒷문 근처에 앉아 있다가,
종이 치면 다시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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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는 서둘러 갓 구운 빵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학교 뒷문으로 가서 학생을 불렀다.
“학생! 부탁인데,
이거 아저씨가 새로 만든 빵이거든.
한번 맛 좀 봐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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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하던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의 작은 손에 쥐어진
따끈한 빵 하나.
삼십 년 전의 건우처럼,
아이는 맛있게 먹으며 빵맛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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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우는,
삼십 년 전 붕어빵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 앞에서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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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결식아동 돕기 공연을 위해서 만들었던 이야기.
다시 다듬어 본다.
빵맛...
내 글과 이야기에는 어떤 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