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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28. 2022

나의 사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풍경만 생각해도 마음이 설렐 만큼 그 계절의 싸늘한 바람이 좋다. 매번 겨울이면 맨 얼굴로 차가운 바람을 느끼다 보면 얼굴이 새빨갛게 트곤 한다. 새빨갛게 튼 얼굴은 푸석거리고 물만 닿아도 따갑지만 매년 바보같이 찬바람을 고스란히 피부로 느끼고 싶은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바람맞기를 즐겼다. 얼굴까지 꽁꽁 감싸주는 엄마의 손길이 멀어진다 치면 시원한 바람결을 또다시 찾았다. 겨울에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겨울바다. 겨울이 주는 서늘함과 바다가 주는 서늘함은 언제나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집안에서 지내는 나로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시원함이었다. 그래서 겨울에 가는 바다를 더욱 좋아했다. 차갑다 못해 시린 공기와 철썩거리는 파도가 들려주는 시원한 소리가 몸과 마음까지 뻥하고 뚫어주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막상 기다리는 계절은 겨울이 지난 후 돌아오는 찬란한 봄이었다. 분홍빛의 꽃잎이 여기저기 휘날리고 사방에 봄을 알리는 사람들의 화사함, 온화함 속에서 사람들도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웃음을 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계절이다. 봄이 찾아오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생각보다 제각기지만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아 보였다. 분홍 물결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싹이 돋아나는 푸르른 계절의 봄은 눈부신 추운 겨울의 흔적을 덮어줬다. 살아가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리도록 날카로운 감정에 상처 입고, 따뜻한 온기에 치유받기를 반복하는 일상. 그해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다시 찾아왔다. 


 나에게 봄은 항상 새로움이 가득했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다.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나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작 본인에게는 그다지도 달갑지 않은 축복일 텐데 말이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어”

“이 계절이 마지막이야”


생존과 죽음이 공존하는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마지막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지만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새싹이 피어오르는 순간에도 탄생보다는 죽음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는 게 슬프다. 즐거움이 없을 것 같은 환자인 우리에게도 봄은 즐거움을 주는 계절이다. 봄의 싱그러움을 담은 세상은 새롭고, 아름다웠다. 어여뻤던 봄꽃들이 볼품없이 빠르게 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참 짧구나.’하는 마음이 들어 한편으로는 더 쓸쓸한 기분이 든다.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품은 봄은 얄궂게도 모든 의미를 품고도 사람을 설레게 하기 충분한 계절이었다. 


 이번이 내가 지내는 마지막 봄이라면 나는 어떤 봄을 보낼까?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의 숱한 지난 봄날을 생각해 보았다. 예쁜 색으로 세상이 물들기를 기다렸다 가장 예쁜 날이 오면 엄마, 아빠와 함께 하루 종일 드라이브를 하면서 꽃구경을 떠난다. 항상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온전히 담은 그런 봄날을 만끽한다. 꽃이 핀 들판에 꽃순이와 산책을 한다. 걷기 싫어하는 꽃순이는 걸을 수 없는 나와 엄마 혹은 아빠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언제나 나란히 몸을 실었다. 가장 예뻤던 날의 봄은 내가 지내는 많은 날의 봄의 일상이다. 내가 겪는 계절은 언제나 그랬다. 세상은 항상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집안에서 지내다가 가장 예쁜 날, 가장 날이 좋은 날, 가장 눈부신 날, 그런 날에 외출해서 계절을 눈에 담는 나에게는 언제나 그 계절은 아름답기만 하고 기억에 남는다. 하루도 아름답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찬란한 날들 속에서도 힘든 계절은 조용히 찾아온다. 추적추적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 습도가 높아지는 계절이 나에게 왔다.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다. 여름철 옷장 안에 숨어 있는 물먹는 하마처럼 내가 물먹은 하마가 되어 공기 중에 떠도는 습기를 온몸으로 머금은 여름날의 나날. 비릿한 비 내음은 병원에서 한 번쯤 맡아본 적 있는 기분 나쁜 냄새 같아서 가끔은 속이 역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잠결에 헛구역질을 하며 한달음에 화장실로 향한다.

 여름날은 다른 계절보다 훨씬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친다. 하루 종일 뒤척거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비가 온다는 소식과 함께 일기예보보다 정확한 근육통. 노란색 진통제는 조금이나마 덜 아플 때 먹어서 아픔을 잠재우고, 하얀색 진통제는 빠르게 나를 재워 아픔이라는 감각에서 멀어지게 해 줬다. 예전엔 견디지 못할 만큼 아플 때 약을 먹자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덜 아프고 싶어진 마음 커져서일까? 어차피 먹을 거라면 더 아프기 전에 미리 먹자, 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여름은 힘겨운 계절이다. 


 나에겐 여름날에 대한 징크스가 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가 찾아오면 더욱 달갑지 않았다. 사람이 언제 다치는지 모른다고는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사고와 다치는 시기를 돌이켜보면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날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치기라도 한다면 하얗고 무거운 깁스를 여름이 가는 두 달 내내 하고 있던 시간이 많았다. 누워만 있으면 침대에 항상 닿아 있는 등이 너무 뜨거워서 얼음 팩을 끼고 자거나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이 항시 작동해서 집안의 공기는 여름이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시원했다. 비록 에어컨이 가져다주는 시원함은 월 말에 무시무시한 금액이 되어 고지서로 되돌아온다. 뜨겁거나 춥거나, 이상한 온도차가 공존하는 나의 여름. 

다행히도 아프지 않은 여름날도 있다. 해가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 외출을 하는 일이 있었다. 아직 봄이 사라지지도 않았지만 뭐가 그리 급한지 여름은 벌써 시작된 듯했다. 초여름을 알리는 초록물결 아래는 기분 좋은 시원함이 있고, 그늘 너머 햇살은 데일 듯 뜨거운 그런 날이었다. 입에서 숨을 쉬어도 내 온도가 뜨거운 입김이 되어 돌아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그렇게도 덥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채 두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어지러움을 느껴야 했다. 이토록 작은 온도 차이에도 힘겨워하다니. 나는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한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일하시는 분도,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불 옆에서 일하시는 분들, 천진하게 더위도 모르게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는데 별로 덥지도 않은 날씨에 이렇게 힘들어해도 될까 싶었다. 

뭐랄까. 이 정도도 힘들어한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더위에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얼굴을 타고 또릉 떨어지는 땀방울이 낯설었다. 집안에서는 땀을 흘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햇살 아래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나는 참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여름,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그런 날씨. 

앞으로 다가오는 여름의 날씨를 준비하게 하는 단계 그쯤. 시원한 바람이 만들어주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 사람과 어울리는 조금은 힘든 더위 속에서 보내는 여름날이 싫지만은 않다. 온도가 언제 올라갔냐 싶을 정도로 소리 없이 찾아온 여름이 해마다 더 더워진다는 뉴스 단골 멘트처럼 나도 모르게 매년 조금씩 사람들 틈바구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차례 비가 내리는 밤이 지나고 나면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는 바람결이 느껴지는 날이 온다. 향긋한 봄이랑은 또 다른 선선함을 가진 가을이 찾아왔나 보다. 차를 타고 나가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초록빛 대신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결에 고개를 흔드는 황금빛 벼들이 알맞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년이 생각보다 짧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너무 예쁘지?”

엄마는 가을 들판을 보면 늘 나에게 똑같이 물어왔다. 

“글쎄”


나에게는 그다지 특별하게 아름답거나 예뻐 보이지 않는 들녘이었지만 자연이 만든 황금빛 물결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엄마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던 이모도 젊을 적에는 이런 풍경에 감흥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새 나이를 먹은 이모의 입에서도 엄마와 비슷한 말이 나왔다.


“언니가 말했던 예쁘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어.”


엄마는 나에게도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먹으면 지금 보이는 풍경이 예뻐 보이는 날이 올 거라며 덧붙였다.


 겨울이 가고 딱딱했던 땅 위에 찰랑이는 물결이 일렁이고, 그 위에 거친 농부의 손길을 따라 심어지는 모내기들. 고작 손 크기만 했던 푸른 모가 푸르게 자라기 시작할 때쯤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태풍까지 무사히 보내고 나면 드디어 제 할 일이 끝난 것처럼 황금빛으로 물들어 수확을 기다린다. 사람으로 친다면 성공적인 황금빛 인생이지 않을까. 

제법 괜찮았던 농부가 심어준 덕분에 괜찮았던 논에서 자랄 수 있던 유년기, 뜨거운 태양을 견디니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 친구까지 겪는 다사다난했던 청소년기, 금빛 찬란한 중년기까지 잘 보내고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완벽한 인생사. 마치 사람의 일생 같았다. 

마냥 쉽게 자라기만 했을 법한 모라지만 생각해보면 해충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병 없이 성장하기까지 순탄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에서 벼가 되기 위해 내려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도 없다. 타들어가는 태양 대신 그늘 아래 자리 잡는 벼는 수확이라는 끝맺음 대신 병듦의 최후를 맞이했다. 사람 사는 것처럼 성장을 위한 힘든 과정이 없다면 끝을 바라볼 수 없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거센 바람까지 야속한 자연재해를 견디면서 수확까지 되는 기쁨이란 견뎌낸 자의 특권이었다. 엄마는 가을이 찾아오면 맛있는 것들이 지천에 깔렸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 걔네는 힘들게 컸는데 결국 최종은 사람의 입이라든지 동물이 먹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곡식이나 열매처럼 사람의 종착점도 결국 한 사람으로 자신의 성공의 위한 길을 걷다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새롭게 생겨나는 가족에게 자신의 삶의 일부를 내어준다. 가을을 꾸며주는 존재였을 때는 제법 괜찮았던 끝맺음이 나라고 생각하니 와닿지가 않았다. 

그렇게 되지도 않았는데 생각만으로도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힘들게 쌓았던 나의 청춘, 나의 시간의 끝맺음이 결국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내 삶을 공유하고 끝난다면 너무 아쉽게 않은가. 나의 삶이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할 때 사람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최후가 되는 것일까? 우리 부모님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언제고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네가 어릴 적에 많이 아플 때 큰삼촌은 널 버리라고 했었어.”


그때의 삼촌은 얼마 보지 못했던 조카보단 한평생 동생으로 지내온 엄마의 삶이 더 귀했으니깐. 매일같이 힘들어하고 우는 동생의 모습이 싫으셨던 것이다. 온전히 나의 삶에 완벽한 끝맺음을 위해서라면 방해물이 없어야 된다. 적어도 내 삶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가족이 아프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걸림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날 이후 큰삼촌을 한동안 멀리했다고 한다. 엄마는 당신의 삶 일부가 되어버린 나를 떳떳하게 책임지기 위해 삶의 일부가 아닌 더 많은 부분을 내줘야 했다. 엄마의 젊음은 나로 인해 시들어 갔다. 아빠의 시간 또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돈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덧없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여전히 자식들로 인해 행복한 중년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곡식과 열매의 숙명은 누군가에 의해 먹히는 것. 새싹이 돋고, 푸른 잎사귀가 돋아나고 마침내 오색빛깔로 옷을 갈아입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산들의 나무.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을 보내면 몸을 감싸던 잎사귀들이 하나둘 바닥에 쌓여간다. 휘날리는 눈송이가 멋진 겨울옷을 만들어주면 마침내 그가 할 일은 모두 끝이 난다. 그런 1년의 삶이 산속의 나무들의 숙명. 

그렇다면 사람의 숙명은 무엇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숙명은 무엇일까? 

그 자리에 서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끝마치는 곡식처럼, 나무처럼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나의 사계에는 언제나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떳떳할 수 있는 1년을 보내려 한다. 나무의 나이테가 쌓여가듯 1년, 2년, 3년…, 죽음이 오기 전까지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 자신의 삶을 내준 부모님의 삶이 아깝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나의 사계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나를 위해 살아온 부모님의 인생이 살아 숨 쉬고, 1년에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것들이,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내가 나아가야 할 수많은 길 위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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