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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Jun 01. 2024

'순발력 0, 지구력 100'으로 살아가는 법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 순발력 0, 지구력 100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정상에 오르니 초여름을 잊을 만큼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그래, 이 맛에 등산하는 거지.' 오랜만에 맛보는 짜릿한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소위말하는 운동치다. 순발력 제로! 다행히 공평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순발력을 가져가시고 지구력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니까 운동치지만 잘하는 운동이 있다. 바로 등산과 빠르게 걷기, 요가. 이 운동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와 비교되지 않고, 내 체력에 맞춰 성실하게 꾸준히 하면 중간은 간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순발력은 없고 오로지 지구력만 있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



# 잊었던 나의 취미, 등산


 20대 때는 자주 등산을 다녔다. 한 번은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어떤 아저씨가 물었다.

"아가씨, 직업이 뭐예요? 혹시 운동 관련일 해요? 산을 너무 잘 타네."

누군가에게 운동으로 잘한다고 칭찬을 받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등산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 이후로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매주 등산을 했다. 방학에는 일주일 내내 등산을 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등산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아이를 기르고 직장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 등산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났다. 안타까운 것은 그만큼 나도 빠르게 늙어갔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미혼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만족스러울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찾아왔다.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 할 인생의 타이밍이 온 것이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등산이란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 내가 등산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등산을 사랑하는 이유는 첫째, 건강 자산을 무료로 지켜준다.

 우리 사회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70대 이후의 삶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 자산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등산은 건강 자산을 심지어 무료로 지켜준다.

 둘째, 성취감을 느낄 있다. 산을 오르는 일은 평지를 걷는 것과는 다른 고통이 있다. 숨이 차고, 그만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발아래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은 나에게 깊은 성취감을 준다. '해냈다는 그러니 다른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덤이다.

 셋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면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만 들린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요즘 왜 속상한지, 원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찬찬히 돌아보게 된다. 그 고요한 사색의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 잘못된 길은 없다.


 오늘 등산로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한 길은 내가 다녀온 적이 있었고, 한 길은 새로운 길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처음 가보는 길은 낙엽이 잔뜩 쌓여있는 오솔길이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등산로 정비를 위해 기존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낭패였다. 할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원래 알고 있던 다른 길로 들어섰다.

 괜히 모르는 길을 가서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 후에 막국수를 먹으로 식당에 들렀다. 전에도 종종 들른 적이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맛이 달랐다.

"이 집이 이렇게 맛이 있었나?" 남편이 말했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실수로 들어섰던 등산로 덕분에 운동량이 많아졌으니 밥이 꿀맛일 수밖에... 게다가 건강자산도 더 쌓았으니 오히려 좋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처음엔 불운으로 보였던 것이 나중에 전화위복이 되는 일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그러니 인생 길도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

 그러니 순발력 제로, 오로지 진득한 지구력만 가진 내가 성실하고 묵묵히 살아낸 인생이 더 빛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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