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섭 Nov 27. 2024

돌아올 수 없는 강

술 이미 후회해도 늦는다.

"30대 여자 집에서 CPR 이요"

죽음은 언제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응급실로 CPR 전화가 오면 모든 의료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쁘게 움직인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물품들을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심폐소생구역에 문을 열고 여러 명의 의료진이 후다닥 들어와서 준비를 한다. 제세동기, 에피네프린, 기관 내 삽관 물품, 중심정맥관 삽입 물품, 정맥 투약로 확보 물품, 산소 공급 물품, 심폐소생술 물품, 여러 검사 물품까지. 우리는 이 모든 걸 1-2분 안에 준비를 끝마친다.


 몇 분후  "삐용삐용" 소리가 응급실 문을 뚫고 맹렬하게 달려온다. 살리고 싶은 마음에 가슴은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구급차가 응급실 밖에 도착하고 119 대원이 내려서 뒷문을 힘껏 위로 개방했다.


"대원님 CPR 환자예요?"


"네 CPR 환자요.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


 들것에 실려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환자가 소생실 안으로 들어왔다. 얼핏 봐도 평소에 오던 CPR 환자와는 달라 보였다.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젊은 여자였다. "자! 환자 옮길게요. 하나, 둘, 셋." 그녀는 들것에서 침대로 순식간에 옮겨졌다. 심폐소생술 시행, 제세동기 부착, 기관 내 삽관, 정맥 주사로 확보, 피검사 등 여러 가지 처치가 그녀의 몸에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심정지가 발생한 기본적인 이유를 파악했다.


"대원님 인계해 주세요. 왜 심정지가 발생한 거예요?"


"네. 평소 하루에 소주 2병씩 매일 마시던 30대 여성 LC(간경화) 환자 분이고요. 보호자가 외출했다가 집에 와서 환자를 봤는데 의식이 없다고 신고했어요. 저희가 접촉했을 때는 맥박, 호흡 모두 없어서 CPR 바로 시작했고요. 병원 내원 할 때까지 10분 정도 소요됐는데, 그때까지 계속 심장 리듬 asystole (무수축)입니다."


"최근에는 별 이상 없었다고 하나요?"


"매일 술을 마셔서 복수랑 황달 정도 있고, 의식도 명료하지는 않았다고 했어요. 그래도 화장실까지 거동도 하고 말도 조금씩은 했다고 합니다."



 최선의 노력과 모든 처치를 시행했음에도 그녀의 심장 박동은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심정지 환자는 병원 도착시간 기준으로 30분 안에 심장 리듬이 돌아오지 않으면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애석하게도 30분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심장 리듬은 여전히 asystole(무수축)이었다.


 교수님의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사망에 대한 분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 '병사', 그 외의 외부적인 요인으로 사망한 '외인사', 그리고 과학수사대를 통한 시체 검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미상‘. 그녀는 '미상'으로 사망진단서가 나갔다.


 그녀가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질병 때문인지, 다른 외부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당장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심폐소생술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왔고, 최선의 처치에도 소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을 밝히는 데에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수사대가 오고 시체에 대한 검안이 이루어지면 그때서야 정확한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거다. 다만, 119와 보호자에게 얻은 정보, 피검사 수치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어느 정도 짐작 해볼 수는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다고 했다. 그것도 매일 2병 이상씩 먹었다. 의식은 항상 명료하지 않았고, 배에는 복수가 차서 호흡 곤란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간경화까지 악화되어 피부와 눈이 노랗게 되는 황달까지 왔지만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더 이상 밖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런 몸상태로도 술은 계속 마셨다. 그녀에게 술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보호자가 잠깐 외출을 다녀왔을 때 그녀는 움직임이 없었다. 119 대원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맥박과 호흡이 없는 상태였다. CPR을 하며 황급히 병원에 내원하였지만 그녀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였다.


 나는 죽음이란 적어도 나이 80살이 넘어서 찾아온다고 믿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 30대는 어떤 짓을 해도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해로운 것들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몸이 버텨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보며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목격한 죽음은 언제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의 죽음은 언제나 더 무겁고, 슬프게 다가왔다. 그녀가 평소에 술을 덜 마셨다면, 술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조절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치료를 받을 기회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단 한 번이라도 ‘술 없는 삶’을 통해 앞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으면 어땠을까.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에게 술은 마치 공기와도 같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없으면 안 되는,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의미로. 정작 그 술 때문에 건강과 수명을 잃고 있는데도 절대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술은 공기가 아니다. 알코올은 무조건적으로 독이다. 불편하더라도 더 이상 잘못된 생각에 갇혀있지 말고 깨어나야 한다. 스스로 깨어날 수 없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물론 아직 어리니까, 아직 건강하니까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 후회하면 이미 늦은 상태다. 왜냐하면 한 번 손상된 '간'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몸속에서 독이 되어 ‘간’을 공격한다. 초반에 건강했던 간은 열심히 일(해독)해서 공격을 막아준다. 하지만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간은 아주 서서히 파괴된다. 평상시에 이걸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결국 ‘간’이 지쳐서 뚫리는 순간, 가차 없이 일하지 않고 파업한다. 간에게 협상 따위란 없다. 나이가 아직 어리다고 아무리 빌어도 봐주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밖에 없다. 우리가 비교적 건강할 때 뒤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프롤로그) 술 없는 삶, 친절한 금자씨


금주+14일째 (없어 보이게 하루하루 세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