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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타래 Mar 05. 2020

커피로 배우는 인생 철학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재작년에 빅보카 스터디를 하면서 드립 커피의 맛을 알아버렸다. 그 후 원두를 사서 믹서기에 갈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서 내려 마셨고, 최근에는 회사 복지몰에서 커피 세트를 구입해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신다. 덕분에 휴일 아침에는 여유있게 브런치를 먹으면서 향긋한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저 맛과 향 때문에 마시는 커피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1. 욕심 부리지 말자


첫 번째는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처음 맛을 알아버린 후로 그 맛을 내고 싶어서 여러 테스트를 해봤다. 원두도 좋은 걸 사보고 드립 시간도 늘려보고. 근데 전혀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만족했을 것 같은데 내가 내린 커피는 일반 커피머신에서 내린 커피보다 맛이 없었다. 


최근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이유는 이 2가지였다.

1) 너무 오래 추출함

2) 원두를 지나치게 많이 넣음


그 맛과 향을 내고 싶은 마음에 너무 과했던 것이다. 이상하게 텁텁한 느낌이 났던 이유는 너무 많이 추출하려고 얇은 물줄기로 오래 드립했던 것이었다. 오래 추출하면 맛있는 성분 뿐만 아니라 쓰고 텁텁한 성분까지 추출되기 때문에 좋지는 않다.


게다가 원두도 많이 넣었었다. 한 잔을 내리는데 2인분, 심하면 3인분의 원두를 갈아서 내렸으니 엄청 진하다. 당연히 진하면 맛과 향이 더 좋겠지란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딱 1인분 정량만 갈아서 평소보다는 덜 추출하려고 노력중이다. '더' 가 아닌 '덜' 이 '더 좋은 맛과 향'을 내고 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때의 맛이 나는 기분이다.  



2.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한잔의 커피를 내리는데 의외로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걸린다.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드리퍼에 필터를 끼운 다음 간 원두를 필터에 넣고 평평하게 만든 후 끓인 물을 주전자에 넣고 얇은 물줄기로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붓는다. 그냥 한번 붓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살짝 골고루 부어서 뜸도 들여야 한다. 게다가 그 후로도 2~3번은 더 부어야 되고 중간중간 멈추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잔 마시려면 빨라야 5분, 거의 10분은 온전히 커피에만 집중해야 된다. 특히 물을 붓는 시간에는 거기에만 완전히 몰입해서 부어야 잘 추출된다.


솔직히 귀찮다. 커피 한잔 마시려고 10분 정도는 아무것도 못하고 거기에만 매달려 있어야 한다. 게다가 준비만 한다고 끝나는게 아니다. 또 기다려야 된다. 카누 같은 커피는 그냥 물 끓이고 부으면 끝인데...


근데 또 이렇게 고생하고 기다리면 맛있는 커피가 나온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 과정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드립할 때 원두가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꺼지면서 밑으로 커피가 쪼르르르 떨어지는 걸 보고 있는게 좋다. 이렇게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10분정도 기다릴 줄 알면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나누면 더 좋다.


나보다 더 먼저 커피에 빠진건 엄마였다. 막내 고모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가족여행을 갔다오고 나서는 아메리카노에 빠졌고, 커피머신도 엄마가 사서 내려 마셨다. 물만 넣고 간 원두를 넣은 다음 버튼만 누르면 되서 간편했다. 요즘은 내가 손으로 내려서 가족들과 나눠 마신다.

어짜피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거쳐서 한 잔을 내리나 4잔을 내리나 시간 차이는 그렇게 크진 않다. 원두를 좀 더 갈고 내린 후에 컵 4개로 나누는 과정이 더 있을 뿐이다. 근데 이런 약간의 고생을 한 후에 돌아오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다. 베품에서 기쁨이 온다는게 조금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커피를 전담하면서부터 가족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다. 평소에는 혼자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하거나 책 보는 시간이 많은데 커피 내리는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부엌에 가게 되고 내린 커피를 건내주면서 한마디 더 할 기회가 생겼다. 여전히 무뚝뚝한 아들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말이 많아지고 대화가 늘었다. 요즘에는 아내와 커피 한잔 하면서 대화하는게 휴일의 기쁨 중 하나이기도 한다.





커피 한잔이라는 작은 것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욕심이 많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성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고 욕 먹기 싫다. 근데 인내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깊숙히 파고 들지 못하고 진득하게 뭘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내향적인 성격에 이기적이기까지 해서 남에게 나누어주면 내 손해라고 생각했다.

이런 단점들이 커피를 내린 2년 동안 많이 없어지고 있다. 욕심이 줄지는 않았지만 욕심만 부리려고 하지는 않고 있다. 어떤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내가 조금 힘들고 귀찮아도 나누면 결국은 내가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커피에게 고맙다. 앞으로도 계속 내가 커피를 내릴 것 같다. 어제까지 야간근무 하고 시차적응이 안되서 새벽에 일어났는데 지금도 커피 한잔을 내리고 이 글을 끄적끄적하고 있다.




1일차 : 내가 누군지 당신은 아시나요?

https://brunch.co.kr/@kwangheejan/35

2일차 :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

https://brunch.co.kr/@kwangheejan/34

3일차 : 일하면서 즐겁게, 의미 있게 성장할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kwangheejan/32

4일차 :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

https://brunch.co.kr/@kwangheejan/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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