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이들 Feb 01. 2021

3강_인 요가, 한 시간에 다섯 동작만 합니다.

이미 쉬고 있지만 더욱더 격렬하게 쉬고 싶은 날엔 인요가를 해요.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날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피로하고 지친 몸을 떠나 잠시 유체이탈을 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보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진다. 그럴 땐 그냥 쉬는 것도 부족하다. 보다 더 확실하게, 완벽하고 온전하게 쉬고 싶어 진다. 그런 하루를 보냈다면 우리, 오늘은 인 요가를 해보자.


인 요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을 때 하는 요가다.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되지 무슨 또 요가를 하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 요가는 정말 격렬하게 쉬고 싶을 때, 쉬는 것보다 더 쉬고 싶을 때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요가다. 왜냐하면 몸을 이완시켜 마음을 놓아줄 수 있는 요가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이 평온해지기 어렵다. 마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때 우리 몸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낮동안 잔뜩 긴장하고 움츠려 든 몸을 이완시킴으로써 마음을 보다 더 격렬하게 쉬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요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요가가 운동이라는 오해다. 물론 요가는 운동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피트니스와는 다르다. 피트니스의 목표가 우리 몸의 근육들을 단련시켜 단단하고 균형 잡힌 몸을 만드는 것에 있다면, 요가는 몸을 움직여서 건강하고 균형 잡힌 마음을 단련하는 것에 목표가 있다. 몸의 움직임이 향하는 방향은 결국 스스로의 마음인 셈이다. 그래서 요가를 할 때 우리는 비교하지 않는다. 옆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한다고 위축되지 않고, 앞사람이 나보다 못한다고 우쭐해지지 않는다. 매트 안에 있는 나에게 집중하고, 내 몸의 안쪽에 자리한 근육들에 집중하며,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집중한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매트 밖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인 요가는 많은 동작을 하지도 않는다. 한 시간에 다섯 동작을 하면 많이 한 거다. 몸의 이완과 마음의 명상을 하기 때문에 안 되는 동작을 되게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서서히 몸이 이완될 수 있도록 주로 중력에 몸을 차분히 맡긴다. 안되면 안 되는 만큼 안 되는 부분은 여러 가지 요가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도움 도구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가 도구는 '볼스터'라는 몸을 위한 베개인데, 이 베개 위에 몸을 뉘이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냥 몸만 침대 위에 누울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쉴 수 있게 된다.


햄스트링도 짧지만 무릎 위 근육도 짧은 나는 아마 다리 쪽 근육이 죄다 짧은 것 같다. 때문에 무릎을 굽혀서 하는 동작들에 많은 무리가 있다. 괜히 무리하게 남들을 따라 하다 보면 다치기 딱 좋은 몸인 셈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볼스터다. 예를 들어 무릎을 꿇고 뒤로 몸을 젖히는 동작을 할 때면 허벅지 바깥쪽 근육이 타이트해져서 나는 허리가 뜨고 무릎인대가 강하게 저릿해진다. 좋지 않다. 이때 볼스터를 이용해 등허리에 받치면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데, 그렇게 내 짧은 근육만큼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는 몸을 볼스터는 편안하게 안정감 있게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몸이 나를 허용하는 만큼 서서히 이완시키는 것이다. 그 자세에서 10분 이상 머무르기도 한다. 편안한 호흡을 하고, 몸의 긴장을 내려놓는다. 버티지 않는다.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오면 추가적으로 도구를 더 써서라도 몸을 편안하게 만든다. 볼스터 가지고 부족하면 요가 블록을 더 끼워 넣는 식이다. 격렬하게 쉬되 무리하지 않는 지혜가 인 요가에 있는 셈이다.


한 시간 동안 천천히 천천히 경직되었던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주고 나면 마음도 나른해진다. 한낮의 예민함이 이완되는 근육과,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 속에 함께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아주 예민할 때는 인요가를 해도 정신이 사납다. 아니 어떤 날에는 가만히 있는 동작을 하면 할수록 더욱 마음에서는 불길이 치솟기도 한다. 불 뿜는 용이 내 안에 사는 것만 같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한숨은 절로 나와 도무지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그럼에도 한 동작 속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한 마리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뛰고 있는 내 마음이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땐 자신의 사나운 마음을 그저 '아 오늘 내가 사나운 마음이구나'를 인정하고 바라봐주는 연습을 한다. 사나운 마음도 사나운 마음 그대로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반면 또 어떤 날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인 요가를 하다가 어쩐 일인지 눈물이 자기 혼자 주르르 흐르는 날도 있다. 실은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날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날이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왜 그렇게까지 해야했어?'라는 문장이 말 몽우리에 맺혀 꺽꺽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물어봐도 대답해 줄 사람이 없어서 더욱 혼자 끙끙 앓아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내게 지극한 행복이 되던 말과 다시 없을 상처가 되던 말들이 순서도 없이 맥락도 없이 뒤죽박죽 떠오르던 날이 있었다. 터뜨릴 수 없는 마음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저 혼자 잦아들었다가 다시 용솟음치는 마음이 온통 제멋대로인 날이 있었다. 


나한테 먼저 너그러워지세요. 잘 보일 필요 없어요. 예쁜 자세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남을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은 잘할 필요 없어요. 그저 나한테 조금 더 집중하세요. 내가 불편해하는 곳이 어딘지. 힘을 빼고 천천히 중력에 몸을 맡깁니다. 그 안에서 천천히 자기를 바라보세요. 


보통 다른 요가 시간들과는 달리 인요가 시간에 요가 선생님은 조금 더 다정해지신다. 함부로 위로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위로가 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명상이라는 것이 꼭 앉아서 도를 닦듯 눈을 감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순간이 명상이 될 수 있기에 요가가 그 자체로 명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체험적으로 가장 명상의 근원에 닿아 있는 수련을 뽑자면 내게는 인요가가 아닐까 한다.


마음이 불안할 때, 내 안에 슬픔이 가득 차 있을 때 그 마음들은 상황과 감정이 한 데 엉켜 나도 모르겠는 덩어리 마음이 되었다. 이상하고 불편한 기분은 드는데 나도 무엇이 불만인지 정확히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러면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해진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마음 관련 서적에선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저마다의 방법도 참 많다. 요약본도 잘 되어 있어서 우리는 이미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는 잘 안다. 하지만 운동은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듯, 마음 운동도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시간을 내어 몸을 쓰는 일을 해야 몸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매일매일 소중한 시간을 마음에도 내어 주어야 마음도 정다워진다. 그러니 잔뜩 날이 선 하루를 보내야 했다면 오늘은 인 요가를 해보는 건 어떨까. 요가 수련을 마쳤을 때 성가셨던 마음이 조금은 더 정다워져 있길 바라면서. 나마스테.





이전 03화 [흡흐흡흐] 2강_요가링 수업, 아픈 걸 참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